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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불러온 논문 표절 시비라든가 논문 중복게재 논란은 그 진실이 무엇이건 우리 학계의 고질을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케 했다. 학계에서 말하는 표절이란 쉽게 말해 도둑질이다. 한데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을 표절이라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표절은 '인용'과 함수 관계를 이룬다. 누가 언제 발표한 어떤 글을 이용했는지를 밝혀주는 행위가 인용이다. 이런 인용 표시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실상 표절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을 수 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인용을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혹 표절 혐의가 짙다고 해도, "부주의해서 빠뜨렸다"고 변명하면 더 이상 따지기 곤란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반면에 우리 학계에는 '쓸데 없는 인용'이 남발되는 경향도 강하다. 굳이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될 경우에도 참고문헌을 잔뜩 달아줌으로써 각주가 본문의 분량을 능가하는 논문이 부지기수로 발견된다.


이런 '쓸데없는 인용'에는 대체로 학연이 작동한다.


국내 학계 석박사 학위논문의 제1번 참고문헌이 대체로 해당 논문의 지도교수의 저서나 논문으로 채워진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나아가 눈치보기, 혹은 눈도장 찍기 차원의 인용도 많다. 학계 원로로 대접받는 선배 연구자의 인용이 특히 많은 까닭은 그들이 이룩한 선행 연구가 훌륭하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표절이 또 하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는 분야는 번역이나 역주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은 몇년 전부터 동서양 고전 번역사업을 발주하고 있다. 발주된 동서양 고전은 거의 예외없는 특징이 있다. 영어 혹은 일본어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는 고전은 거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경우, 국내 번역본은 거의 필연적으로 영어 혹은 일본어 번역본(역주본)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했음에도 마치 자기 혼자서 고전을 번역한 것처럼 행세한다든가, 원전이 아니라 영어 혹은 일본어 번역본을 옮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명백한 표절이다.


현재 시중에 선보이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중국 역사서의 유일한 완역본이 일본어와 현대 중국어 번역본의 중역(重譯)이란 사실은 학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김병준 부총리가 휘말린 논란 중 하나인 자기표절, 혹은 자기논문 중복게재 행위는 사실 김 부총리로는 억울한 측면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학계의 관행이 돼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논문 재탕 행위가 지탄이 되는 듯하지만, 어떤 학문분야에서는 재탕이 아니라 아예 삼탕 사탕을 거듭하기도 한다. 절대사료가 빈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고대사학계의 경우는 삼탕 사탕을 하지 않고는 학계에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자기논문 표절과 함께 학계가 반성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논문 쪼개기'. 학위 논문, 특히 박사학위 취득 논문은 논문 쪼개기의 대표적 대상이 된다.


박사학위 논문은 대체로 논문 기준으로 적어도 다섯 편 이상이 되며, 이를 쪼개서 각각의 단일 논문으로 발표하는 관행이 지금도 성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학위논문 한 편이 무려 5-10편 가량의 논문 발표 성과로 둔갑하게 된다.


이같은 학위논문 쪼개기는 이제는 청산해야 할 유산으로 꼽힌다. 종래의 학위논문은 논문작성자 본인이 배포하지 않는 한, 다른 연구자나 관심있는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했으며, 그에 따라 그것을 쪼개서 각종 학술지에 기고하는 관행이 당연히 통용되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학위 논문 통과와 거의 동시에 그 논문은 여러 기관이나 매체를 통해 배포되므로 학위논문은 심사 통과와 함께 이미 새로운 연구성과라는 측면에서는 생명을 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논문 표절 시비가 사회문제화할 때마다 그 처방으로 내세우는 단골방안이 '학계의 양심 회복'과 '학계의 자율적 정화'라는 카드다. 이것이 자발적 움직이라면 그 한편에서는 심사 요건 강화와 같은 외부의 강제력을 발동하는 방식도 자주 제안된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도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학계에 양심이 없어서, 나아가 자율정화 기능이 없어서 표절 시비가 때마다 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을 방지한다는 구실로 내세우는 심사 요건 강화와 같은 대증요법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학회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투고된 논문은 3명 가량 되는 위원에게 심사가 의뢰된다. 그 결과는 논문투고자 본인에게 통보되는데, 대체로 ▲원안 대로 게재 ▲수정 보완 후 게재 ▲탈락 등의 등급이 매겨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심사위원이 자기와 학설이 다르다는 이유로 게재 불가 판정을 내리기 일쑤이며, 논문 투고자가 이른바 명망을 갖춘 중진급 이상 되는 대학교수는 거의 예외없이 무조건 통과되기 때문이다.


국내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 중 하나가 "연말에는 논문을 투고하지 마라"는 금언이다. 업적심사에 몰린 현직 대학교수들이 연말에 밀어내기를 하기 때문에 현직 교수들이 아닌 연구자는 연말 학회지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그만큼 협소해 진다.


논문 표절 시비와 함께 '돈타령'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학교수들이 앞다투어 "인문학이 죽어간다"느니 "기초학문이 죽어간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거의 똑같다.


"정부가 지원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곧 국민세금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학계에서는 곧잘 망각되고 있다.


사실 학진이 발주하는 동서양고전 번역사업만 해도, 왜 이런 사업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산지원이 없어서 번역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련 학계 종사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학계에서는 그 원인이 예산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몰아간다.


서울의 4년제 대학 인문학부 한 교수는 "물론 이공계와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처럼 사안에 따라 정부나 대학당국 혹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겠지만, 왜 지원이 되지 않아도 되는 연구에서조차 돈이 없어 연구를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고백한다.


이 교수는 "결국 교육은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공공사업이라는 점을 다른 누구보다 학계 스스로 깊이 자각하면서, 왜 이런 우리를 지원해 주지 않느냐를 외치기 전에, 공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2006. 8. 2


*** 12년 전 글인 까닭에 시대 한계도 있을 것이며, 또 당시 내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대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대목도 있다. 


1. 기사에서 나는 "학진이 발주하는 동서양고전 번역사업"에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문제를 지적했거니와, 지금도 그랬고 저때 저 기사를 쓸 때도 생각은 같아서, 이 사업 자체는 그 목적을 나는 찬동한다. 다만, 틈만 나면, 국민을 윽박질러, 국민더러 돈을 내놓아야 우리가 번역을 한다는 생각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2. 외국번역 중역...번역은 선대 번역을 참조해야 한다. 그 자체가 표절일 수는 없다. 기사에서는 충분히 지적되지 않았지만, 번역을 참조해 놓고도 그런 사실을 고의로 숨기는 행위가 첫 번째이며, 실제는 그 외국번역을 고스란히 옮겼으면서도, 원전에서 직역했다고 사기치는 행위다. 이 둘은 용서할 수가 없다. 


3. 박사논문 쪼개기...이것이 문제가 되어 논의 끝에 이른바 학계에 몸담은 자들이 이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쪼개기 해서 발표해도 그것이 중복게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외국 관행을 들었다. 개소리다. 외국과 우리는 전통이 다르다. 우리 학위논문은 이미 통과와 동시에 공간이라는 점에서 구미 전통과는 확연히 다르다. 중복게재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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