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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3

길항하는 통합과 분열, 분단체제론은 근간이 폭력에 기반한다 이것이 결국 봉건제인가 군현제인가 하는 해묵은 논란으로 직결하거니와 우리는 한국 혹은 한민족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단일체로 호명하지만 그것은 실은 분열을 임시봉합한 데 지나지 아니하는 김유신과 김법민의 이데올로기다. 그 이데올로기를 붕파하고는 그 아련한 시대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궁예와 견훤이었으니, 둘이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계승을 표방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통일왕조라라는 고려가 등장하면서 그 분열의 시대는 가라앉은 듯했지만, 그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간단없었으니, 고려 중기만 해도 특히 경주 쪽에서 신라 부활을 기치로 내건 반발이 심했고, 또 그 직전에는 묘청이 주도한 평양과 고구려 중심 반동이 있었다. 조선시대 역시 내내 이를 우려해 그에 대한 봉쇄를 감행하고자 강력한 군현제를 관철하고자 했으니,.. 2022. 7. 9.
걸핏하면 오백년을 간 한반도 왕조 후백제나 태봉 같은 단명 왕조가 있기는 했지만, 한반도 역사가 중국의 그것과 왕청 다른 점 중 하나가 왕조 존속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이다. 고려 조선이 각 오백년이요 백제 고구려는 칠백년, 신라는 물경 천년이다. 중국은 외려 춘추전국시대가 이와 흡사해 그 모국 주周 왕조는 대략 구백년을 갔고 그 초기 제후국들 역시 그러했다가 이상하게도 그 분열이 종식되고선 이백년을 간 왕조가 거의 없다. 청이 삼백년을 갔으니 이것이 기적이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하면 역시나 통합과 분열의 길항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중심을 향한 열망만큼 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역시 강렬하기만 하다. 군현제와 봉건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은 강고하게만 보이는 현재의 중앙집권제는 나는 오래가지 않을 것으.. 2019. 6. 24.
관직과 관위, 중앙과 지방의 길항(拮抗) 삼국사기 제38권 잡지 제7(三國史記 卷第三十八 雜志 第七) 직관 상(職官上) 서두에서는 신라 직관 체계 흐름을 다음과 같이 개술한다. 신라는 벼슬 호칭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 그 이름이 같지는 않다. 이에는 중국과 동이 명칭이 뒤섞였으니[唐夷相雜], 예컨대 시중(侍中)이나 낭중(郞中)과 같은 것은 모두 중국[唐]의 벼슬로 그 의미를 고찰할 수 있지만, 이벌찬(伊伐飡)이나 이찬(伊飡)과 같은 것은 모두 동이의 말로써 그렇게 이름하게 된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처음 이들 벼슬을 두었을 때는 틀림없이 관직마다 일정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위계에 따라 정한 인원이 있었을 것이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 높음과 낮음을 변별하고 그 능력의 크고 낮음에 따라 대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문헌.. 2018.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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