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언론사, 혹은 담당기자로서 언론계 전문용어 '전문취소'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해당 언론사와 담당 기자한테는 고통이다. 자사 혹은 자기가 쓴 기사를 말 그대로 몽땅 다 취소하면서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4월 내가 우리 공장 연합뉴스 문화부장으로 부임한 이래 이번이 두번째인가로 기억한다. 이런 일은 부서장, 혹은 해당 기자가 경험할 일이 거의 없으므로, 아무리 한 번 경험했다 해도 전문취소하는 절차에 허둥대기 마련이다. 물론 공장 내부에는 그에 대처하는 절차가 명백히 규정돼 있지만, 오늘은 마침 내가 휴무인 데다가, 문제의 사태가 터질 적에 바깥에 있었던 까닭에 더욱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21시52분50초에 내가 책임진 우리 공장 문화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문취소 공지를 냈다. 


[전문취소] 문화(영화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 3일 오후 8시 1분 송고한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1보)' 제하 기사와 오후 8시 6분 송고한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2보)', 오후 8시 16분 송고한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3보)' 기사는 신성일 씨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돼 전문 취소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끝)


이 전문취소 안내문이 공지한 대로, 배우 신성일이 타계했다는 일련의 스트레이트 기사 3건을 무더기로 우리는 전문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신성일씨가 해당 기사가 나간 시점에는 생존한 까닭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없던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트 그리는 신성일. 연합DB



독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어찌해서 죽은 사람으로 확정하고 그런 기사를 내보낼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나아가 이런 일을 빌미로, 소위 '가짜뉴스'를 운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역시 기뤠기'니 하는 비난이 또 쏟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공장 문화부를 책임지고, 해당 기사 최종 송고 승인권자인 나로서는 이 일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할 수밖에 없다. 


거듭이라 하는 까닭은 해당 전문취소 안내문을 내 보낸 직후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신성일 타계 연합뉴스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직접 취재한 내용엔 불확실한 면이 있었으나, 제가 내보냈고 결국 제 책임입니다"고 사과한 까닭이다. 해당 오보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며,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 어떤 변명이 있을 수가 없다. 


다만, 왜 저런 기사가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곡절만큼은 밝히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닌가 해서, 이 부분도 말해두고자 한다. 이미 폐암 말기 판정으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신성일씨 타계는 시간 문제였다. 여담이나 어제 강원도 지역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함께한 사람과 신성일씨가 어찌 되는지 모르겠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니, 그런 그날 그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으니, 참 기이한 인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해당 기사 1보가 '긴급'으로 처리되기 전, 해당 문화부 기자한테서 먼저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신성일씨가 타계했다는데, 확인이 되지 않는다. 어떤어떤 매체에는 벌써 타계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유족 등과 접촉해 확인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잘 확인해라"라는 의례적인 말은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연락 당시, 나는 강원도에서 집으로 귀환하다가 풍납동 인근에서 커피 한 잔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 담당기자들이 그 확인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사이, 나 역시 전화를 끊고는 내가 아는 선을 이용한 확인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신성일씨가 원로영화인이다 보니, 그들이 모인 협회에서는 이런 큰 소식이라면 뭔가 접수됐을 법했다. 마침 나한테 그 협회 관계자 번호가 입력돼 있었으므로, 그 분께 휴대폰으로 연락을 드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그래요? 위독하신 건 알고 있는데 저희한테는 아직 소식이 없네요. 알아보고 연락드리지요" 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 협회에서 전화가 왔다. "유족한테 직접 들었는데, 위독하신 건 맞는데 돌아가신 건 아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데 이와 거의 동시에 1보 긴급 기사가 들어왔다. 타계했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정보 사이에서 내가 망설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해당 기자한테 "맞느냐, 누구한테 확인했느냐" 했더니, 그의 조카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과 직접 통화해서 "30분전에 타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영화계와 인연이 깊은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조카가 전한 사안이니, 확실하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송고 키를 내가 눌렀다. 곧이어 2보와 3보가 나가고, 타계를 전하는 소식을 총정리하는 종합기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우리가 1보 기사를 내보기기 전 네이버 포털을 통해 신성일 관련 기사를 검색했더니, 이미 난리가 난 터였다. 가장 빠른 기사는 이미 40분 전에 나갔고, 다른 언론 매체들도 다투어 관련 기사를 긴급기사로 타전했다. 우리 공장이 신성일 타계 확인 작업에 들어간 까닭도, 실은 다른 언론매체에서 그 소식이 다투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였다. 우리 역시 확인을 해야하니깐 말이다. 



