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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내 과거 블로그에 2011.02.21 17:18:40에 올린 글이다. 시의성이 있어, 7년이 지난 지금, 그 시의성에 맞지 않는 대목도 없지는 않을 것이로대, 당시 사정을 반추하는 대목도 없지는 않을 것이며, 나아가 현재도 이 문제가 논란 중이라 전재한다. 


며칠 전 월간 《書藝文化》라는 잡지가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 문화부로 배달됐다. 서지사항을 보니 2011년 1월1일 발행이며 이번 호가 통권 160호라 하니 역사가 꽤 오래임을 엿볼 수 있다. 발행처는 도서출판 단청ㆍ서예문화연구원이라 한다.


한데 총 80쪽인 이번 호를 대충 들추어 보니 절반에 육박하는 35쪽까지를 온통 광화문 현판에 할애했다. 잡지 성격으로 볼 때 이번 특집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뻔하다. 광화문 현판은 서예가의 글씨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내가 지적했듯이 광화문 현판이 갈라지기가 무섭게 이 서예계와 한글전용론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각기 자기네 입론을 편다. 이 두 지점이 만날 때, 그 폭발력은 배가 될 것이고, 실제 그런 징후가 없는 것은 아니니, 이번 잡지 특집호 34~35쪽에 실린 광화문 현판의 ‘서예가’ 試案 7개 중에는 유일하게 초주 갑인자를 병용한 한글 ‘광화문’ 현판이 들어있는 것이 그런 징후를 예고할 수도 있다. 


서예계가 그것이 한자건, 한글이건 서예로 교체해야 한다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실로 간단하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 글씨, 그러니까 유리건판 사진에서 복원해낸 ‘光化門’ 글씨가 생명력이 없으며 그러니까 그것은 서예가 아니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어떤 것이 생명력이 있는 글씨인가 하는 근거로써 이번 특집호에는 퇴계 이황, 한석봉, 갑인자, 정조, 그리고 김정희 글씨의 집자한 모본을 내세운다. 하지만 나는 이들 시안들이란 것이 과연 지금의 ‘光化門’ 현판과 비교해 어느 것이 생명력이 있는지, 또 어떤 것이 생명력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심미안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관은 초주 갑인자에서 집자한 한글 ‘광화문’이니, 내 보기에는 현재의 광화문 현판을 비롯한 모든 시안 중에서도 가장 생뚱맞은 글씨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생명력이 있다는 말인가? 고작 세 글자에 지나지 않는 현판 판대기 하나를 두고 저 난리를 피워대는 사태를 나는 죽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갈라진 저 현판 그대로 놔두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왜 ‘멀쩡한’ 현판을 내리고는 다시 단다는 말인가? 국민세금이 썩어 도는가? 금이 좀 가면 어떤가? 생명력 운운하지만, 그것은 그것이 생명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한다. 그렇다고 내가 저 금이 간 현판을 특별히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적어도 나는 글씨에서 생명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 중의 한 명이며, 우리의 온 백성 99% 또한 이에 속한다고 믿는다.


한데 이번 특집호의 한 특집호 제목이 실로 요상타.


중앙일보ㆍ조선일보, 광화문 현판 여론의 중심에 서다


다. 이들이 이 두 신문을 대상으로 집요한 여론몰이에 나선다는 사실은 익히 알거니와, 이들 신문이 이 문제를 다루기가 무섭게 두 신문이 광화문 현판 여론의 중심에 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아! 이래서 내가 몸담은 언론이 한편으로는 무섭고, 다른 한편으로는 몸서리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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