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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경산 하양 목관묘 발굴(2017)

by taeshik.kim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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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림문화재연구원이 2017년 조사한 경산 하양 목관묘다. 당시 발굴소식은 이랬다. 

 

 

 

2017.11.23 13:32:18
2천년전 압독국 왕릉급 무덤 발굴…"규모·부장품 압도적"(종합2보)
경산 하양읍서 목관묘 나와…부채 3점 발견은 최초
치아·두개골 등 인골 남아 있어…중국제 청동거울·동검 등도 출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2천년 전 경북 경산 일대를 지배한 압독국(押督國) 시대의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목관묘(木棺墓·나무널무덤)가 발견됐다.

 

이 무덤은 기원 전후에 한반도 남부에서 유행한 통나무 목관묘로, 규모나 부장 유물이 동시대 다른 무덤을 압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묘광

 

무덤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이 목관묘가 창원 다호리 1호 목관묘와 경주 조양동 38호 목관묘의 중간 단계 무덤으로, 경산 압량면 일대에 있었던 고대 소국인 압독국의 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왕릉 여부는 추가 조사를 통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경산 하양(무학)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 내 하양읍 도리리 115-5번지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압독국 시대 왕릉급 무덤을 비롯해 원삼국시대인 1세기 전후의 목관묘 6기를 발굴했다고 23일 밝혔다.

 

왕릉급 무덤으로 지목된 6호 목관묘는 참나무로 제작됐다. 이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놓였으며, 전체적으로는 ㅍ자 형태다. 통나무를 파서 시신을 두고, 길쭉한 나무 판재를 사방에 세웠다. 목관의 크기는 길이 260㎝, 너비 102㎝다. 목관이 안치된 묘광(墓壙)은 길이 311㎝, 너비 147㎝로 조사됐다.

 

출토유물, 왼쪽은 청동검 등이 보이며, 오른쪽은 시신 얼굴 가리개로 쓴 부채 

 

목관 안에서는 피장자의 두개골과 치아, 팔뼈, 정강이뼈가 일부 확인됐다. 고대 목관묘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무덤 내외부에서는 청동거울, 칠초동검, 칠초철검, 청동마(靑銅馬), 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유물은 깃이 달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채다. 양손에 쥐어졌던 것으로 짐작되는 두 점은 허리춤에서 발견됐고, 나머지 한 점은 배 위에 얹힌 듯한 형태로 나왔다. 

 

출토유물 중 동경

 

부채는 창원 다호리, 성주 예산리, 김해 봉황동, 경산 압량면 등지의 고대 목관묘에서 1∼2점이 나왔으나 한꺼번에 3점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연구원은 강조했다.

 

시신의 어깨 위쪽에서는 지름이 10㎝에 이르는 중국제 청동거울이 출토됐다. 이에 대해 연구원 측은 경주 조양동 38호분, 밀양 교동 17호분에서 나온 거울과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또 팔뼈 아래에서는 깨뜨려 묻은 지름 17.5㎝의 거울 소명경(昭明鏡)이 발견됐다.

 

동검류 

 

또 무덤 바닥에서는 판상철부(板狀鐵斧·판 모양 쇠도끼) 26점도 드러났다. 판상철부 중 일부는 동일한 간격을 두고 측면에 3개씩 박혔는데, 추가로 조사하면 더 많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성림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목관 아래에는 요갱(腰坑·허리 부근 아래쪽을 판 구덩이)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보통 요갱에는 귀중한 부장품을 넣기 때문에 목관을 들어내고 추가 조사를 하면 더 많은 유물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제 청동거울, 부채, 철검 등이 부장된 최고 위계의 무덤"이라며 "고대 목관묘의 축조 방식을 규명하고, 목관 구조를 복원할 자료를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시신 얼굴가림용 부채 

 

다만 목관은 상당히 약해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목관과 유물 가운데 한쪽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보존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조사 구역에서는 고대 목관묘 외에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50여 기와 환호(環濠·도랑 겸 마을 경계시설), 초기철기시대 옹관묘와 함정 유구,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는 기와가마, 도로, 우물 등이 나왔다.(끝)

 

 

 

2017.11.23 13:40:00
왕릉급 무덤 발견으로 고대 소국 '압독국' 실체 드러나나
압독국 중심 임당동서 약 10㎞ 거리…"소국 형성 과정 보여주는 자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북 경산에서 1세기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릉급 목관묘가 발굴되면서 고대에 이 지역을 지배한 압독국(押督國)의 존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머니호 

 

'삼국사기'에 나오는 압독국은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2세기 초반에 신라에 병합됐다는 경산 압량면 일대의 소국이다. '압독'은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 시기에 김유신이 압독주도독으로 임명됐다는 내용으로 또다시 등장한다.