최은희 빈소 조문하는 신성일. 연합DB



나는 해당 기사 송고키를 누르기 전에 다른 언론사의 이런 선행 보도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다른 언론에서 뭐라 해도 우리 스스로 믿을 만한 소식통을 확보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언론이 다뤄도, 우린 다뤄서는 안 된다는 그런 철직 혹은 똥고집이 나한테는 있다. 한데 이번 건에서는 내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확보한 취재원 정보에 대해 무엇보다 나 자신이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더러, 다름 아닌 그의 조카 전언이 있으므로,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둔다. 


한데, 3보 기사까지 나간 마당에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신성일씨가 타계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문제의 그 원로인 영화인 협회에서 직접 부인하고 나섰으니, 아드님인가 한테 직접 확인한 결과로도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며, 이에 더해 그 소식을 전한 강석호 의원한테 추가 전화 확인 결과 "숨이 넘어가셨다고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일이 꼬이고 있었다. 오보 기미가 완연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하느냐 하는 문제로 골이 지끈지끈해졌다. 이 시점에서는 나 혼자 이 일을 수습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정식 보고를 하고는 사태가 이리저리 되었으니, 전문취소를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좀더 확실한 정보를 확보한 다음에 전문취소를 하도록 하겠다고 해서, 그리하라는 지침을 하달받았다. 



1964년 '맨발의 청춘' 한 장면. 이 영화속 신성일은 제임스 딘의 그것이었다.



병상을 지킬 유족은 연락이 통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신성일씨가 입원 중이라는 병원을 알아내고는, 그 지역을 전담하는 우리 전국부 산하 해당 지방본부에다가 SOS를 쳤다. 어디 병원으로 확인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 확인작업이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병원이라고 사생활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수도 없던 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와 관련한 그 어떠한 정보 제공도 하지 말아달라고 유족 측에서 병원측에 신신당부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해당 병원에서는 처음에는 "신성일씨가 퇴원했으며, 현재 상태는 어떤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추가 취재를 통해 여전히 신성일씨가 그 병원에 입원 중이며, 타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결국 신성일씨 타계 기사는 오보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포털을 검색하니, 거의 모든 언론이 신성일씨 타계 기사를 타전하고 있었다. 이에는 아마 우리 공장 긴급 뉴스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언론계에서는 속설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타계했다고 오보를 내면, 그 사람이 오래 살거나 버틴다는 그런 속설 말이다. 그리하여 신성일씨 역시 이번 오보 사태로 생각보단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봤더랬다. 다만, 워낙 상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하니, 우리로서는 촉각을 곧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곤욕을 치르면서, 참 드라마틱한 하루였다고 허탈해하면서 잠을 청했다가 나는 새벽 두시 15분에 일어났다. 휴대폰 알람을 이 시간으로 설정했기 때문인데, 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아스널 광팬이다. 그 아스널이 두시반에 숙적 리버풀과 리그 경기를 시작하니, 이 경기를 시청하면서 아스널을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1970년 청룡영화상 남자인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신영균 신성일 남궁원. 당대 미남으로 통한 사람들이다.



시종 박진감 넘치는 이 경기 전반전을 시청하는 중에 느닷없이 PC에서 "긴급기사가 들어왔습니다"라는 경고음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 공장 편집국 관련 부장들은 거개 24시간 기사작성 시스템을 켜 놓는다. 긴급 기사는 그것이 데스크 화면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런 사실을 공지하는 경고음이 울린다. 


순간 이번엔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요란한 경고음과 더불어 우리 영화 담당 조재영 차장이 전화를 했다. "신성일 선생 돌아가셨습니다." 어제 그 난리통을 겪은 까닭에 이번에는 그 출처를 거듭거듭 확인하고는 그의 타계를 전하는 다음 기사를 송고한 것이 2018년 11월 4일 새벽 3시 30분 00초였다.    


