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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전남 장성 관련 기록

기정진(奇正鎭, 1798~1879), 입재기(立齋記) 입재기 立齋記 바야흐로 입재공(立齋公)의 두건, 신발이며 궤안(几案)이 남은 이 서재는 의심스럽고 판단이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찾아 왔으나, 평소에 의롭지 못한 자는 주저하며 들어오기를 꺼렸다. 서재가 서재다웠던 것은 공의 자태와 어묵(語默)에 달려 있었으므로 편액을 만든 일이 없었는데 더군다나 기문이겠는가. 공이 세상을 떠나고 30년이 지나 사자(嗣子)인 봉진(鳳鎭)은 그 서재를 비워두고 두어 마장[數帿] 되는 곳에 옮겨 살았다. 봉진의 아들로 양자로 나간 양연(亮衍)이 선조의 자취가 장차 없어질까 두려워 모든 것을 견고하게 만들고자 꾀하고자 해서 기와를 구워 초가지붕을 대체하여 오래가게 하고자 하였다. 약속을 정하고서 먼저 고(故) 옥류거사(玉流居士) 이삼만(李三..
계곡 장유(張維)가 기생 추향(秋香)에게 바치노라 시권(詩卷) 첫 번째 시의 운자(韻字)에 따라 지어서 오산의 금기 추향에게 주다[次卷首韻 贈鰲山琴妓 秋香]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깊은 가을 바람과 이슬 차가운 오경인데 홍계는 은은한 향기 아직까지 남아있네 별안간 청준 받고 살포시 보조개 짓더니 몇번 눈물 훔치고서 오사란 펼쳐 놓았소 깊은 정 언제나 가야금 봉현에 의탁하니 누가 짝 이루어 난새 타고 안개속을 날까 타향 떠돌다 우연히 이룬 분포 자리 백발 사마는 취해서 서로 얼굴 바라보네 九秋風露五更寒, 紅桂幽芳尙未殘。乍對青樽開寶靨, 幾收珠淚展烏闌。深情每託琴中鳳, 仙侶誰乘霧裡鸞? 流落偶成湓浦會, 白頭司馬醉相看。 《계곡집(谿谷集)》 권31에 수록됐다. [주석] 홍계(紅桂) : 망초(莽草)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추향(秋香)의 자(..
차천로(車天輅)가 가야금 타는 추향에게 준 시 가야금 타는 기생 추향에게 주다[贈琴娘秋香]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열두 봉우리 무산이 꿈속에도 쌀쌀해아롱진 창문엔 등불 하나만 깜빡이네 옛 곡조 튕기며 〈금루의〉 노래하더니시름겨워 찌푸린 채 난간에 기대었지비녀 위 나란히 나는 제비 부럽기만거울속 홀로 춤추는 난새 더욱 가련타연지파에 남긴 옛 자취 찾아 왔건만발자국 덮은 무성한 이끼 차마 못보겠소 十二巫山夢裏寒, 半窓明滅一燈殘. 手調舊曲歌金縷, 眉蹙春愁倚玉闌. 却羡雙飛釵上鷰, 更憐孤舞鏡中鸞. 臙脂坡下尋遺迹, 屐齒苔痕不忍看. (《오산집(五山集)》 속집 권2) [해설]차천로(車天輅)가 전라도 장성땅 기생 추향에게 준 것으로 그녀의 시권 첫머리에 있던 “강월생명계영한(江月生明桂影寒)……”의 원운으로 추정된다. 1행의 열두 봉우리 무산[十二巫山]은..
편지에 쓰신 그립다는 말, 보고 또 봐요 강물에 밝은 달 떠오르니 계영은 추운데옥승은 서쪽에 지고 옥루는 새벽알려요 봉래산 여기에서 삼천리도 못 되건만 만나자 하시곤 여태 굽이굽이 헤매나요비녀 눌러 쪽진 머리엔 봉잠이 기울어난경에 비춰 매만지고 분단장합니다사랑 편지 열폭에다 쓴 그립다는 말 정랑이 남기셨으니 자세히 본답니다 江月生明桂影寒, 玉繩西落漏初殘。蓬山未隔三千里, 芳約猶尋十二闌。釵壓翠鬟斜嚲鳳, 鏡安紅匣欲窺鸞。春牋十幅相思字, 留與情郞仔細看。 계영(桂影) : 달에 계수나무가 있다 해서 달 그림자 또는 달빛을 이르는 말이다. 예서는 그 뜻과 아울러 작가 추향(秋香)이 자(字)가 계영(桂英)이므로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한탄한 중의적 표현이다. 옥승(玉繩) : 원래는 북두 제5성(五星) 북쪽에 위치한 천을(天乙)과 태을(太乙) 두 작은 별을 말하지..
