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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986

김효렴(金孝廉) 삼국사기 열전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9월에 견훤은 근품성(近品成. 지금의 산양현)을 쳐 빼앗아 불을 질렀다. 이에 신라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자 태조는 장차 군사를 내려는데 견훤은 고울부(高鬱府. 지금의 울주)를 쳐서 취하고 족시림(族始林. 혹은 계림鷄林 서쪽 들이라고 했다)으로 진군해 졸지에 신라 서울로 들어갔다. 이때 신라왕은 부인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 나가 놀고 있었으므로 더욱 쉽게 패했다. 견훤은 왕의 부인을 억지로 끌어다가 욕보이고 왕의 족제(族弟) 김부(金傅)로 왕위를 잇게 한 뒤에 왕의 아우 효렴(孝廉)과 재상 영경(英景)을 사로잡고, 나라의 귀한 보물과 무기와 자제(子弟)들, 그리고 여러 가지 공인(工.. 2018. 9. 28.
최견(崔堅)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윤빈(尹=)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추조(鄒造)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수오(隨=)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형적(邢積)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유문(有文)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관흔(官昕)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왕충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양지(楊志)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명식(明式)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홍술(洪術) 신라말 진보장군으로 있다가 경명왕 6년(922) 고려 왕건한테 귀부해, 심복으로 활동하다가 천성 2년(927),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의성부 태수로 있으면서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12(신라본기 제12) 경명왕 : 6년(922) 봄 정월에 하지성(下枝城) 장군 원봉(元逢)과 명주(溟州) 장군 순식(順式)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태조가 그들의 귀순을 생각하여 원봉의 본래 성(城)을 순주(順州)로 삼고, 순식(順式)에게는 성(姓)을 내려 왕씨(王氏)라 하였다. 이 달에 진보(眞寶) 장군 홍술(洪述)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9월에 견훤은 근품성(近品成․지금의 산양현山陽縣)을 쳐 빼앗아 불을 질렀다. 이에 신라.. 2018. 9. 28.
공직(=直)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상귀(相貴)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훈겸(訓謙)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상달(尙達)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금강(金剛) (2)후백제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신검(神劒) 후백제 마지막 왕. 창업주인 아버지 견훤을 폐위 유폐하고는 즉위해 나라를 다스렸지만, 고려에 패해 포로가 되고 나라가 없어졌다. 삼국사기 열전 :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또 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있어 모양이 몹시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곤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아 그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다. 이때부터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경복(景福) 원년(元年) 임자(壬子.892)에 이르러 .. 2018. 6. 14.
미륵선화(彌勒仙花) 신라 화랑 국선의 시초인 설원랑(설화랑)을 일컫는 존칭.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니,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梁) 대동(大同) 6년 경신(庚申·540)에 즉위했다. 백부(伯父)인 법흥왕(法興王) 뜻을 사모해 한 마음으로 부처를 받들어 널리 절을 세우고, 또 많은 사람에게 중이 되기를 허락했다. 왕은 또 천성이 풍미(風味)가 있어 크게 신선을 숭상하여 민가 처녀로 아름다운 이를 뽑아 원화(原花)를 삼았으니, 이는 무리를 모아 사람을 뽑고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가르치려 함이었으니, 이는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요(大要)이기도 했다. 이에 남모랑(南毛.. 2018. 6. 14.
백족화상(白足和尙) 해동고승전 권 제1 2018. 6. 14.
모록(毛祿)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 백성으로, 고구려에서 온 불교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포교토록 한 인물. 곳에 따라 모례(毛禮)라 표기한 데도 있다. 그의 성별은 전연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보통 남자로 간주되지만, 여성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권 제3 흥법(興法) 제3 아도기라(阿道基羅) : 또 21대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시자(侍者) 세 사람을 데리고 역시 모례(毛禮)의 집에 왔는데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했다. 그는 여기에서 몇 해를 살다가 아무 병도 없이 죽었고, 그 시자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니 간혹 믿는 사람이 생겼다(주에 말하기를 "본비와 모든 전기와는 사실이 다르다"고 했다. 또 《고승전(高僧傳)》에는 서천축 사람이라고.. 2018.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