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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의 진실 아래는 2002년 오마이뉴스 기고문이다. 이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을 정식으로 다룬 학술논문도 나중에 나왔더라만...... 알퐁스 도데 의 진실도데의 추악한 내셔널리즘과 그 한국적 변용 02.04.26 09:17l최종 업데이트 03.08.27 10:07l 1945년 8월15일 서울의 어느 보통학교 국어 교실를 무대로 삼은 한 일본인의 단편소설 끝장면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을 방금 전해 들은 일본인 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조선인 학생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일본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임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은 잘 지키고 있으면 스스로의 손에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때 창 밖에서 호각..
《소녀경(素女經)》에도 ‘문리(文理)’는 있다 아래는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칼럼 쉰세번째 이야기(2012.8.29) 기고 전문이다. 《소녀경(素女經)》에도 ‘문리(文理)’는 있다 기자라는 지금의 직업이 그렇고, 더구나 그런 직업에서 지금 맡은 일이 그래서인지 일선 학교가 방학하는 즈음이면 대체로 이들 학생을 겨냥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고자 하는 의뢰가 언론사로 잇따른다. 개중에는 한문 관련 강좌도 적지 않다. 한때는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처럼 지목되고, 그리하여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해서 퇴출 위기에 처한 한문이 이런 대접을 받는 일을 나는 분명 고무(鼓舞)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은 속내를 속속 들여다보면 아쉬운 구석 또한 적지 않다. 체통 문제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례는 적시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다른 무엇보다 ..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시론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소식지 올해 6월호에 실렸다. 이 원고는 최근 문화재청 주최 공청회 발표문을 다듬었음을 밝혀둔다. 이른바 우라까이다. 732유네스코뉴스 2017년 6월호(732호) 발간ISSUU.COM
김태식의 考古野談 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 김태식의 考古野談한겨울 한밤중에 맨손으로 건진 백제금동대향로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문화재 전문언론인2017년 06월 호사비 도읍기 백제 왕가의 공동묘지로 지목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쪽 지점에 ‘능산리 고분군 전시관’이 있다. 모양이 조금은 독특해 전체로 보면 둔덕을 파고 들어간 땅굴 형식이다. 아마도 사비 시대 백제 무덤 전형이 주로 산기슭을 파고 들어가 그 안에다 돌을 쌓아 묘실(墓室)을 마련한 데서 착상한 디자인일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엔 능산리 고분군 중 유일한 벽화 고분인 소위 동하총(東下塚)에서 발견된 벽화 소재 중 연꽃과 구름무늬를 잔뜩 그려놓았다. 그 내부에는 부여 일대 지형도와 능산리 일대 지형도를 안치하고, 그 뒤 중앙에는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 모형물을..
김태식의 考古野談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 김태식의 考古野談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황룡사 목탑 사리장엄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2017년 05월 호 “황룡사도 우리가 도굴했다.” 1966년 석가탑 도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범행 대상이 국내 어느 문화재보다 상징성이 큰 데다, 그 수법이 대담했으며, 더구나 도굴단 뒤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친형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미친 여파가 자못 컸다. 한데 경찰이 막상 도굴단을 붙잡아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마수가 문화재 현장 곳곳에 뻗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관련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들은 1964년 이후 경주와 주변 지역 석탑과 사찰, 그리고 고분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범행 대상에 뜻밖에도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 사리장엄이 들어 ..
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의 考古野談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4월 호 이번 호부터 문화재 발굴 막전막후 비화를 소개하는 ‘김태식의 고고야담(考古野談)’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은 언론사에서 17년 이상 문화재 분야를 담당한 베테랑 언론인 출신입니다. 한국 문화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탄생했으며, 어떤 가치를 부여받아 오늘에 이르렀는지, 도굴과 발굴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갈라지는지, 익숙한 문화재에 얽힌 사건과 인물 비화 등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 보여줄 것입니다. “불국사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일명 무영탑)이 지난 8월 29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기고 ..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발견 50주년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김태식 |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3월 호 2001년 4월 28일 오후 KBS 역사스페셜 ‘최초 발굴, 신라 대왕암’ 편을 시청하다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대왕암을 발굴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방송사가 말이다. 물론 발굴 자격이 없는 방송사가, 그것도 신라 문무왕 수중릉이라 해서 1967년 5월 15일에 소위 ‘발견’되고 같은 해 7월 24일 국가사적 제158호로 이름을 올린 대왕암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방송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분명 발굴 시행처는 KBS였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사가 나서서 직접 발굴하는 일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금시초문이었..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중앙선데이] 입력 2017.02.12 00:00 수정 2017.02.12 04:35 | 518호 26면 입춘이던 지난 4일, 충남 서산 비봉산 기슭부석사(浮石寺)는 유난히 부산했다. 입춘 삼재풀이 행사가 겹쳐 액운을 쫓으려 태운 종이 부적 재가 눈처럼 흩날린다. 서해와 산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공교롭게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한 경북 영주 부석사와 이름이 같기 때문인지 창건주를 의상으로 삼는다. 또한 경내 곳곳에는 의상과 선묘라는 여인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선전하는 안내판이 있다. 고색 완연한 건축물로는 지금 종무소로 쓰는 건물과 그 전면 안양루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워낙 전망이 좋다 2013년 절도로 돌아온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