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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67

“무덤 파는 게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475호 “무덤 파는 게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천마총 발굴은 한국 고고학 사상 최초로 실측을 제대로 시행한 현장으로 평가된다. 천마총 발굴조사단 김정기 단장을 비롯한 8명은 훗날 황남대총 등 경주의 대규모 국책 발굴 현장을 도맡았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475호 천마총 발굴조사단 단장은 그 유명한 문화재관리국 김정기 실장이었다. 단원들도 모두 특이한 경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실상 부단장 격이었던 김동현 문화재전문위원은, 경주와 서울을 오가야 했던 김정기 단장을 대신해 현장에 상주하는 책임을 졌다. 김동현은 이후 김정기 소장과 장경호 소장에 이어 제3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 2018. 4. 14.
“금관 빨리 파라, 각하께 갖고 가게”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제474호 “금관 빨리 파라, 각하께 갖고 가게”최대 고분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실험용으로 삼았던 천마총에서 금관이 출토되었다.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청와대 경호실에서 금관을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발굴 현장은 분주해졌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제474호 “1973년 7월인가 금관이 나왔을 때 신문에 나니깐 청와대에서 가져오라 그러더라고. 김정기 박사한테 가져갈 수 있느냐 물으니, 필요한 조사와 기록을 다 마친 뒤에 들어내어 가져갈 수 있다고 해요. 저녁에 출발했어요. 자동차 사정이 좋지 않은 시대여서 차를 두 대 가져갔어요. 금관 실은 차 한 대, 호송차 한 대. 금관 실은 차가 .. 2018. 4. 14.
경주 복원 지휘한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제473호 경주 복원 지휘한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지난해 작고한 김정기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애정을 듬뿍 받은 문화재 원로 인사이다. 그는 한국 고고학 현장에 처음으로 실측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석굴암·불국사 등 주요 문화재 복원을 진두지휘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제473호 지난해 8월26일 저녁 7시30분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에서 한 노인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향년 85세. 그는 ‘한국 문화재 부문의 박정희’라고 불려 마땅한 인물이었다. 철권통치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쩌면 평범한 고고학도요 고건축학자에 지나지 않을 그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노골적으로 챙길 정도였다. 그도.. 2018. 4. 14.
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깔려 있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활성 단층대 위에 놓인 경주는 요즘 계속된 지진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든 것 같다. 온통 학생들로 들썩이던 수학여행의 계절인데도 불국사나 석굴암, 대릉원, 첨성대 등의 주변이 한산하다. 음식점 주인들은 한숨만 쉬고 숙박업소마다 빈 객실이 넘쳐난다. 경주를 한국의 대표 관광도시로 키우려 했던 박정희 전 대.. 2018. 4. 14.
박정희의 황당 지시 “왕성 터에 호텔 지으라”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22일 목요일 제470호 박정희의 황당 지시 “왕성 터에 호텔 지으라”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신정 연휴를 경주에서 보냈다. 황룡사 발굴 현장을 찾았던 그는 ‘반월성을 발굴하고 영빈관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신라 천년 왕성에 호텔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22일 목요일 제470호 1979년 1월6일, 당시 석간이던 1면에는 ‘부산·경주에서 신정 연휴 보내’라는 제목으로 1단짜리 박정희 대통령 동정 기사가 실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두 영애(令愛) 그리고 영식(令息) 지만 생도 등 가족과 함께 부산과 경주에서 신정 연휴를 보낸 뒤 5일 오후 상경했다.” 박정희의 신정 연휴 .. 2018. 4. 14.
어이쿠! 이거 다시 덮어야겠다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12일 월요일 제469호 어이쿠! 이거 다시 덮어야겠다박정희 정권 때 경주 월성 내부를 판 적이 있다. 하지만 발굴 초기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금은 월성 조사를 못한다’라고 판단해 다시 덮었다. 역설적으로 이 덕분에 월성은 ‘막무가내 발굴’을 피할 수 있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12일 월요일 제469호 박근혜 정부가 과감히 파헤치고 있는 신라의 천년 왕궁 월성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반달 모양의 지형이다. 그래서 ‘달 월(月)’자를 붙여 월성(月城)이라 부른 것이다. 이미 신라 시대부터 그렇게 불렀다. 다만 보름달이 아니라 반달에 가까우므로, 조선 시대 이래 일각에서는 반월성으로 부르기도 했다. 박정희 전 .. 2018. 4. 14.
