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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오보 인정을 두려워하는 언론, 오판을 인정 안하는 학계

by taeshik.kim 201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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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tember 9, 2016 글을 문맥을 손질하는 수준에서 전재한다.


한국 언론을 향한 질타 중에 저 항목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항용 말하기를 "오보를 인정하더라도 그 공지는 눈깔에 보일랑말랑한 크기로 싣는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 어떤 단체를 고발하는 기사를 5단짜리로 썼다가 그것이 오보로 드러났을 때는 그 공지 역시 적어도 5단짜리 크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항용 외국 저명 언론을 들어, 외국에서는 그렇지 아니한테 우리 언론은 왜 이 꼬라지라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대체로 틀린 말이기도 하다.

1851년 9월 18일자 New-York Daily Times 창간호. 뉴욕타임스 전신이다. 뭐 이런 양놈 유서 깊은 언론이 오보는 즉각 인정한다, 것도 대대적으로 그리한다 하는 통념이 있지만 웃기는 소리다.



오보...이거 인정하기 쉽지 않다. 이는 《뉴욕스타임스》 《워싱턴포스트》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오보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체통, 가오의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신뢰의 문제와 연동하는 까닭이다.


저런 공격을 주로 해 대는 자 중에는 소위 지식인사회 그룹에 분류되는 이가 많다. 소위 한가닥 한다는 교수입네 박사입네 하는 자가 많다.


한데 말이다.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 너희 하는 꼴을 보면 구토가 난다.


너희 중에 오류 인정하는 지식인 분자 내가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이전 어떤 글 어떤 논문 어떤 책에서는 이리이리 썼다가 그것이 오류임이 밝혀졌는데도, 그래 명백한 오류다, 내가 잘못봤다...라는 식으로 인정하는 놈을 내가 보덜 못했다.




물론 그런 사람이 가끔 있기는 하더라. 한데 그 꼬라지가 오보 할 수 없이 인정하는 우리네 언론과 피장파장 밑끼나똥끼나더라.


오류를 인정하는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더라.


조선총독부시대에 고적조사위원 등을 지내면서 한반도 전부를 깡그리 발굴조사하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신라사를 주물한 절대의 공신이다.


물론 이 친구 그 사관은 구토가 나는 대목이 적지 않아, 우리가 아는 식민사학의 전형을 구축한 인물이기도 한다.


이마니시 류 글쓰기 특징이 있는데, 같은 글이라고 해도 어느 잡지에 실을 때, 그리고 그것을 단행본으로 정리할 때 등등의 기회마다 반드시 오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더구나 어떤 대목에서 잘못봤는지를 반드시 표시를 한다. 물론 인식의 변화 역시 당연히 왜 바뀌었는지를 반드시 표시하더라.


어째 우리 언론이나 지식인 분자나 저 악랄한 식민사학의 원흉보다 못하단 말인가?


지식인 사회가 오류 인정에 인색하다 해서 오보 인정에 언론이 인색해야 한다거나 그래도 된다는 당위가 성립할 수는 없다.


언론은 언론대로 언제건 오보로 드러난 보도는 즉각 시정해야 하며, 지식인사회는 그들대로 오류는 즉각잭각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


언론이건 학계건 표절은 가장 큰 치욕이다.

후자에서는 특히 이 일이 빈발해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지가 표절하고 또 그리 판정나도 제대로 인정하는 일은 가뭄에 나는 콩 같기만 하다. 그러기는커녕 표절을 일삼는 자가 다른 사람 표절은 사자후를 토하며 비난하더라.

근자 어느 저명한 학계인사가 과거 자신의 표절을 인정하는 글을 올린 걸 봤다.

오보? 오보가 문제인가? 오보는 어떤 언론이나 노출하는 상시의 위험이며, 항용 발생한다. 문제는 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는 침소봉대하고, 그 반대편은 침묵하는 일이다. 이건 오보보다 그 심각성이 몇백만배 더하다.

한쪽은 눈과 귀를 쳐감고 막으면서 그 반대편은 그 시대를 증언하는양 포장하는 일은 언론이 항용 동원하는 역사조작 방법이다. 왜? 그것이 오보는 아니니깐 말이다.

오보를 피하기 위한 눈가린아웅에 지나지 않는다.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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