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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소와 말이 없는 농촌 풍경

by 초야잠필 202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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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농촌 풍경, 하면 논과 밭이 있고,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 소와 말이 있고 마당에는 닭이 있는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경사회가 성립한 직후부터 이미 이런 모양이었을까? 

그것이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모양의 농촌 풍경은 중국의 경우에는 그 성립연대가 일러 삼사천년 전에 이미 이와 비슷한 풍경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등 소위 "문명주변부 사회"에서는 문명중심지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위에 써 놓은 것 같은 농촌풍경의 완성은 시대가 한참 떨어지게 된다. 

이전에도 글을 썼던 것 같지만, 일본의 경우, 소와 말, 닭 등 가축이 도입되어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완성된것은 서기 4-5세기 이후이다 (물론 가축의 도입은 종류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하니와에는 말과 소  닭 등 동물 모양을 본뜬 것이 존재하는데 이런 하니와가 고분 주변에 심어졌을 시기에도 일본의 농촌에는 아직 이런 류의 가축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귀한 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는 시기가 좀 빠르기는 하겠지만, 역시 "소와 말, 닭이 없는"농촌풍경의 시기가 상당히 길게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면, 

수도작이 청동기시대에 성립하였다 해도 우리의 농촌에는 논과 밭, 그리고 개를 제외하면 가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이런 풍경이 초기 수도작 사회 오랜기간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마도 청동기시대 전-중기에 성립한 수도작 사회 내내 우리나라 농촌은 이렇게 지내다가 청동기시대후기에나 소와 말, 닭 등 가축이 도입되어 우리가 아는 "농촌풍경"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한반도 남부는 이미 완전히 성숙한 농경사회인데, 이러한 사회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니라 장구한 기간동안 하나씩 농경사회의 여러 요소들이 시간차를 두고 수입되어 한반도에서 조립된 결과가 결국 삼국지 동이전이 그리는 한반도 남부의 "시골풍경"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자주 언급해 보기로 해둔다. 

요시노가리 유적의 환호. 야요이시대 중-후기가 되면 일본 사회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도작농경사회로 성장하였지만, 여전히 소, 말 등 가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에 가축이 거의 없는 것은 삼국지 동이전의 필자에게도 이상하게 보였는지 이 사실은 왜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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