천년의 비밀 찾기 ‘속도전’이 정답일까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08일 목요일 제468호 천년의 비밀 찾기 ‘속도전’이 정답일까박근혜 정부의 대규모 경주 개발 프로젝트인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은 월성에서 시작되었다. 월성은 900년간 신라의 왕성으로 한국 고고학계의 성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신중한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08일 목요일제468호 지금 경주는 파헤쳐지고 있다. ‘천년 왕성(王城)’이라는 월성(月城)도 마찬가지다. 기록적이라는 무더위 와중에서도 삽질은 멈출 기미가 없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하는 월성 발굴 조사 현장에 동원되는 인부만 매일 100~150명을 헤아릴 정도니, 그 발굴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따라 .. 2018. 4. 14.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를 망가뜨리는 박근혜 정부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02일 금요일 제467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를 망가뜨리는 박근혜 정부박근혜 정부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경주를 역사문화유산 도시로 개발하려 한다. 이에 따라 황룡사를 ‘복원’하겠다고 나서자 문화재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09월 02일 금요일제467호 일제강점기 이후 경주를 지탱한 힘 중 하나가 학생들의 수학여행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시작해 그 정권이 끝나는 시점까지 추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경주를 역사도시를 넘어 관광도시로 한 차원 높인 계기가 되었다. 이 개발계획을 통해 경주에.. 2018. 4. 14.
두 ‘박통’이 추진한 경주 국책사업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 제466호 두 ‘박통’이 추진한 경주 국책사업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신라왕경 사업 마스터플랜’을 보면 2035년까지 1조5000억원을 경주에 투자할 예정이다. 그런데 사전 승인을 해야 하는 문화재위원회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이유가 무엇일까?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제466호 박정희 시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겨냥한 대한민국 ‘정신의 수도’는 경주였다. 그의 집권기에 남북한은 그야말로 사투에 가까운 정통성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역사 부문에서는, 북한이 고구려를 앞세운 데 비해 남한은 ‘신라 중심주의’로 부를 만한 사관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이런 사관에 따라, 신라.. 2018. 4. 14.
대통령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465호 대통령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국책사업으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추진했다.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이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465호 경주는 지금 온통 발굴 현장이다. 경주 시내 남쪽 월성(신라의 천년 수도 월성이 있었던 곳)처럼 훼손 위험 등으로 인해 예전에는 감히 발굴하지 못했던 곳까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신라 왕성(王城)의 구조를 확인한다며 굴삭기를 동원해 시루떡 떠내듯이 표토(表土)를 걷어내는 중.. 2018. 4. 14.
충무공을 사랑한 아버지와 딸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7일 수요일 제464호 충무공을 사랑한 아버지와 딸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충사 성역화 사업에 공을 기울였다. 본인이 직접 ‘최고 제관’으로 ‘탄신 다례식’을 집도했다. 이순신을 ‘국민의 이상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현충사를 찾았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8월 17일 수요일 제464호 유교 윤리 측면에서 볼 때, 왕조 국가와 근대 국민국가는 그 중심 가치가 판이하다. 왕조 국가의 중심 가치가 효라면, 근대 국민국가의 그것은 충이었다. 물론 이전의 왕조 국가들이 ‘효’ 못지않게 ‘충’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 가치는 표리를 이루면서 사이좋게 지.. 2018. 4. 14.
광화문 현판이 ‘박정희 글씨’였다고?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 광화문 현판이 ‘박정희 글씨’였다고?광화문 한글 현판 교체를 두고 정국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 현판 글씨의 주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정희는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문화재 현장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광화문은 조선왕조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이다. 지금 시민들이 보는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그 모습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다시 해체·이전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8년에 복원되긴 했으나 옛 모습과 상이한 철근.. 2018. 4. 14.
두 박 대통령이 사랑했던 곳, 경주 출처 : 《시사IN》 2016년 07월 29일 금요일 제462호 두 박 대통령이 사랑했던 곳, 경주박정희 대통령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다. ‘단군 이래 그랬던 적이 없었다’고 할 만큼 문화재가 각광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문화재계는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숭례문 부실 복구로 물거품이 되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7월 29일 금요일 제462호집권 4년차인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문화재 현장을 최소한 세 번 찾았다. 2013년 5월4일 숭례문 복구공사 완공 기념식, 지난해 9월7일 경주 월성 발굴 현장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 3월18일 아산 현충사를 방문했다. 물론 세 차례 방문을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문화재에 유별나게 애착을 가졌.. 2018. 4. 14.
세한도에서 생각하는 문화재 ‘원형’ 아래는 《서울아트가이드 Seoul Art Guide》 2018. 04(통권 196호) 48쪽에 실린 기고문이다. 지면 혹은 교정 단계에서 일부 덜어내기나 교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체 대의에는 변함이 없다. 이 문제는 내가 더러 말한 적이 있으나, 이 자세는 우리 문화재 현장에서 이 문제가 교정되지 않는 한 언제나 문제삼으려 한다. 세한도에서 생각하는 문화재 ‘원형’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세한도(歲寒圖)는 국보(180호) 지정 명칭이 ‘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歲寒圖)’다. 1974년 12월 31일, 국보 고시를 할 적에 저런 명패를 부여했다. 글자 그대로는 김정희가 글을 붙인 세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언뜻 그림과 글씨 주체가 다른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사람 그림에다 김정희가 발문(跋文)을 써준 듯하.. 2018. 4. 12.
