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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노회찬을 애도하며 - 다시 읽어보는 ‘어부의 노래’](홍승직 해설 번역)

by taeshik.kim 2018.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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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애도하며 - 다시 읽어보는 ‘어부의 노래’](홍승직 해설 번역)


<어부의 노래>(漁父辭)


역사와 전통은 있지만 최근 들어 경영진이 무능하여 날로 부실해지기만 하는 ‘갑’ 회사가 있다. 이에 반해 ‘을’ 회사는 후발 주자로서 ‘갑’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푸대접을 받았지만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고 탁월한 전략을 세워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여 결국 ‘갑’을 인수 합병할 작전을 짜게 된다. 여기서 ‘갑’의 중역들은 두 파로 나뉜다. 어차피 무능한 오너가 계속 경영을 맡으면 회사가 망할테니 차라리 ‘을’에게 합병되는 것이 낫다고 보고 은근히 합병을 부추기는 ‘에라파’와 그래도 어떻게든 무능한 경영진이 정신 차리도록 계도하여 회사를 살려보자는 ‘구라파’다.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구라파’에 남은 중역은 한 사람 뿐이고, 다른 모든 중역들은 ‘에라파’로 돌아섰다. 회사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구라파’의 이 사람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고 노숙자로 전락한다. (‘에라파’의 농간으로 해고당했다는 설도 있다.)

‘구라파’의 이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시대와 형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꽉 막힌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갑’에게 의리와 충성을 다하는 모범 사원으로 볼 것인가? 또한 ‘을’의 눈에 이 사람은 어떻게 비칠까? 이 사람에 대한 평을 내리기가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얘기를 본류로 돌려보자. ‘갑’은 옛날 중국 전국시대 패권을 다퉜던 일곱 나라 중 하나인 남방의 강대국 초(楚)나라이다. ‘을’은 떠오르는 강력한 챔피언 후보 진(秦)나라이다. 마지막 남은 ‘구라파’의 한 사람은 바로 초나라의 굴원(屈原)이다.

굴원이 보기에, 초나라는 가망이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진나라에 먹혀버릴 게 뻔했다. 당시 초나라의 왕은 회왕(懷王)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원은 회왕이 조만간 정신을 차려서 예전의 위엄을 되찾고 진나라와 정정당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그동안 주기로 약속했던 땅을 줄테니 한 번 방문하라는 진나라 왕의 유혹 작전에 넘어간 회왕은 진나라를 방문할 일정을 짜기에 이른다. 다른 대신들은 어서 가서 땅을 받아오라고 재촉했지만, 오직 한 사람 굴원만은 절대 가면 안된다고 결사적으로 회왕을 말렸다. 그러나 회왕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애원하는 굴원의 손을 뿌리치면서 당장 그를 파면하고 진나라로 출발했다. 암울한 앞날을 감지한 굴원은 더 이상 정계에 미련을 버리고 방랑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보려는 <어부의 노래>(漁父辭)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굴원은 쫓겨나 강가에서 유랑하고 연못가를 떠돌면서 시를 읊조리곤 했다. 얼굴색을 보아하니 초췌하기 짝이 없고 몸집은 비쩍 말라비틀어졌다.

어부가 이를 보고 물었다. “아니, 선생님은 초나라를 주름답던 삼대 명문 귀족 출신 아닙니까?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세상 모두 혼탁한데 저 홀로 맑고, 사람들은 모두 취했는데 저 홀로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쫓겨났지요.”

어부가 말했다. “성인(聖人)이란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변화와 어울려 밀고 당기기를 잘 하는 법이죠. 세상 사람 모두 혼탁하면, 까짓거 나도 함께 어울려 진흙탕을 휘저어서 흙탕물 튀기며 놀면 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모두 취했으면, 까짓거 나도 술판에 끼어 술 걸르고 남은 술지게미라도 먹고 가라앉은 탁주라도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뭘 그리 혼자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고하게 행동하다 이렇게 쫓겨난 신세가 된단 말인가요?”

굴원이 말했다. “‘방금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방금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깨끗하게 씻어 뽀시시한 몸에 어찌 옷이나 모자의 거무튀튀한 티끌을 묻힌단 말이오? 차라리 상수(湘水)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나를 장사지내면 지냈지, 어찌 희디 흰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단 말이오?”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떠났다. 노를 두드려 장단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 물 맑으면, 내 갓끈 씻으리. 창랑 물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

그렇게 떠나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전해지는 <어부의 노래>는 여기까지이다. 창랑(滄浪)과 상수(湘水)는 각각 현재 중국의 호북성(湖北省)과 호남성(湖南省)의 일정 구역을 흐르는 장강(長江)의 지류로, 당시 초나라의 주요 무대였다. 이 지역은 또한 훗날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주요 무대이자 접전지이기도 했다.

