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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한강 때문에 왕성王城일 수 없다던 풍납토성

by 한량 taeshik.kim 2020. 11. 29.

1987년인가 89년인가 최몽룡 권오영 이름으로 풍납토성 논문 한 편이 나왔다. 요점은 풍납은 왕성이 될수 없단 거였다. 이유는 걸핏하면 홍수가 나는 데다가 왕성을 건설할 순 없단 거였다. 

 

한강을 낀 지금의 풍납토성 


나는 이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풍납이 왕성이건 아니건 백제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살았다. 졸저에서 이리 말했다.

왕성이 아니라고 하자. 왕성 아닌 도시라 해서 그걸 미쳤다고 강가에 건설하는가? 왕성이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다. 그건 부차적이다.

 

풍납토성과 한강


한데 이 논문이 이후 주구장창 인용됐다. 이 논문은 나중에 권선생한테 들으니 권선생이 거의 다 썼다. 

요샌 틈만 나면 권선생은 내가 잘못 봤다는 고백을 한다. 자설을 폐기했음을 고백하는 사람 난 거의 보질 못했다.

(2017. 11. 26)

 

***

 

The Han River, which runs from the east to the west through the center of the Korean Peninsula, also passes through Seoul.

 

Pungnaptoseong Fortress is located on the southern bank of the Han River, at the point that passes through Seoul.

 

There was an opinion that Pungnaptoseong could be the place where the royal castle of the Hanseong Baekje period was not known until a while ago.

 

This is because, above all, the size of the fortress is very large, and relics and remains from the Hanseong Baekje period were poured out.

 

However, the opinon  was soon buried, above all, it was because Pungnaptoseong was located along the Han River. 

 

Simply put, it was because the Baekje people couldn't build a royal castle in such a place where floods would hit them.

 

But I have always questioned such claims. Regardless of whether Pungnaptoseong is a royal castle or not, no one can deny that countless people lived there for a long time during the Hanseong Baekje period.

 

In the end, my suspicion was proved to be true by actively excavating and researching Pungnaptoseong since the 1990s.

 

문제의 논문은 최몽룡·권오영,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본 백제초기의 영역 고찰>(《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학논총》, 정음문화사, 1985)다. 

댓글1

  • 신석재 2020.12.02 22:40

    <삼국사기/백제본기>에 기록된 한성.한수는 당연히 지금의 서울.한강이 아니다.

    백제 도읍지를 지금의 서울.한강으로 잘못 인식하게 된 시초는 이조선시기부터이고 일본 명치왕군부가 지금의 란하 지역에 있던 요하.압록강.평양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백제의 한성.한수를 지금의 서울.한강으로 잘못 인식하는 시각이 더욱 굳어진 것 뿐이다.

    백제의 왕성은 지금의 란하 중류 동쪽 지역에 있었다.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 주석의 1250 리 길이 대요수가 지금의 란하 중류 지점의 서북쪽 지류였고 <요사/지리지>부터 <청사고/지리지>까지의 요하가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였기 때문이다.

    즉 낙랑군 위치가 지금의 중국 요녕성 평천 동쪽 지점부터 더 동쪽의 건창 부근까지였으니 위례.한성은 그 낙랑군의 서쪽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략 지금의 건창궁 부근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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