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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2

죽어도 노비 손에는 죽을 수 없다는 백제 명농왕明穠王 일본서기 흠명 15년 조에는 유명한 성왕이 승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왕이 아들 위덕왕을 찾아 가다 매복에 걸려 죽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1. 고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라는 부분이 있다. 성왕이 맹약을 어겼다는 뜻일 터다. 무슨 맹약일까? 이미 앞에 한 번 쓴 바 있다. 백제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었지만 가야방면으로는 끊임없이 가야와 연계하여 신라를 견제하려 했다. 우리가 모르는 적대행위가 또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문맥으로 보면, 적어도 신라로 보면 한강 탈취 명분은 "백제가 맹약을 어겼기 때문"인 셈이다. 그 명분 역시 모든 정치판 명분이 그러하듯 구실에 불과했겠지만. 2.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 2022. 12. 15.
성왕(聖王)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성왕 : 성왕(聖王)은 이름이 명농(明襛이고 무령왕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빼어나고 일을 잘 결단했다. 무령이 죽자 왕위를 이었는데 국인들이 일컬어 성왕이라 했다.가을 8월에 고구려 군사가 패수(浿水)에 이르렀다. 왕이 좌장(左將) 지충(志忠)에게 명해 보병과 기병[步騎] 1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싸우게 해서 이를 물리쳤다.2년(524) 양(梁)나라 고조(高祖)가 조서를 내려 왕을 책봉하여 지절(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수동장군(綏東將軍) 백제왕(百濟王)으로 삼았다. 3년(525) 봄 2월에 신라와 서로 사신을 교환하였다. 4년(526) 겨울 10월에 웅진성(熊津城)을 수리·수선하고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 7년(529) 겨울 10월에 고구려 왕 흥안.. 201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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