'국민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1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국민배우' 신성일 씨가 4일 오전 2시 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서 마련됐다.


참으로 기나긴 밤이었다. 조금전까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우리 영화담당 기자 둘은 방금 선잠 붙이려 물러났다. 오전에는 빈소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비록 언론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성일은 역시 떠날 때도 요란함을 남기고 떠났다. 떠날 때도 스타였으니, 수퍼스타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창호 아나운서가 타계했다. 오늘 오후 유족한테서 직접 전화가 왔다. KBS 아나운서를 지낸 누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그 시간 하도 이런저런 기사가 쏟아져 들어올 시간이라, 정신이 사나워서였는지, 아니면 얼이 빠져 그랬는지, 이름도 제대로 복기하지 못한 채, 대략 부고 양식에 맞추어서, 자료 보내주시면 부고로 전하겠다 하고는 끊었다. 한데 알고 보니 내가 연락받은 아나운서가 이창호씨였다. 


故 이창호 아나운서


우리 공장 내부 인력 사정 이야기는 안하겠다. 다만 방송연예와 미디어 전반을 기자 둘이서 문화부에서 전담하는데, 이 친구들 내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에 치여서 매일매일을 산다. 이번 주는 그 1진이 휴가를 내고는 남편 따라 해외 여행 중이라, 남은 2진이 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렇게 불쌍히 남은 우리 공장 문화부 막내 이도연 기자가 좀 전에 카톡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부장. 이창호 아나운서라고 아세요??? 진품명품도 진행했다는데.. 전 잘 모르겠어서 ㅠ 아나운서 했다는 거 말고 어떤 업적이 있는지도 모르겠고...그래서 그냥 부고로 우선 올립니당...."


놀래서 전화했다. "그 아나운서 유명한 사람이다. 별도 기사 쓰거라." 하긴 내 정신도 사나웠으니, 티미한 부장 만나니 부원이 고생한다. 


그렇게 해서 간단한 기사가 나갔다. 우선은 내 보내면서 "일단 내보내는데 편안한 진행으로 친근감을 줬다느니 하는 내용 보강 종합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 별세(종합) 라는 기사가 좀 전에 나갔다. 더 보강했으면 하지만, 그 고생을 알기에, 그리고 나라고 별 뾰족하게 보탤 말이 마뜩치 않아, 이것으로써 갈음하고자 한다. 


이런 말 자꾸 하니 꼰대 같은 느낌만 나지만,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 내 세대에는 누구나 아는 이창호 아나운서를 우리 공장 막내 기자는 전연 모른다. "전 티비에서 뵌적이 없는 분이시라...ㅠㅠ"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어쩌겠는가? 이창호를 기억하는 내가 늙음을 탓해야는가? 아님, 저 정도 인물도 모르는 우리 막내를 탓해야겠는가? 


코미디언 백남봉씨가 타계했을 때다. 찾아보니 그 날짜가 2010년 7월 29일인데, 그 소식을 접한 당시 우리 공장 담당 기자가 덤덤하게 반응하면서 관련 기사를 써서 올리더라. 왜 저렇게 느긋하지 의아해 했는데, 그렇게 해서 써서 올린 기사를 보다가 내가 어이가 없었다. 내용 중 일부가 심대한 오류를 빚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너 백남봉 모르냐?"


그랬더니 더 덤덤하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는데요? 봤어야지요?"


이와 정반대하는 일화가 나는 여러 건 있다. 이건 이미 우리 공장에서는 너무나 유명한데, 나는 세븐이라는 친구가 7인조 보이밴드인 줄 알았다. 이 놈이 한 놈 남자인 줄은 그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무렵에야 알았는데, "세븐이 7인조 아니냐" 하는 물음에 우리 가요 담당 전문 이은정 기자가 "선배, 농담이시죠?" 하는 게 아닌가? 그 얼마 뒤 내가 또 한 번 놀랐더랬다. 샤이니 기사가 올라왔는데, 그 기사에 매핑한 사진을 보니 사내 새끼들이 잔뜩이라, 또 내가 물었다가 망신을 당했다. "샤이니가 남자야?" 


이창호 아나운서 타계에 즈음한 이런 작은 소동을 보면서, 나이 먹은 내가 못내 씁쓸함도 어쩔 수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