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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끄적이다(初夏戲題) 


  당(唐) 서인(徐夤) / 김영문 選譯 


만물 기르는 훈풍이

새벽을 쓸자


시나브로 연꽃 피고

장미는 지네


초록빛 애벌레도

장자 꿈 배워


남쪽 정원 나비 되어

훨훨 나르네


長養薰風拂曉吹 

漸開荷芰落薔薇 

靑蟲也學莊周夢 

化作南園蛺蝶飛




지금은 장미가 한창이나, 그것이 끝나면 연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맘쯤이면 애벌레는 환골탈태하고는 나비로 化하기 시작한다. 장주가 꿈을 꾸었다.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이었다. 깨어나 곰곰 생각하니,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장주가 나비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계절은 봄이라는 문지방을 지나 여름으로 들어선다. 

작년 초여름이었다. 나는 경주에 있었다. 월성 성벽을 거닐다 피곤함이 몰려오고, 녹음이 좋아 그 한켠 숲속 성벽길에 앉았더니 나비 한 마리가 나를 배회하더라. 손끝을 내밀었더니, 살포시 내려앉는다. 

  1. 연건동거사 2018.05.20 12:09 신고

    蛺蝶: (traditional sense) butterfly
    훈풍: 음력 5월을 달리 부르는 말. 음력 5월에 부는 훈훈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화풍(和風)이라고도 한다


초여름 3수(初夏三首) 중 첫째 


  송(宋) 왕자(王鎡) / 청청재 김영문 選譯 


붉은 꽃 거의 져서

나비 드물고


쏴 쏴 비바람이

봄날 보내네


녹음은 우거져도

보는 이 없고


부드러운 가지 끝에

매실 열렸네


芳歇紅稀蝶懶來 

瀟瀟風雨送春回 

綠陰如許無人看 

軟玉枝頭已有梅


봄이라 만발한 꽃잔치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꽃이 다 질 무렵, 꽃 중에서도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매화는 벌써 매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어 벌써 초여름 들어서는 문턱이다. 떨어지기 싫어서인가? 아님 따지기 싫어서일까? 매실 역시 초록으로 같은 초록 이파리와 밑에 살포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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