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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절박함이 안내판을 만든다

by taeshik.kim 2018.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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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이 없는 파리 노르트담 성당>


주로 유럽에 국한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네들이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 혹은 문화유산 현장을 국내의 그것과 견줄 때 두드러진 특징이 불친절성이다. 예컨대 파리 에펠탑을 보면, 주변 어디에서도 에펠탑을 소개한 안내판을 발견할 수 없으며, 같은 지역 노트르담성당도 그렇고, 루브르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로마? 콜로세움 어디에도 안내판이 없고, 판테옹 역시 마찬가지이며, 베드로성당도 안내판을 구비하지 않았다. 피렌체도 그렇고, 베네치아도 그렇다. 


<문화재 안내판이 없는 로마 판테온> 


한데 이런 사정이 그리스로 건너 가면 판이하다. 내가 작년 풍찬노숙 막바지 한달을 파리와 로마와 아테네를 주된 목적지로 삼아 돌았거니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아테네였으니, 이곳이야 말할 것도 없이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잡은 아크로폴리스를 뺄 수 없거니와, 이를 중심으로 삼은 사방에 고대 그리스 유적이 밀집했거니와, 그런 주요 유적지마다,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는 빠짐없이 만나는 해당 유적 내력을 자세히 설명하는 그 친철한 안내판이 예외없이 있다. 그리스 문화재 안내판은 그 친절함이 외려 번다하게 느껴질 정도 자세하고 친절하다. 


<아크로폴리스 한 안내판>


같은 유럽문화권이요, 같은 유럽을 대표하는 고도인데 이런 차이가 빚어질까? 절박함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무엇에 대한 절박함인가? 나를 알아달라는 절박함의 손짓이라고 나는 본다.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 제발 날 보러 와 줘요라는 절박함이 이런 안내판을 만든다고 나는 본다.  


내가 작년 저들 도시를 돈 시기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바캉스를 떠났지만,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는 시즌이었다. 파리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고, 베네치아가 그랬으며, 피렌체가 그랬다. 이들 도시는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했다. 이젠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지만, 저들 도시를 대표하는 유적지는 예매를 하지 않으면, 입장에만 2~3시간이 소요됨이 보통이다. 루브르박물관 그렇고, 노트르담성당이 그러하며, 콜로세움이 그러하며, 바티칸이 그러하고, 우피치미술관이 그러하며, 피렌체 두오모가 그러하다. 


한데 이 절정의 관광 시즌에 오직 그리스만이 파리가 날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저러하니, 나는 당연히 아크로폴리스 입장도 저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는 그에 견주면 텅텅 비었다. 그 아크로폴리스 기슭 저명한 제우스 신전은 한 시간가량을 머물렀지만 그 넓은 유적에 개미새끼 몇 마리만 구경했다. 


<수니온 베이 안내판>


이로써 보건대 그리스는 로마와 더불어 유럽문명의 본향이라는 허울만이 넘실댈 뿐, 그곳을 찾은 사람은 턱없이 적었다. 아크로폴리스 연간 관람객이 얼마인지 내가 통계치를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불국사 석굴암에 견주어 10분의 1수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만나 IMF 구제금융 신세까지 진 그리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견주어 경제규모가 아주 작다. 단순히 경제규모가 작다 해서 관광객이 적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그리스니깐 더할지도 모르겠거니와(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같은 지중해 국가들인 프랑스와 이태리와 스페인이 비대한 관광객 유입으로 몸살을 앓는데 견주어, 그리스를 찾는 사람이 없다. 저들 3개 국가는 역시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못하나, 관광수입만으로 실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스라 해서 관광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 오라고 손짓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절박함이 나는 친절한 안내판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요샌 외국물 께나 먹어대는 바람에, 이 시스템이 좋다 해서, 우리도 문화재 안내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어도단이라 나는 본다. 겉멋만 잔뜩 들어, 그 내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는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절박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관광객을 끌어와야 한다. 그런 절박성이 있다. 그 절박성이 1년 열두달 가봐야 외국인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문화재 현장에 굳이 영어 안내판을 단 이유다. 그렇다면 저들 논리대로 아무런 안내판도 안 세워 놓는다? 가뜩이나 아는 것도 없는데 안내판까지 없어봐라. 어떤 놈이 다시 가겠는가? 절박하기는 우리나 그리스가 마찬가지다. 


<로마 마돈나성당 한 채플 안내판>


그렇다면 이태리 프랑스는 우리 기준으로 불친절하기만 한가?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전통사찰만큼 흔하디 흔한 성당을 보자. 유럽 성당은 구조가 내부에 작은 예배당 공간을 벌집처럼 갖추곤 하는데, 이를 채플이라 한다. 한데 전체 성당 안내판은 없지만, 이런 채플마다 자세한 문화재 안내판이 즐비하다. 참으로 친절하기만 한 안내판이 거의 반드시 있다. 로마 성당은 내가 지금껏 마흔군데는 돈 듯한데, 외부에서는 전연 쳐다보지도 않는 성당도 들어가 보면 채플별 안내판 설명이 그리 친절하고 번다할 정도로 자세하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노트르담 성당이나 바티칸 성당이 무슨 안내판이 필요하겠는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까닭에, 그리고 그에 관련한 정보는 넘치는 까닭에 현장에서 굳이 그것을 정리한 전체 안내판이 필요없기 때문에 안세웠을 뿐이다. 반면 그 내부를 구성하는 채플이나 조각상 등등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소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래서 안내판이 생긴 것이다. 그네들 안내판이 불친절하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말은 표피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내막을 들여다 보면 저들 역시 친절하기 짝이 없다. 


정리한다. 

첫째, 문화재 안내판을 만든 절대의 동인은 절박성이다. 

둘째, 유럽의 문화재 안내가 불친절하다는 말은 무식의 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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