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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2

내가 겪은 카투사KATUSA와 JSA의 추억 지금은 폐쇄된 우리 공장 연합뉴스 내 블로그에 2005년 08월 01일 21시 32분 26초에 같은 제목으로 게재한 잡글인데, 당시 글 오타와 문맥상 문제가 있는 조사 정도 바로잡는 수준에서 전재한다. 당시 글을 전재하는 까닭은 그래야만 당시 내가 이 글을 올린 사정과 부합하는 대목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1987년, 18년 전 얘기다. 당시 시위현장에서 단연 유행하던 구호는 1. 호헌철폐 2. 독재타도 이 두 가지였다. 이 외에 또 하나 익숙한 것이 양키 고우 호움! 이었다. 대학가 사회에서 이 양키에 대해서는 묘한 구석이 있다. 그 묘한 구석에서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묘한 구석이 군대(MILITARY SERVICE)로 옮겨갈 요량이면 특히 그랬다. 미국에 대한 끝 모를 증오. 그러면서도 그 그.. 2018. 8. 27.
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나는 미군 방위였다. 1987년 11월 20일, 논산훈련소 제30연대에 훈련병으로 입대해서는 한달간 교육받고, 같은 훈련소 30연대로 옮겨가 다시 한달 훈련을 받고, 평택 주한미군 군사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로 가서 그곳 카투사 훈련소인 KRTC에서 다시 한 달을 훈련받고는 석달 만에 미군 제501여단 산하 캠프 험프리스 제3정보대대에 배속되어 모학이라는 정찰기 정비소 Tool Room에 근무하고는 1990년 2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이등병 월급은 4천원인가 5천원으로 기억하며, 제대할 당시 병장 월급은 만원이 채 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군번은 71131676이다. 용돈 마련을 위해 미군인지 한국군에서 지원하는 군사용품 무슨 kit인가는 자주 시장에 내다 팔았으며, 1년에 한 ..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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