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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서 나는 동문행(東門行)이라는 애절한 악부시(樂府詩)를 소개한 바 있거니와(그 옛날 블로그에 올린 글로서 새로 만든 블로그에 옮겨왔으니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먹고 살 길이 없어 강도 행각에 나설 수밖에 없는 2000년 전 애잔한 어느 평민 가정을 노래한 것이려니와,

 

이번에 소개하는 서문행(西門行)이라는 또 다른 악부시는 우선 제목에서 앞선 동문행東門行과 對를 이룬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제목만 西門行 ↔ 東門行이 아니요, 그 내용 또한 극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지니, 이 西門行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낭만주의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는 문예 사조를 빌려 추리자면 CARPE DIEM이다.

 

CARPE DIEM!

 

흔히 이 말은 Catch(or Seize) the Day!라고 옮기거니와 아마도 동명 영화도 있었다고 기억하니, 20세기 벽두에 모더니즘이라는 열풍이 만들어낸 포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이려니와,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겨 가로대,

 

오늘을 즐기자!

 

그렇다고 그것이 지나치면 아랫도리 내어 놓고 벌렁벌렁 자빠지는 행태가 될지니, 저 CARPE DIEM이 설하는 저명한 문예작품으로 페르시아인 오마르 카이얌이라는 썼다는 장편시 ‘루바이야트’(Rubaiyat)라는 것이 있으니, 세계문학사에서는 이 오마르 카이얌 원작이 아니라 1859년에 영국 시인 E.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이 영역한 번역본이 저명하다. 이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은 <<The Great Gatsby>> 저자인 F. Scott 피츠제럴드와 전혀 무관계하지만 무관계하지도 않으니, <<The Great Gatsby>>에서 주인공 개츠비를 파멸로 이끄는 빌미가 바로 CARPE DIEM!이다. 

 

아, 20년 전 교정에서 멋모르고 <<Norton Anthology>>라는 2천 쪽짜리 영문학 개론서를 낑낑대며 들고 다니던 시절이 그 옛날이 생각나는구나. 각설하고, 이번에 소개하는 서문행(西門行)을 굳이 견주건대 그것이 명목상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 CARPE DIEM!일지니, 글쎄 이런 우리의 감각에 맞게 번안한다면 무엇일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아래 전문을 소개하는 시를 보면, 그런 젊은 시절을 즐기기 위한 놀이 방편으로 ‘병촉유’(秉燭遊), 즉, 촛불을 켜 들고 밤놀이 하는 방식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구절을 실로 유심히 기념하고 있어야 한다.

 

2000년 전 한대(漢代) 민간가요에서 채록되었다는 이 西門行의 노래는 결국 700년 정도나 지난 뒤 성당(盛唐)을 대표하는 저 고주망태의 위대한 시인 太白 李白을 통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고문진보에도 수록되어 있으므로 해서 너무나도 유명하게 된 시이거니와, 내가 저 시절 고교 때는 한문2도 필수과목이었거니와 거기에서 이 춘야연도리원서라는 글 전문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 내가 생각하기를

 

할 일 없어서 밤에 후랫시 불켜놓고 지랄하나 했던 기억이 있거니와, 아, 객설이 길었거니, 이제 시나 감상하자.

 

 

서문행(西門行) : 서쪽문을 나서며

 

서쪽문 나서 出西門

걸으며 생각했네 步念之

오늘 아니면 언제 즐기리니 今日不作樂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當待何時

어서 즐기세 逮爲樂

어서 즐기세 逮爲樂

때가 되었으니 當及時

어찌 우울할 수 있으리오 何能愁怫鬱

이런 때 다시 오길 기다릴까? 當復待來玆

좋은 술 빚고 釀美酒

기름진 고기 삶아 炙肥牛

마음 통하는 이 부르면 請呼心所歡

우울한 마음 풀 수 있네 可用解憂愁

살아봐야 100년도 되지 않으니 人生不滿百

언제나 천 년 근심을 안고 있으니 常懷千歲憂

낮은 짧고 쓰라린 밤은 긴데 晝短苦夜長

어찌 촛불 밝혀 놀지 않으리 何不秉燭遊

돌아 다니는 모습 구름 흘러가는 듯하니 遊行去去如雲除

헤친 수레 지친 말일랑 우릴 위한 것이니 弊車羸馬爲自儲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줄에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번이고 소피 마르쏘 책받침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중 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利於病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이는 아마 명심보감에 나온 구절일 터이다)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五言古詩 하나 외지 못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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