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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탈해왕(脫解王) ☞ 석탈해(昔脫解)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 석탈해(昔脫解)
석탈해(昔脫解) 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남해차차웅 : 5년(서기 8) 봄 정월에 왕이 탈해(脫解)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맏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7년(서기 10) 가을 7월에 탈해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무(軍務)와 국정(國政)을 맡겼다.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유리니사금 :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남해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고 왕비는 일지(日知) 갈문왕(葛文王)의 딸이다., 앞서 남해가 죽자 유리가 마땅히 왕위에 올라야 했는데, 대보(大輔)인 탈해가 본래 덕망이 있었던 까닭에 왕위를 미루어 사양하였다. 탈해가 말하였다.임금의 자리는 용렬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내가 듣건대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齒]가 많다고 하니 떡을 깨물어서 시험해보자. 유리의 잇..
탈해(脫解) ☞ 석탈해(昔脫解)
탈해니질금(脫解尼叱今) ☞ 석탈해(昔脫解)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 삼국유사 권제1 기이 1 제4대 탈해왕(脫解王) :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 토해니사금吐解尼師今이라고도 한다)은 남해왕(南解王) 때(고본古本에는 임인壬寅년이라고 했으나 이는 잘못이다. 가까운 일이라면 노례왕弩禮王 즉위 초년보다 뒤의 일일 것이니 양위讓位를 다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먼저 일이라면 혁거세왕赫居世王 때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임인壬寅년이 아닌 것임을 알겠다)에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 한 척이 와서 닿았다. ☞ 석탈해(昔脫解)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 석탈해(昔脫解)
호공瓠公 ?~?. 신라 초기 때 대보까지 역임한 정치가로 왜인 출신이다. 주된 활동시기는 박혁거세 이래 탈해니사금 시대에 걸친다. 왜인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정착할 때 허리에 박을 차고 왔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양산 아래 좋은 땅에 살다가 탈해한테 그 땅을 빼앗기니, 이곳이 나중에 월성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신라본기 제1) 박혁거세 : 38년(서기전 20) 봄 2월에 호공(瓠公)을 마한(馬韓)에 보내 예방禮訪했다. 마한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하기를 "진한과 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이와 같은가?"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두 성인이 일어나서부터 인사(人事)가 잘 다스려지고 천시(天時)가 순조로와, 창고는 가득 차고 백성은 공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