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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탈해(脫解) ☞ 석탈해(昔脫解)
탈해니질금(脫解尼叱今) ☞ 석탈해(昔脫解)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 삼국유사 권제1 기이 1 제4대 탈해왕(脫解王) :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 토해니사금吐解尼師今이라고도 한다)은 남해왕(南解王) 때(고본古本에는 임인壬寅년이라고 했으나 이는 잘못이다. 가까운 일이라면 노례왕弩禮王 즉위 초년보다 뒤의 일일 것이니 양위讓位를 다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먼저 일이라면 혁거세왕赫居世王 때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임인壬寅년이 아닌 것임을 알겠다)에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 한 척이 와서 닿았다. ☞ 석탈해(昔脫解)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 석탈해(昔脫解)
호공瓠公 ?~?. 신라 초기 때 대보까지 역임한 정치가로 왜인 출신이다. 주된 활동시기는 박혁거세 이래 탈해니사금 시대에 걸친다. 왜인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정착할 때 허리에 박을 차고 왔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양산 아래 좋은 땅에 살다가 탈해한테 그 땅을 빼앗기니, 이곳이 나중에 월성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신라본기 제1) 박혁거세 : 38년(서기전 20) 봄 2월에 호공(瓠公)을 마한(馬韓)에 보내 예방禮訪했다. 마한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하기를 "진한과 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이와 같은가?"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두 성인이 일어나서부터 인사(人事)가 잘 다스려지고 천시(天時)가 순조로와, 창고는 가득 차고 백성은 공경..
현유玄遊 해동고승전 권2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에 이렇게 말했다. 중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랑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고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타寺)에 머물러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70여 세였다. 그 뒤를 이어 혜업(惠業)·현태(玄泰)·구본(求本)·현각(玄恪)·혜륜(惠輪)·현유..
승철(僧哲) 해동고승전 권2
현태(玄太)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에 이렇게 말했다. 중 아리나(阿離那; 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 마摩는 혹은 낭郞)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고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타寺)에 머물러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70여 세였다. 그 뒤를 이어 혜업(惠業)ㆍ현태(玄泰)ㆍ구본(求本)ㆍ현각(玄恪)ㆍ혜륜(惠輪)ㆍ현유(玄遊)와 그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