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화가2

고려사를 읽다가 - 화가의 대우 이광필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고려 무신정권기를 살았던 인물인데, 초상화와 산수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아들이 9품 군직인 대정에 올랐다. 그런데 이에 딴지를 건 인물이 있었으니... 이광필의 아들이 서경(西京)을 정벌한 공으로 대정(隊正)에 임명되자, 정언(正言) 최기후(崔基厚)가 잘못을 지적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의 나이가 겨우 20세인데, 서경 정벌 때에는 10세에 불과하였다. 어찌 10세의 어린아이가 종군할 수 있었는가?” 라고 하며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서명하지 않으니, 왕이 최기후를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이광필이 우리나라를 빛낸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광필이 아니었다면 삼한(三韓)에 그림의 명맥이 거의 단절되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최기후가 서명하였다. 여기에.. 2021. 6. 4.
솔거(率居) 생몰년 미상. 신라인. 화가로 이름이 높아 황룡사 벽화 등을 그렸다 한다.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솔거 열전 : 솔거(率居)는 신라 사람이다. 출생이 한미해 그 씨족은 계보가 기록돼 있지 않다. 태어나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리니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을 지었고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서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이 가끔 바라보고 날아들었다가 허둥거리다 떨어지곤 했다. 그린 지가 오래되어 색이 바래자 그 절의 중이 단청을 고쳤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경주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 유마상(維摩像) 또한 모두 그의 필적이다. 세상에 전해져 신화(神畵)로 여겼다. 2018. 3.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