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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2

[비형랑과 화랑세기] (3) 양자로 즉위한 김춘추 : 생부는 갈문왕, 양부는 대왕大王 갈문왕이 종말하고 추봉 대왕이 등장하는 획기를 나는 김춘추 즉위에서 찾는다. 김춘추의 등장은 중국식 예제가 한반도에 착근하는 계기였다. 이런 중국식 대왕 추봉 바람에 갈문왕이 대표하는 소위 고유 신라 추봉 시스템은 도전에 직면했다. 김춘추한테는 생부와 양부가 따로 있었다. 그는 양자로 즉위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금륜왕金輪王, 곧 진지왕과 사도思道 사이에서 난 둘째아들로 동부동모同父同母 형이 용수龍樹다. 춘추는 용수가 천명天明 공주에게서 낳은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 용춘에게 가서 자랐다. 용춘은 천명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한편 적자嫡子가 없어, 형의 아들인 조카 춘추를 아들로 삼았다. 춘추는 양자養子로 작은아버지에게 입적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춘추는.. 2024. 2. 22.
[추적, 한국사 그 순간 -7-] 태종무열왕 출생의 비밀 김춘추 아버지 용수·용춘은 형제 사이 [중앙선데이] 입력 2016.12.18 00:42 | 510호 23면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聖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632년) 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성골은 품계가 없는, 더 정확히는 품계를 초월하는 신분이었다. 그 다음 신분인 진골(眞骨)은 신하들이 차지했다. 성골이 멸종했으므로 신하 중 누군가가 왕위에 올라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춘추다. 그의 후견인은 처남 매부가 되어 끈끈한 인연을 다진 맹장 김유신. 처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김춘추가 마침내 권좌를 차지..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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