김조(金照 1774~1853), 〈수연사에 들어가며 [入隨緣寺]> 수연사에 들어가며 [入隨緣寺] [朝鮮] 김조(金照 1774~1853) 인적도 없는 산에 앉으니 홀연 나도 없는 듯 정신이 피곤해 책도 내던지고 은거를 꿈꾼다 해질녘 돌아가매 매미 울지 않아 적막하고 하늘 높이 떠가는 기러기는 홀로 날아간다 인적 없는 창에 해 비치니 불로장생 비결이요 무너진 담에 꽃 피었으니 틀림없는 수묵화네 지금 돌아갈 동계마을 동쪽 몇 리면 되는데 그대 좋은 시상 떠올랐다고 오라고 손짓하네 空山坐我忽如無, 神倦抛書夢五湖. 落日歸來蟬寂寞, 長天浮去鴈高孤. 虛窓日暎金丹訣, 破壁花生水墨圖. 此去東溪東數里, 君詩有得手相呼. 수연사(隨緣寺)는 전라남도 장성군 영축산(靈鷲山)에 있던 유서 깊은 사찰이며 수연사가 있으므로 그 산을 수연산(隨緣山)으로 일컫기도 한다. 水蓮寺(수련사), 秀蓮寺(수련사..
서거정이 말하는 내장산 백양사 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를 고찰할 때도 여러 문제의식을 고취하거니와, 불교가 일방적인 탄압대상이었다는 데 대한 반론 역시 요즘 만만치 않거니와, 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니 당하지는 아니했다. 강고한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효용이 있었으며, 특히나 가정 주도권을 장악한 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었..
기대승, 작년 불대산 시절이 문득 생각나서 〈작년 불대산에 있을 때 절구 한편을 완성한 적이 있었으나 진즉 잊었는데 느닷없이 기억이 나기에 빙그레 웃으며 적는다[去歲在佛臺山 嘗得一絶 既已忘之 率然記憶 一笑以識]〉 기대승(奇大升, 1527~1572) 홀로 산봉우리에서 넓은 하늘 바라보니, 孤倚巉峯望海天,미인은 대부분 저녁 구름 곁에 있었구나. 美人庶在暮雲邊。편지 보내 평안한단 소식 알려 주셨거늘, 書來為報平安信,깨알 같은 몇 줄 글에 구슬픔 적혔어라. 細字踈行記可憐。 출전 : 《고봉집(高峯集)》 권1 해제 : 이 시는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하였는데, 자세히 음미하면 퇴계와 서신으로 사칠논쟁을 벌이면서 느끼는 고봉의 감정을 담은 시다. 1, 2행은 진원현 불대산 가파른 산봉우리에 올라 해 저무는 하늘의 붉고 곱게 물든 구름을 보며 저물녘 경치가 더욱 ..
하서 감나무[河西枾] 지금의 전북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영조~정조 연간에 할동한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그의 방대한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한 글 중 이런 것이 있다. 하서 감나무에 대한 설[河西枾說] 송찬욱(宋贊旭) 군 말에 따르면 "하서(河西) 선생께서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계실 때, 두 밭 경계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송사(訟事)를 벌인 자들이 있었다. 선생께서 갑(甲)쪽 가지에 열린 감은 갑이 주인이고, 을(乙)쪽 가지에 열린 감은 을이 주인이라고 명령[판결]하니, 두 사람이 그 명령대로 하되, 중간에 열린 감은 내버려두니 주인이 없었다. 선생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니 두 사람이 이 일을 떠올리고는 각기 가지 하나라도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고는 이 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