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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전쟁3

왜 김양도金良圖인가? 김양도라는 인물은 현재까지 전연 주목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대 같은 나당 전장에서 활약한 다른 인물들에 견주어서도 그에게 우리는 이렇다 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언급만 가했을 뿐이다. 하기야 《삼국사기》조차 그를 문장가로 꼽으면서도, 관련 자료 부족을 이유로 내세워 그를 위한 별도의 전기를 세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행적에 대한 정리와 고찰을 통해 우리는 김양도가 첫째, 신라의 일통삼한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쟁영웅이고 둘째, 그는 문장가로서도 이름을 날렸으며 셋째, 무엇보다 팔망미인으로서 조각가이며 화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적출한다. 더불어 이런 그를 당이 장안의 옥에다 가두어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은 자신들에게 대드는 신라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최.. 2021. 7. 11.
긴장을 계속하는 나당관계 "주인이 자기 다리를 밟으면 개가 주인을 무는 법입니다." 다시금 찬찬히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읽다가 마주한 대목이다. 백제를 멸한 당이 이번엔 함께 백제를 정벌한 신라를 치려하자, 이를 감지한 신라 조정에서 대처 방법을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이 와중에 군사적 대응에는 미온적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겨냥해 김유신이 한 말이다. 이 대목이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中)에는 다음과 같이 보인다. 당이 백제를 멸하고는 사비(泗沘) 땅에 진영을 치고 신라 침공을 은밀히 도모했다. 우리 왕이 이를 알고는 여러 신하를 불러 대책을 물으니, 다미공(多美公)이 나와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을 의복을 입혀 백제인으로 꾸며 역적 행위를 하게 하면 당군이 반드시 이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싸움을 벌이면 뜻을 이룰 수.. 2018. 3. 7.
신라도 당을 믿지 않았으며, 당 역시 신라를 믿지 아니했다 국제관계. 이거 참말로 묘하다. 세계제국 당에 신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숙적 고구려를 정벌하려다가 망신을 당한 당은 호시탐탐 그 정벌을 기회를 노리다가 신라와 접근했다. 배후에서 신라가 고구려를 견제하고, 여차하면 군사적으로도 호응해야 했다. 그래야 고구려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라 역시 숙적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당에 접근했다. 이런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신라와 당은 밀약을 한다. 백제는 신라가 갖고, 고구려는 당이 갖는다. 당은 고구려 서울 평양을 갖는다. 평양 이남 고구려 땅은 신라가 갖는다. 하지만 신라도 당을 결코 믿은 적 없으며, 당 역시 신라를 믿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칼끝을 겨눌 상대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으며 실제로도 그리되었다. 신라와 합세해 백제를 멸한 당의..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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