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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추적, 한국사 그 순간 -5-] 수수께끼 신라 재상, 김양도 당에 사신 갔던 전쟁 영웅의 옥사, 나당 전쟁 부르다[중앙선데이] 입력 2016.10.23 00:42 | 502호 23면 『삼국유사』 중 ‘흥법(興法)’이라는 이름이 달린 챕터가 있다. 불교를 일으킨 일화를 묶어놓은 것으로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觸滅身)’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 있다. 원종이라는 사람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몸을 희생했다는 의미다. 원종은 신라사에서 불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법흥왕이요, 염촉은 바로 이를 위해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을 말한다. 불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맞서고자 법흥왕과 이차돈이 벌인 게임, 다시 말해 이차돈이 스스로 목숨을 청해 잘려나간 그의 목에서 흰 피가 솟는 이적(異蹟)이 일어남으로써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가 골자를..
[추적, 한국사 그 순간 -4-] 선덕여왕과 3색 모란꽃 ‘씨내리’ 남자 셋 들이고도 임신 못한 선덕여왕[중앙선데이] 입력 2016.09.18 00:46 | 497호 23면 “신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씨(女媧氏)가 있었으나, 그는 진짜 천자가 아니라 (남편인) 복희(伏羲)가 구주(九州)를 다스리는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여치(呂治)와 무조(武?) 같은 이는 어리고 약한 임금을 만났기에 조정에 임해 천자의 명령을 빌린 데 지나지 않아, 사서에서는 공공연히 임금이라 일컫지는 못하고 다만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라든가 즉천황후(則天皇后) 무씨(武氏)라고만 적었습니다. 하늘로 말한다면 양(陽)은 강하고 음(陰)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한다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 법이니, 어찌 늙은 할망구(??)가 규방을 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
[추적, 한국사 그 순간 -3-] 대야성 전투서 딸 잃은 김춘추 백제 멸망, 김춘추 사위의 치정이 부른 복수극[중앙선데이] 입력 2016.08.21 00:46 | 493호 23면 백제는 660년 음력 가을 7월 18일, 사비성(泗?城)에서 북쪽 웅진성(熊津城)으로 도망친 의자왕이 나당(羅唐)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700년 사직에 종언을 고했다. 이때 일은 『삼국사기』 신라 태종무열왕본기 7년(660)조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에 의하면 의자왕은 이달 13일 포위망을 뚫고서 가까운 신하들만 데리고 야음을 타 웅진성으로 들어갔다. 현지에 남은 의자왕의 아들 융(隆)은 대좌평 천복(千福) 등과 함께 나와 항복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난 18일, 의자왕마저 태자를 데리고 웅진성을 나와 항복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같은 달) 29일 금돌성(今突城)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에 ..
[추적, 한국사 그 순간 -2-] 김유신의 김춘추 겁박 춘추가 임신한 문희와 혼인 미적거리자 “태워죽여라”[중앙선데이] 입력 2016.07.24 00:44 | 489호 23면 김유신은 월경(月經)이라는 난관을 눈부신 ‘대타 작전’으로 돌파했다. 애초엔 큰 누이동생 보희(寶姬)를 김춘추와 짝지어줄 요량이었지만 ‘거사(巨事)’를 준비한 그날 보희가 월경 중임을 알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누이 문희(文姬)를 찢긴 옷고름을 걸치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김춘추가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에 들어설 때 문희 모습을 『삼국사기』는 “담백한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과 빛나는 요염함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淡粧輕服光艶炤人)”고 묘사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22세 청년 김춘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에 김춘추가 “혼인하자고 해서 혼례식을 치르고 이내 임신해 아들을..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중앙선데이] 입력 2016.06.26 00:40 | 485호 23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혈통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는 불완전한 민족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라고 했다. 음험취한은 요컨대 음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단재는 그 보기로 그가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된 사연인 소위 ‘축국(蹴鞠) 사건’을 들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이런 평가는 그 이전까지 천 수백 년가량 지속된 만고의 ..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8편 잘라버린 남편 ‘귀두’를 음부에 제사지낸 아내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11일 13시55분이다. 1. 서악동의 신라 시대 귀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무덤을 비롯한 중고시대 신라 왕릉 밀집지역인 서악고분군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전면에 봉분 두 기가 붙었으니, 하나는 김춘추 9세손으로 신라 하대 인물인 김양(金陽)이 857년 향년 50세로 졸하고는 묻힌 곳이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金仁問) 묘라고 전한다. 이 두 봉문 앞에는 몸돌과 머릿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것을 받쳤을 거북 모양 받침돌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이를 서악동 귀부(龜趺)라 한다. 보물 제70호인 이 귀부에 대한 현지 안내판은 김인문 묘비를 받치던 것이라 기술한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역사학도 중에는 김양 묘와 함께 선..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7편 귀두 내밀고 지상에 강림한 김수로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06일 12시30분이다. 1. 동아시아의 카니발 계욕일 애초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지금껏 이 독사일기는 고려 시대 도굴 이야기로 채웠다.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더러 남았지만, 다른 곳에도 눈길을 돌려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한국 고대문화에 나타나는 섹스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서는 ‘가락국기(駕洛國記)’라는 제하 기사를 통해 김수로에 의한 가야 건국 사정을 정리했으니, 이에 의하면 이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시대에 해당하는 대강(大康)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를 지낸 사람의 문인이 쓴 원본을 간추린 이야기라 한다. 이때 ‘가락국기’란 그 문인이 쓴 책 이름이면서, 그것을 빌린 ..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6편 조선총독부가 빗장을 연 쌍릉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 조사, 목관 발견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3월29일 11시00분이다. 앞서 우리는 충숙왕(忠肅王) 재위 16년(1329) 여름 3월에 발생한 금마군(金馬郡) 호강왕(虎康王) 무덤 도굴이 대규모로 이뤄졌고, 더구나 그에 권력층의 비호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이 호강왕릉이 실은 백제 무왕의 부부능으로 통하는 지금의 익산 쌍릉임도 보았다. 그렇다면 당시 이들이 도굴한 쌍릉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무덤일까? 이를 위해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에 의한 쌍릉 조사 성과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기록에 의하는 한 충숙왕 때 문을 연 쌍릉이 두 번째로 문을 연 시점이 이때이기 때문이다. 물론 쌍릉은 충숙왕 이전에도 도굴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또 그 이후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