낙산사 화재보도 '판박이'.. 언론 먼저 반성을 2월11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는 어떤 정치인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한다.2005년 4월5일 식목일 산불로 낙산사가 불탔을 때도 똑같은 말이 나오다가 작대기로 얻어맞은 거북이 머리마냥 쑥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숭례문 화재는 낙산사의 재방송이다. 그 대책이라며 언론매체가 각계의 이름을 빌려 쏟아내는 제안들이란 것도 실상 다를 데가 없다.획기적인 문화유산 재난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의 외침,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실천요강, 그 어느 것도 숭례문은 낙산사의 아류일 뿐이다.믿기지 않거들랑, 낙산사 화재 당시 관련 언론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단박에 안다. ...낙산사 화재보도 '판박이'.. 언론 먼저 반성을 - 기자협회보 기고 전문보기 2018. 1. 21.
국외소재 문화재, 어찌할 것인가 2014년 1월 제348호 2018. 1. 21.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의 진실 아래는 2002년 오마이뉴스 기고문이다. 이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을 정식으로 다룬 학술논문도 나중에 나왔더라만...... 알퐁스 도데 의 진실도데의 추악한 내셔널리즘과 그 한국적 변용 02.04.26 09:17l최종 업데이트 03.08.27 10:07l 1945년 8월15일 서울의 어느 보통학교 국어 교실를 무대로 삼은 한 일본인의 단편소설 끝장면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방금 전해 들은 일본인 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조선인 학생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일본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임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은 잘 지키고 있으면 스스로의 손에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때 창 밖에서 호각.. 2018. 1. 21.
《소녀경(素女經)》에도 ‘문리(文理)’는 있다 아래는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칼럼 쉰세번째 이야기(2012.8.29) 기고 전문이다. 《소녀경(素女經)》에도 ‘문리(文理)’는 있다 기자라는 지금의 직업이 그렇고, 더구나 그런 직업에서 지금 맡은 일이 그래서인지 일선 학교가 방학하는 즈음이면 대체로 이들 학생을 겨냥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고자 하는 의뢰가 언론사로 잇따른다. 개중에는 한문 관련 강좌도 적지 않다. 한때는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처럼 지목되고, 그리하여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해서 퇴출 위기에 처한 한문이 이런 대접을 받는 일을 나는 분명 고무(鼓舞)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은 속내를 속속 들여다보면 아쉬운 구석 또한 적지 않다. 체통 문제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례는 적시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다른 무엇보다 .. 2018. 1. 21.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시론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소식지 올해 6월호에 실렸다. 이 원고는 최근 문화재청 주최 공청회 발표문을 다듬었음을 밝혀둔다. 이른바 우라까이다. 732유네스코뉴스 2017년 6월호(732호) 발간ISSUU.COM 2018. 1. 21.
김태식의 考古野談 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 김태식의 考古野談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문화재 전문언론인2017년 06월 호사비 도읍기 백제 왕가의 공동묘지로 지목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쪽 지점에 ‘능산리 고분군 전시관’이 있다. 모양이 조금은 독특해 전체로 보면 둔덕을 파고 들어간 땅굴 형식이다. 아마도 사비 시대 백제 무덤 전형이 주로 산기슭을 파고 들어가 그 안에다 돌을 쌓아 묘실(墓室)을 마련한 데서 착상한 디자인일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엔 능산리 고분군 중 유일한 벽화 고분인 소위 동하총(東下塚)에서 발견된 벽화 소재 중 연꽃과 구름무늬를 잔뜩 그려놓았다. 그 내부에는 부여 일대 지형도와 능산리 일대 지형도를 안치하고, 그 뒤 중앙에는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 모형물을.. 2018. 1. 20.
김태식의 考古野談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 김태식의 考古野談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황룡사 목탑 사리장엄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2017년 05월 호 “황룡사도 우리가 도굴했다.” 1966년 석가탑 도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범행 대상이 국내 어느 문화재보다 상징성이 큰 데다, 그 수법이 대담했으며, 더구나 도굴단 뒤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친형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미친 여파가 자못 컸다. 한데 경찰이 막상 도굴단을 붙잡아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마수가 문화재 현장 곳곳에 뻗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관련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들은 1964년 이후 경주와 주변 지역 석탑과 사찰, 그리고 고분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범행 대상에 뜻밖에도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 사리장엄이 들어 .. 2018.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