갓끈을 씻는다는 건 뭔 말인가? 요즘으로 치면 고위 관리로 발탁되어서 출근할 때 입을 정장을 준비한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출사(出仕)를 준비한다는 말이다. 옛날 관리들은 모자까지 격식이 있어서, 정장을 할 경우 모자를 머리에 고정시키는 갓끈이 필수품이었다. 그럼 발을 씻는다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정계를 떠나서 은거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 다 잊고 잠시 어디론가 소풍 가는 것을 지금도 ‘탁족(濯足)하러 간다’고 한다. 이로부터 ‘갓끈을 씻는다’는 뜻의 ‘탁영(濯纓)’과 ‘발을 씻는다’는 뜻의 ‘탁족(濯足)’은 출사(出仕)와 은거(隱居)의 대리어로 쓰이게 되었다.

망국을 예감하고 천하를 방랑하며 비탄과 회한의 노래를 부르던 굴원은 결국 강에 몸을 던졌다. 굴원이 몸을 던진 강가 사람들은 그 충정을 애도하여 찰밥을 연잎(또는 댓잎)에 싸서 던져주어 물고기가 굴원의 육신을 뜯어먹지 말고 대신 그것을 먹도록 했다. 이것이 지금도 중국 남방에서 단오에 ‘쫑즈(粽子)’를 먹는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굴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땅을 받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희희낙낙 진나라로 간 회왕은 진나라에 입국하자마자 억류되어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객사하고 말았다. 머지 않아 초나라는 멸망했고, 진나라는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어부의 노래>에 등장한 두 인물 어부와 굴원은 끝없는 토론의 주제와 술자리 안주거리를 제공했다. 세상이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던 시대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라에서든 회사에서든 태평성대는 거의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아주 잠깐일 뿐이요, 대부분은 경쟁, 투쟁, 승리, 패배, 번영, 몰락 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세월인 것이다. 이는 혹자에게는 기회로 가득 찬 세상이요, 혹자에게는 발조차 들여놓기 싫은 혼탁한 세상일 뿐이다. 이러한 격동의 세파에 뛰어들 것인가, 멀리 할 것인가, 뛰어들고 나서 어찌 할 것인가, 멀리 하고 나서 어찌 할 것인가... 누구는 갓끈을 씻고 누구는 발을 씻는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누가 누구를 찬양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어찌 보면, 세상 모두 취했는데 나 혼자 깨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모두 깨어 있는데 나 혼자 취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원문】

<漁父辭>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餔其糟而歠其釃?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학습자료】

□ 衆醉獨醒(중취독성): 사람들은 모두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衆人皆醉我獨醒(중인개취아독성)’의 준말.

□ 與世推移(여세추이):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밀고 당기며 살아가다.

□ 淈泥揚波(굴니양파):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튀기며 놀다. 혼탁한 세상에 어울려 그럭저럭 살아가다. ‘淈其泥而揚其波(굴기니이양기파)’의 준말. 淈(굴): 휘저어 흐리게 하다. 泥(니): 진흙, 진창.

□ 餔糟歠釃(포조철리): 술지게미로 배를 불리고 탁주를 마시다. ‘餔其糟而歠其釃(포기조이철기리)’의 준말. 餔(포): 먹다, 배불리다. 糟(조): 술지게미. 歠(철): 핥다, 마시다. 釃(리): 묽은 술. (시) 거르다.

□ 深思高擧(심사고거):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고하게 행동하다.

□ 莞爾而笑(완이이소): 빙그레 웃다. 莞爾(완이): 빙그레 웃는 모양.

□ 滄浪濯纓(창랑탁영): 창랑의 물에 갓끈을 씻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의 준말

□ 滄浪濯足(창랑탁족): 창랑의 물에 발을 씻다.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의 준말

□ 濯纓濯足(탁영탁족): ‘창랑탁영’과 ‘창랑탁족’을 합한 말. 

□ 行吟澤畔(행음택반): 연못가를 떠돌면서 시를 읊조리다. 원래는 원문에서처럼 슬프고 비참한 생활을 일컬었는데, 나중에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일컫는 말로도 쓰임. 澤(택): (연)못. 畔(반): (물)가.

□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 방금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 쓰고, 방금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沐(목): 머리 감다. 彈(탄): 튀다, 튕기다. 浴(욕): 몸을 씻다, 목욕하다. 振(진): 털다.

□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 깨끗하게 씻어 뽀시시한 몸에 어찌 옷이나 모자의 거무튀튀한 티끌을 묻히겠는가? 察察(찰찰): 깨끗한 모양. 汶汶(문문): 지저분한 모양.

□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蒙世俗之塵埃乎(몽세속지진애호): 어찌 희디 흰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 晧晧(호호): 하얀 모양, 밝은 모양. 蒙(몽): 뒤집어쓰다. 塵埃(진애): 먼지.


** 이상은 순천향대 중문학과 홍승직 교수 페이스북 글인데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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