 

압독국은 1980년대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에서 고대 고분이 발굴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2년 도굴꾼이 임당동 2호분에서 훔친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큰칼 등을 해외로 유출하기 전 적발된 뒤 영남대박물관이 본격적인 발굴에 나섰다.

 

1988년 조영동의 한 무덤에서는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에도 금동관과 금동제 허리띠, 은제 반지 등 유물 800여 점이 발견됐고, 다른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殉葬)의 흔적도 드러났다.

 

오수전



23일 발굴 성과가 공개된 경산 하양읍 도리리의 왕릉급 목관묘는 임당동에서 약 10㎞ 떨어진 거리에 있다. 임당동은 금호강 남쪽에 있으나, 이 무덤은 강 북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하양의 왕릉급 목관묘는 임당동의 같은 시기 무덤과 비교하면 규모와 부장품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무덤에서는 청동거울과 동검, 철검, 청동마(靑銅馬), 팔찌, 넓적한 판 모양 쇠도끼인 판상철부(板狀鐵斧) 등 수많은 부장품이 쏟아졌다.

 

당시 경북 지역을 흐르는 금호강과 형산강 일대에는 소국과 같은 정치체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임당동에 이어 하양읍에서도 권력자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경산 일대에 상당한 세력이 형성돼 있었음이 확인됐다.

 

칠초동검

 

학자들은 경주에서 신라의 모체가 된 사로국(斯盧國) 시대에는 사라리 130호분과 경주평야 내 탑동 고분 등 대규모 목관묘가 각지에 흩어져 있었으나 후대에 월성 인근 대릉원에 대형 봉분이 집중적으로 조성됐다는 점을 들어 경산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하양 목관묘에 대해 "영남 지역 목관묘 중에서는 부장품 구성이 두드러지는 무덤"이라며 "하양읍과 임당동 등지에 각기 다른 세력이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임당동 쪽으로 통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하양 목관묘는 고대국가 이전에 진한 소국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한 뒤 "지금까지 압독은 임당동에서만 성장하고 발전했다고 생각됐는데, 하양읍에도 독자적인 집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끝)

 

부채 등 출토유물 

 

 

2018.06.01 08:48:16
압독국 왕릉급 무덤서 오수전 26개 꺾창집 추가 발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동시대 무덤에 비해 압도적 규모와 부장 유물로 관심을 끈 경북 경산 압독국(押督國) 왕릉급 무덤에서 중국 고대 동전인 오수전(五銖錢) 26개가 붙은 꺾창집이 추가로 나왔다.

 

1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에 따르면 경산 하양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에서 발굴한 6호 목관묘 요갱(腰坑·허리 부근 아래쪽을 판 구덩이) 대나무 바구니 안에서 옻칠한 나무집에 끼운 청동꺾창 1점과 청동창 2점이 발견됐다. 길이는 꺾창이 약 30㎝, 긴 창이 대략 70㎝다.

 

특히 꺾창집은 앞뒤를 오수전으로 빽빽하게 장식한 점이 주목된다. 한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는 원형 동전인 오수전은 중국 한나라 무제가 다스리던 기원전 118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당나라 때인 621년 폐지됐다. 

 

박광열 원장은 "지금까지 국내 고대 무덤에서는 오수전이 많아야 3개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중국 동전이 많이 출토됐다는 점에서 위세가 대단한 지도자가 묻힌 삼한시대 최고 수장묘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요갱에 있던 청동꺾창과 청동창은 금방 만든 것처럼 상태가 좋다"며 "요갱에서는 귀중한 부장품이 나오는데, 이 유물은 신에게 바친 공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목관묘 조성 시기로 추정한 기원후 1세기 전후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무덤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동꺾창과 청동창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 중이며, 국립대구박물관이 19일 개막하는 특별전 '금호강과 길'에 유물 사진이 전시된다.

 

목관 길이가 260㎝, 너비가 102㎝인 하양 6호 목관묘에서는 지난해 부채 3점을 비롯해 청동거울, 옻칠한 나무집에 넣은 동검과 철검, 청동마(靑銅馬), 팔찌, 판상철부(板狀鐵斧·판 모양 쇠도끼) 26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창원 다호리 1호분, 경주 조양동 38호분과 사라리 130호분에 비견할 만한 고대 최고 목관묘라는 평가를 받았고, 2천년 전 경북 경산 일대를 지배한 진한 소국 압독국 왕이 묻혔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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