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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우암 송시열묘 앞에서

by 여송은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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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宋時烈) 이름만 들어도 거대하고 묵직한 바위 하나가 나의 명치를 꾸욱 누르는 것 같다.
나의 얕은 공부로 이분을 어찌 설명하리오?!

견훤산성을 답사하고, 다음 코스로 우암 송시열 묘소에 왔다. 화양구곡 안에 있는 만동묘(萬東廟, 명나라 신종과 의종을 모시는 사당)•화양서원(華陽書院) 외 우암의 흔적들을 같이 보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여기까지로 했다.

우암 송시열 재실


사실 산성답사 중에 송시열 묘소에 간다고 해서 내심 좋았다. 최근 조선시대사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하필 주제는 ‘서원’이라 ‘송시열’ 이름만 수백 번을 듣고 또 본 것 같다.

글자로만 무수히 봤던 송시열의 실체(실체는 없지만)? 아니,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모르게 기뻤다. 나는 변태가 분명하다.

아무튼 약간의 설레임으로 그렇게 남의 묘소에 갔다.

우암 송시열 신도비 옆 큰 은행나무


송시열 신도비 옆에 있는 은행나무가 굉장히 크다.
완연한 노랑색은 아니고, 아직 초록기운이 남아 있었다.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은행나무가 위로 곧게 자라면 수은행나무이고, 아래로 둥글게 자라면 암은행나무라고 한다.

그럼 이 은행나무는 수일까요? 암일까요?

우암 송시열 신도비

우암 송시열 신도비


담장 너머로 사진을 찍었다.

담장에 비각에… 비문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찾아서 봤다. (인터넷 만세!!)

우암 송시열 신도비 앞면(有明朝鮮國 左議政 尤庵宋先生之墓) /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송시열 신도비는 정조 어필이다. 신도비 앞 설명문에 신도비는 정조3년(1779)에 세웠고, 국난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고 한다.

아, 여기도 땀흘리는 비석이 있다.

왜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신도비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송시열 묘가 있다.

원래 송시열 묘소는 수원 무봉산에 있었는데, 1697년(숙종 23)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 묘

우암 송시열 묘비


묘비석조차 뭔가 송시열의 느낌이 난다.

아니, 묘비석이 뭐이리 직육면체야.

절대 아무도 못 가져 갈 것 같이 튼튼해 보인다.


有明朝鮮 文正公 尤庵宋先生墓
貞敬夫人 李氏 祔左


앗! 원래 묘비 옆에 작은 묘표가 하나 더 있는데, 사진을 찍 지 못했다. 이런…!

위 사진을 보면 묘비 옆에 작은 묘표가 있는 걸 확인 할 수 있다.

문인석


또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묘비 옆에 괴생명체가 죽어 있었다. 알고 보니 황소개구리 새끼인 올챙이 인 것 같다. 볕이 따땃해서 나왔다가 죽은 것인가? 이 산속에?

우암 송시열 신도비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 묘소에 다녀왔다.
돌아 오며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송시열은 송자(宋子)라 불릴 정도로 조선시대 석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또 그를 따르는 제자가 어마어마 했으며, 노론의 영수로서 조선 사회를 쥐락펴락 했던 인물이다. 그런 거물도 결국에는 이렇게 죽다니…

인생 별 거 없다.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지내야지!!!

송시열 묘 앞에서 갑자기 이상한 다짐을 했다.


우암 송시열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8길 19

우암 송시열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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