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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2

흑치상지黑齒常之와 그의 사위 물부순物部珣 흑치상지라는 사람이 있다. 백제멸망 당시 부흥군을 이끈 사람으로 그 후 당에 항복하여 그곳에서도 활동한 사람이다. 흑치상지의 성 "흑치黑齒"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발견된 그의 묘지명에는 百濟人也。其先出自扶余氏,封於黑齒,子孫因以為氏焉。라 되어 있어 흑치는 지명으로 보인다. 원래 부여씨였지만 갈려 나왔으니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바대로 "창씨'를 한 셈이 되겠다. 사실 "창씨"의 전통은 일본보다 백제에서 먼저 보이는 것 같아 어쩌면 일본 창씨 전통의 기원은 백제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흑치"에 관련하여 제시된 바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귀족들이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풍습이 있어 심지어는 전국시대까지도 귀족 취향의 무사들은 이빨을 검게 물들이고 했다는데 실제.. 2022. 12. 13.
사타상여(沙陁相如) 흑지상지(黑齒常之)가 이끄는 백제부흥운동군에서 별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나중에 당군에 항복했다. 사타(沙陁)는 복성(複姓)이며, 이름이 상여인데, 아마 고대 중국 저명한 정치가 인상여(藺相如)나 전한시대 저명한 문학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에서 따온 듯하다. 삼국사기 권 제28(백제본기 제6) 백제부흥운동 : 이보다 앞서 흑치상지(黑齒常之)가 흩어진 무리를 불러 모으니 10일 만에 돌아와 붙은 자가 3만여 명이었다. 소정방이 군사를 보내 쳤으나 상지가 막아 싸워 이겼다. 다시 200여 성을 빼앗으니 정방은 이길 수 없었다. 상지가 별부장(別部將) 사타상여(沙陁相如)와 함께 험한 곳에 의지해 복신에게 호응하다가 이때가 되어 모두 항복했다. 인궤(仁軌)가 진심을 보이면서 임존성을 빼앗아 스스로 공을 나타내게 .. 2018.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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