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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莽의 新 왕조가 참살했다는 고구려 초기 왕이다.  이런 내용은 『漢書』 王莽傳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다만 이곳에서는 추(騶)로 표기했다. 표제는 『三國志』에 등장한다. 두 글자는 모양이 비슷한 데서 따라 혼동이 일어난 듯하다. 두 표기 중 전자가 오래된 문헌이라 해서 이쪽을 따르는 견해가 우세하나, 이는 위험하다. 전대 기록을 후대 기록에서 바로잡는 일은 흔한 데다, 후자가 참고한 전자 판본에는 그렇게 되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三國志 권30 魏書 30 東夷傳 高句麗 : 王莽 初에 고구려 군사를 징발하여 胡(匈奴)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胡를 정벌하러] 가지 않으려 하여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도망하여 국경을 넘은 뒤 [중국의 군현을] 노략질하였다. 遼西 大伊 전담(田譚)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살해되었다. 州ㆍ郡ㆍ縣이 그 책임을 구려후(句麗侯) 추(騊)에게 전가시키었다. 엄우(嚴尤)는 “貊人이 法을 어긴 것은 그 죄가 騊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 그를 안심시키고 위로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지금 잘못하여 큰 罪를 씌우게 되면 그들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됩니다.” 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王莽은 그 말을 듣지 않고 尤에게 [고구려를] 치도록 명하였다. 尤는 [高]句麗侯 騊를 만나자고 유인하여 그가 도착하자 목을 베어 그 머리를 長安에 보내었다. 王莽은 크게 기뻐하면서 天下에 포고하여 高句麗란 國號를 바꾸어 下句麗라 부르게 하였다. 이 때에 侯國이 되었는데, 漢 光武帝 8년(32. 高句麗 大武神王 15)에 高句麗王이 사신을 보내어 朝貢하면서 비로소 王의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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