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유사역사학5

조건이 결정하는 논문, 강단을 먹여살리는 사이비역사 식민성 여부를 떠나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남한 강단역사학계서는 식민지시대 이래 눈꼽만큼도 새로울 순 없어 조선왕조를 이성계 일파가 세웠다는 주장이랑 진배없으니 이런 말을 담은 글은 적어도 논문이라는 형태로 실릴 수는 없다. 한데 이 철 지난 주장을 시종일관 내세우는 글이 논문이라 해서 버젓이, 것도 집중으로 실리는 시대가 불과 5~6년 전에 있었으니 백주대낮 날강도 같은 이런 일은 어찌해서 가능했던가? 당시 동북아역사지도니 해서 이른바 역사왜곡 사태에 즈음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 혹은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재야사학계 공격에 시달리던 강단사학자들이 저런 주장을 담은 글들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집중으로 투고하는 호시절이 있었더랬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표절이 합법화했고 결.. 2023. 6. 30.
사이비논쟁에 부쳐, 역사논쟁은 무식하다는 전제에서 비롯한다 바로 앞에서 나는 소설 코너로 간 정사 삼국지를 거론했다. 이걸 두고 어느 저명한 역사학도는 무식한 서점 직원이라 낄낄 거렸다.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 곧 삼국지의연의도 구별하지 못한 서점 직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라고 낄낄 거렸다. 이 사례는 왜 한국사회에서 툭하면 터지는 사이비역사논쟁을 성찰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무식하다? 천만의 말씀. 그들은 이른바 정통역사학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며 그 꼭대기에 올라가 있음을 망각한 처사다. 그 서점 직원은 누구보다 정사 삼국지가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소설 삼국지를 찾는 독자들이 정사 삼국지 또한 같이 찾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으며, 그런 까닭에 소설 코너에다가 정사 삼국지를 당당히 진열한 것이다. 왜? 정사, 곧 정통 역사학은 소설 삼.. 2023. 6. 18.
사이비고 유사고 나발이고, 나는 용서가 안 된다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이 다시금 남발한다. 그런 말을 쓰는 자들은 그들이 구축한 역사야말로 진짜 역사학이라는 신념 혹은 전제를 한다. 이런 말이 주로 나오는 데가 고대사, 특히 한국고대사이므로, 몇 줄 되지도 않는 같은 텍스트 두고 이리보고 저리볼 뿐이다. 그걸 이리 보아야 한다는 법칙은 있을 수 없다.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 다양성이 멋대로일 수는 없다. 시각의 다양성일지니,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손친들 불역열호不亦說乎를 어찌 열받지 아니하리오라 읽을 수는 없다. 저네는 사이비고 유사역사학이라 공격하는 바로 그 친구들이라고 해서 그네들은 사이비가 아니고 유사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그네가 구축하는 역사학은 사이비가 아니라고 장담하는가? 난 지금도 용서가 안 된다. 신라 지증왕 4.. 2023. 6. 13.
유사역사학 비판 선봉에 선 몇몇을 보니... Taeshik KimJuly 6, 2017 at 11:15 PM 유사역사학 비판 선봉에 선 몇몇을 보니... 나는 소위 유사역사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또 다른 이름이 '환빠'로 알거니와, 이는 환단고기 추종파를 두고 하는 말로 안다. 환빠는 그렇다고 치자. 유사역사학이라 비난받는 사람 모두가 '환빠'는 아닌 걸로 안다. 그런 점에서 환빠와 유사역사학은 개념 규정부터 달라야 한다고 본다. 각설하고...몇년전 유사역사학을 비판하고 나선 몇몇 친구가 있다. 언론에서는 대체로 이들을 호기롭다고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안다. 나는 이들의 이름을 접했지만, 이들과는 전연 직간접 인연이 없었으므로 그런갑다 하고 여기고 있었다. 오늘 심심해서 그 유사역사학 비판 선봉에 선 젊은 고대사 연구자 몇몇을 검색하고는.. 2019. 7. 6.
불감(佛龕)에서 등잔 터널로 - 무령왕릉의 경우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기적적으로 무령왕릉이 발견되고, 그 현실(玄室) 내부에서는 네 벽면에 모두 5군대 등잔을 안치한 구멍이 발견됐다. 그 무령왕릉 바로 코앞에 식민지시대에 도굴 상태로 발견된 송산리 6호분이라는 무덤이 있다. 이 무덤 역시 무령왕릉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해 벽돌로 무덤 주체시설을 쌓은 소위 전축분(磚築墳)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구조 역시 그랬다. 하지만 6호분은 내부가 몽땅 도굴당한 상태라 그에서 건진 정보는 얼마되지 않았다. 이 6호분에도 무령왕릉과 같은 등잔을 안치한 구멍이 현실 네 벽면에 있다. 숫자는 무령왕릉보다 2개가 많은 7개였다. 도굴 피해를 보지 않은 무령왕릉이 발견됨으로써, 6호분 그 구멍도 비로소 기능을 둘러싼 베일을 벗었다. 한데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2018. 7.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