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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 *** 아래는 대한남성과학회 간행 기관지인 《건강한 성 행복한 삶》 2017년 15권 1호(간행일 2017-07-21) '성칼럼 :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고문으로 아래서 원문 PDF를 제공한다. 내가 이곳에 전재하는 원고는 이 학회 제출본이라, 혹 최종 간행본의 그것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http://www.andrology.or.kr/pdf/2017_01/01.pdf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역사전문 언론인 “어머니와 아들이 간음한 흉노보단 낫다” “아내를 얻을 때 같은 성씨를 취하지 않음은 구별을 두터이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노(魯)나라 공작이 오(吳)에 장가들고, 진(晉)나라 후작이 성이..
문화재란 무엇인가? 왜 문화재인가? *** 아래는 December 18, 2013 내 페이스북에 일련으로 연재한 것을 하나로 통합한 것인 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누군가 서면 인터뷰에 응해서 내가 작성한 것이로되, 이것이 어떤 형태로 공간이 되었는지, 아니면, 무슨 그의 글에 인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 기준으로 딱 5년 전 오늘의 일이어니와, 그런 까닭에 그 시간만큼 내 생각이 달라진 대목이 없지는 않을 것이로대, 그 시대 내 생각을 증언하는 한 단편으로 남겨둔다. 1.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의 대문인 숭례문이 하나의 불씨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문화전문 김태식 기자님께서는 당시 사건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 우리에게는 문화재 참사 중에서는 그 사건은 아마도 생중계로 접한 최초..
일제에 납치돼 청와대에 갇힌 ‘미남 석불’ 《신동아》김태식의 考古野談 | 마지막 회 |이제는 제자리 경주로 돌려보내자일제에 납치돼 청와대에 갇힌 ‘미남 석불’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입력2017-08-21 13:14:0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여래좌상’.[오세윤 작가 제공]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한 일간 매일신보는 1934년 3월 29일자에 ‘석가여래상(釋迦如來像)의 미남석불(美男石佛), 즐풍욕우(櫛風浴雨) 참아가며 총독관저(總督官邸) 대수하(大樹下)에’라는 제목을 내건 기사 하나를 싣는다. 이런 큰 제목만으로는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인지, 이에는 ‘오래전 자취를 감추었던 경주의 보물, 박물관(博物館)에서 수연만장(垂涎萬丈)’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80년 전 문체여서..
내가 기억하는 역대 국립박물관장 - 한병삼 아래는 2018년 6월에 발간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식지 《박물관신문》 562호 기고 전문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내가 만난 박물관인들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리 붙여봤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단발성이라 아쉽기만 하다. 내가 기억하는 역대 관장 - 한병삼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장 역대 국립박물관장 혹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에 무게감만으로는 아마 한병삼 선생을 최고로 치지 않나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지만, 이런 그와 나는 이렇다 할 인연이 실은 별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12월, 정기 인사에서 내가 사회부를 떠나 문화부에 안착해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관장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거니와 그에 따라 문화재위원회라든가 발굴현장에서 가끔 마주치..
불교문화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 다음은 (재)만해사상 실천선양회가 발간하는 잡지 《불교평론》 36호(2008년 10월 10일)에 투고한 글이다. 불교문화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36호] 2008년 10월 10일 (금)김태식 taeshik@yna.co.kr 1. 잘못된 진단과 처방 이 글을 쓰는 7월 20일은 일요일임에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분쇄하고자 정부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그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도 수호를 위해 해저 광물질 조사단 구성, 운영과 국민에 대한 독도 접근권 보장, 해양호텔 건립을 비롯한 독도 관광상품 개발 등의 ‘독도 유인도화(有人島化)’가 그 핵심으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당ㆍ정은 현재 독도에 주둔한 전투경찰을..
황룡사 터에서 고고학이 일어섰다 《시사IN》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황룡사 터에서 고고학이 일어섰다황룡사 터 발굴은 신라 문화재 조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업이었다. 2만5000평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고고학계 중진 중에는 황룡사 터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이 많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7년 01월 10일 화요일 제486호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당시, 드넓은 경주평야 한가운데에 건축되었던 거대한 사찰이다. 규모로나 위계에서 신라 제일의 절이었다. 진흥왕은 당초(재위 14년째인 553년) 그 자리에 새로운 대궐을 지으려 했다. 돌연 황룡이 출현하는 바람에 대궐을 사찰로 바꿔 건설했다. 세월이 흘러 선덕여왕 시대(재위 12년째인 643년)에 승려 자장율사..
연못에서 물을 빼자 신라가 드러났다 《시사IN》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연못에서 물을 빼자 신라가 드러났다안압지는 674년에 건설한 신라시대 연못이다. 1974년 안압지 준설공사를 했는데 발굴 조사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급히 발굴 조사를 벌였다. 신라시대 목선도 나왔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신라시대 천년 왕성 월성의 동쪽에 자리 잡은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 건설한 연못이다. 당시에는 월지(月池)라 불렀다. 안압지 주변에는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가 거주하는 공간인 동궁이 있었다. 군신이 함께 연회를 즐겼을 임해전도 있었다. 신라가 고려에 흡수되어 왕국의 영화가 사라진 뒤 ..
박정희가 물었다 “금관이 나올까?” 《시사IN》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제482호 박정희가 물었다 “금관이 나올까?”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관에 집착했다. ‘고분 발굴’ 관련 보고 때도 금관 출토 가능성을 가장 먼저 물었다. 천마총에서 금관이 나오고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금관이 나왔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제482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관을 매우 좋아했다. 경주관광종합개발 실무단 측이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을 자극해서 고분 발굴 작업을 좀 더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한창 수립 중이던 1971년 6월 말~7월 초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경주 개발 실무단의 일원인 정재훈 당시 문화재관리국 사무관이 청와대 상황실에서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