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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 스님에게 주다〔贈道文師〕


마가목


정철(鄭澈, 1536~1593) / 기호철 譯評


작고 아담히 새로 지은 죽록정은     小築新營竹綠亭

송강 물 맑으니 내 갓끈 씻으리라    松江水潔濯吾纓

세상 찾는 발길 모두 뿌리치고는     世間車馬都揮絶     

강산 청풍명월 그대와 품평하리      山月江風與爾評 

 

제목 ‘도문사(道文師)’는 스님인 도문(道文)이란 뜻이다. 동시대에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이 쓴 〈도문 상인을 전송하다[送道文上人]〉는 시가 《옥봉집(玉峯集)》 상(上)에 실려 있는데, 같은 사람인 듯하다.  다만, 도문에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죽록정은 송강정 원래 이름으로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다. 훗날 후손들이 중건하면서 송강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둘째 행 ‘송강 물 맑으니 내 갓끈 씻으리라’란 말은 세속 초탈해 고결한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뜻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오는 춘추시대 노래에 “창랑 물이 맑으면 내 갓끈 씻고, 창랑 물이 흐리면 내 발이나 씻으리〔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했거니와, 공자(孔子)가 듣고는 이르기를 “얘들아, 들어 보아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니,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고 했다. 굴원(屈原)도 〈어부사(漁父辭)〉에서 이 노래를 그대로 끌어다가 세상의 용납을 받지 못하는 것이 모두 자초(自招)한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셋째 행 '거마(車馬)'는 글자 그대로는 수레나 말, 혹은 그것을 탄 지체 높은 사람을 뜻하는데 세상에서 나를 찾아오는 발길을 뜻한다. 


매미는 사쿠라가 좋은 모양이다.
이제는 조만간 누런 색으로 변했다가 져버릴 사쿠라 이파리 하나에 언뜻 5마리는 됨직한 매미가 떼로 붙었으니 말이다. 
일가족이 한꺼번에 같은 자리서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한 듯.
매미는 탈속脫俗이란 말과 동일시되곤 했다.
그래서 그의 탈각脫殼을 인간이 신선되는 일에 비겨 선화蟬化라 했다. 
탈속 혹은 선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과연 그렇게 애벌레를 벗어난 매미가 신선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더 난은 삶을 향해 한 발 더 디딘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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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22)


매미를 읊다(詠蟬)


 명 정학년(丁鶴年) / 김영문 選譯評 


매미 성품 지극히

맑고도 높아


수심에 찬 읊조림은

「이소(離騷)」와 같네


염천엔 바람과

이슬 드물어


날을 보내면서도

슬프게 우네


蟬性極淸高, 愁吟類楚騷. 炎天風露薄, 度日亦嗷嗷.


매미는 캄캄한 땅 속에서 3~7년 동안 애벌레 생활을 한다. 심지어 어떤 종류는 무려 17년간이나 지하에서 산다고 한다. 그러다가 땅 위로 올라와 사는 기간은 얼마인가? 겨우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면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땅 속 생활을 하는 동안 땅 위에 건물이 들어서거나 아스팔트가 덮이면 영원히 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매미는 땅속에서나 땅밖에서나 수액(樹液)만 먹고 산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매미가 맑은 이슬만 먹는다고 인식했다. 높은 나무 위에서 이슬만 먹으며 고고하게 우는 모습을 보고 선인들은 세속의 물욕에 휘둘리지 않고 고결하게 사는 선비의 삶을 연상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은 직간(直諫)으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강호로 추방되었다. 강호를 방랑하며 자신의 울분과 수심을 읊은 대표작이 바로 초사 「이소(離騷)」다. 이 시의 작자는 그런 시인 굴원을 매미에, 그리고 굴원이 읊은 시 「이소」를 매미 울음에 비견했다.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염천에는 매미 울음을 멀리까지 보내줄 바람도 불지 않고, 매미의 소박한 양식인 이슬도 금방 말라버린다. 바람과 이슬은 매미의 실존 근거이지만 매미는 태생적으로 실존 근거조차 박약하다. 그러나 매미는 침묵하지 않고 운다. 안도현은 그런 매미를 이렇게 읊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사랑」)


한시, 계절의 노래(121)


여름날 산속에서(夏日山中)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흰 깃 부채 게으르게

흔들거리며


푸르른 숲속에서

발가벗었네


두건 벗어 바위벽에

걸어놓고서


맨 머리로 솔바람을

쐬고 있노라.


懶搖白羽扇, 裸體靑林中. 脫巾掛石壁, 露頂灑松風.


더위 탓을 하지만 일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시선(詩仙) 이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어가 모두 구속을 벗어던진 신선의 경지를 보여준다. 맨 몸과 맨 머리는 속세의 의관(허례, 가식)을 벗어던진 신선의 모습이다. 누구의 눈길도 받지 않는 푸른 숲속, 솔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 옆에 있는 바위 절벽에 벗은 의관을 걸어두고 맨몸에 깃털 부채를 부치고 있으면 그곳이야 말로 ‘인간을 떠난 신선 세계’에 다름 아니다. 여름날 더러 계곡을 따라 등산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이목이 빈번한 곳에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기는 분들이 있다. 일탈이 아니라 소위 ‘알탕’이다. 알탕 삼매경에 드신 분은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분이 ‘알탕’하는 분의 몸매를 아름답게 여기지는 않는다. ‘알탕’을 하든 ‘거풍’을 하든 혼자만의 선계를 즐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백의 경지에 다가가는 일일 터이다. 자신의 외로움에 다가서야만 타인의 외로움에 공명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피서는 단순한 더위 식히기가 아니다. 신선이 되려는 분들은 피서의 급을 높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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