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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dignity 혹은 authority는 신비神秘와 미지未知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내가 저 친구한테 군림하려면 그 절대조건 중 하나가 저 친구는 나를 잘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저 친구는 몰라야 한다. 반면 나는 내가 부리거나 부리고자 하는 사람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뚤어야 한다. 특히 군주는 신하에 대해 그러해야 한다. 


이것이 고대 중국의 정치학 흐름 중 하나인 소위 황로학黃老學을 관통하는 군주론의 핵심이다. 노자를 핵심으로 삼는 그 철학이다. 황로학은 이런 식으로 군주가 신하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신하들은 군주를 향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충성 경쟁을 벌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통치술을 대체로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통령 시절 노무현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아다시피 그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나 강렬하게 자기 의지와 생각을 드러냈으며, 때로는 그 방식이 천박했다. 그리하여 황로학에 기댈 때는 그는 말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저와 같은 황로학은 군주한테만 좋은 일이었다. 한발 물러서 내가 신하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군주에게 언제까지나 충성을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답답함이 치민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 불신은 이리 해서 생겨난다. 그리하여 둘은 서서히 알력하며 삐꺽거리는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이 상태가 되어 군주는 신하를 향해 날 믿으라 하지 않았냐 협박하고 신하는 또 신하대로 도대체 무얼 믿으라는 겁니까 라고 항변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 싸움이 늘 비극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신하가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군주를 떠나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일이 쉽지도 않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혹은 인연 모두가 군주를 중심으로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옴짝달짝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간혹 반란과 쿠데타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용기도 없으며, 동조 세력도 없다. 더러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이는 극단이요 대체로 그에겐 실상 군주에 맞설 무기가 없다.


그리하여 신하는 하염없이 당할 뿐이요 만신창이가 된다. 또 그리하여 마침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국이 오기도 한다.



실제 황로학이 흥성하던 시대 중국사를 보면 다 이러했다. 철혈재상 상앙은 결국엔 사지가 찢겼으며 한비자는 목이 달아나고 이사 역시 그러했다. 한나라를 호령한 혹리는 다 죽음이 비참했다. 이들은 그 자신이 황로학 신봉자였지만 그들보다 더 황로학에 철저했던 군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살아보니 첫째도 둘째도 믿음이 알파요 오메가더라. 믿음은 믿어라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 배려다. 그것도 끊임없는 배려다. 그건 따뜻함이다. 손과 손이 맞닿을 때 느끼는 그 따뜻함이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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