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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영토2

진흥왕이 확보한 함경도 동해안을 이후 신라가 상실했다는 개소리에 대하여 거의 모든 한국사 개설에 신라사 확장을 설명할 적에 천편일률하는 진흥왕 시대 신라 영토 사정이다. 문제는 진흥왕이 확보했다가 그 이후 신라가 언제인지 상실했다는 부분. 바로 이 대목인데 지금의 함흥을 중심으로 함경남도 동해안을 진흥왕이 확보했지만 이후 상실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그 아래쪽 한강 유역 일대와 지금의 강원도 전부를 진흥왕이 확보했다는 대목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論한다. 첫째 함경남도까지 신라가 동해안을 확보한 시기는 진흥왕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이다. 둘째 그 시기는 최소 자비 마립간 이전이며 내물왕 때도 강원도 동해안은 신라 영토였다. 셋째 신라는 함경도 동해안을 상실한 적이 없다. 넷째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쟁취했을 그 훨씬 이전 강원도 동해안은 일찌감치 신라 영토였다. 다섯째 신라가 동.. 2021. 7. 26.
삼국사기 지리지는 고려와 고구려를 혼동했다 고려 태조 13년(930), 왕건은 고창(안동) 전투에서 견훤에 대승하면서 승기를 완전히 잡는다. 한데 이 사정을 전하는 기록이 심상치 않다. 이때 왕건은 지금의 경상도 중북부와 영동을 다 손아귀에 넣고 지금의 포항에까지 진출했다. 《삼국사기》 지리지가 정리한 고구려 영토는 얼토당토않다. 영일현, 그러니깐 지금의 경북 포항까지,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고구려 수중에 있었다고 한다. 이는 택도 없는 소리다. 함에도 이런 택도 없는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무모한 시도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인가? 나는 《삼국사기》가 고려와 고구려를 헷갈리는 바람에 저리 잘못 정리했다고 본다. 아래는 《고려사절요》 해당년 기록이다. 봄 정월에 재암성(載巖城․경북 청송 진보) 장군 선필(善弼)이 와서 .. 201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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