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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3

[비형랑과 화랑세기] (2) 형을 도운 낭정郞政 "비형랑은 형을 도와 낭도郞徒를 다스렸다" 이 ‘도화녀 비형랑’ 이야기에 사륜계를 선전·홍보하는 목적이 담긴 이유로 많은 신라사학도가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실질 주인공이라 할 비형랑鼻荊郞을 용춘龍春으로 보기 때문이다. 용춘이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 아버지 아닌가? 이런 견해에 의한다면 비형랑은 바로 김춘추의 아버지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비형랑과 그가 거느린 귀신 무리의 행태가 화랑이라고 본다. 어째서 그러한가? 다음 신종원의 언급은 그 이유를 집약한다. “비형이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나라의 큰 공사를 지휘하였다는데 이것은 전쟁시 무장武將으로 나아간 것과 같다. 비형은 ‘郞’이라 불리었으며, 휘하의 유능한 인물을 천거하는 등의 면모에서 비형 자신과 그 무리를.. 2024. 2. 21.
김유신론(4) 전쟁은 영웅을 부르는 법 김유신이 신라의 미래 동량으로 두각을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한반도는 시종 전운이 감도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단 한 해도 전쟁이 없는 시대로 돌입했다.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본기에서 그 흔적을 추려보면, 38년(616) 겨울 10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쳤는가 하면, 40년(618)에는 북한산주 군주 변품(邊品)이 가잠성을 되찾고자 병사를 일으켜 백제와 싸웠지만 패배하고 해론(奚論)이 전사했다. 45년(623)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늑노현(勒弩縣)을 습격하더니 이듬해 46년(624)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속함(速含)ㆍ앵잠(櫻岑)ㆍ기잠(歧暫)ㆍ봉잠(烽岑)ㆍ기현(旗縣)ㆍ혈책(穴柵) 여섯 성을 포위한 결과 세 성이 함락되고 급찬 눌최(訥催)가 전사하는 대패를 기록했다. 시종 백제 공세.. 2018. 3. 4.
[추적, 한국사 그 순간 -7-] 태종무열왕 출생의 비밀 김춘추 아버지 용수·용춘은 형제 사이 [중앙선데이] 입력 2016.12.18 00:42 | 510호 23면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聖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632년) 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성골은 품계가 없는, 더 정확히는 품계를 초월하는 신분이었다. 그 다음 신분인 진골(眞骨)은 신하들이 차지했다. 성골이 멸종했으므로 신하 중 누군가가 왕위에 올라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춘추다. 그의 후견인은 처남 매부가 되어 끈끈한 인연을 다진 맹장 김유신. 처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김춘추가 마침내 권좌를 차지..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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