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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15년전 나주서 조우한 영산강 고려시대 고선박 Ancient Korean Wooden Boat Open to the Public 榮山江辺から15年前発見された高麗時代の船「羅州船」一般公開 15년전 영산강에서 찾은 고려선박 '나주선' 첫 공개송고시간 | 2019-10-31 16:00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나무 부재 3점 보존처리 후 전시 어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을 통해 보도자료 한 편을 송부했는데, 이 기사가 정리한 내용이다. 이야기인즉 나주 영산강변에서 15년 전에 이곳 주민이 발견한 옛날 선박, 그래서 발견지점을 따라 '나주선'이라 명명한 그 옛 선박 부재 3점이 보존처리를 마치고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를 한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주선 부재 3점이란 배 왼쪽 선미船尾와 오른쪽 선수船首 부분 만곡부종통재彎曲..
어떤 회사인 줄도 모르고 입사한 연합통신 이 회사와 거의 반평생을 함께했다. 연합통신이 연합뉴스로 이름을 바꾼 게 99년 무렵 아닌가 한다. (찾아보니 개명은 1998년 12월 19일이다) 난 연합통신이 무슨 회사인지, 나아가 언론사 중에서도 통신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온 놈이다. 언론사 셤 준비하던 주변 사람들이 우수수 원서 낸다고 하기에 나도 냈을 뿐이다. ( 대학 졸업할 직전까지도 내가 기자가 되리라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까닭에 언론 시스템에는 더욱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셤 전날 저녁에는 못마시는 술 마시고 떡이 되었다가 셤 당일 셤장에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같이 셤 본 친구는 중간에 술이 올라와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하고 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는 국어 영어 상식 세 과목 셤을 봤다. 국어는 작문이 있어 꽤나 ..
《풍납토성 그 이후》 풍납토성 글 쓴다고 13년 전에 낸 내 책을 참고 중이다. 지금 쓰면 저리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그만큼 내가 격정적이었고 나 아니면 풍납토성 없어진다는 착각에 살았다. 특히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대목이 많음을 고백한다. 저걸 내고는 적절한 시점에 《풍납토성 그 이후》(가제)라는 제목으로 이 책 이후에 전개된 풍납토성 사태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 책이 나름 의미가 있다면 풍납토성 사태 한복판에서 그것을 직접 대면한 자의 증언이기에 비록 그 증언이 나 중심의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숙명은 있을지언정 당시의 사태를 나름대로는 절절히 기록하고자 했으며, 그에 더불어 풍납토성 일지를 나름으로는 일목으로 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한 데 있을 것이다. 특히 20세기 이래 풍납토성 역사는 그간 단편을 면치 못했는데 ..
지진으로 초상 칠 뻔한 국립경주박물관 *** October 11, 2016 at 10:32 PM라는 작성 시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참고로 이 글을 쓴 시점에 나는 해직상태였다. 이에서 다룬 경주박물관 지진대비는 얼마 뒤 모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번 지진에 첨성대가 화제에 올랐지만 그 카메라 자칫하면 경주박물관 차지가 될 뻔했습니다." 오늘 박물관서 만난 김유식 학예실장 말이다. 하긴 이번 강진에 나는 박물관 진열실은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자칫하면 초상집 될 뻔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 당시 경주 강진 크기를 보여주는 실증자료로, 첨성대에 설치한 CCTV가 있었다. 강진 발생 순간을 담은 이 CCTV를 보면 카메라, 혹은 첨성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김 실장 언급은 이를 염두에 둔 말이다.) 상설 특별전시실 본 적 있는가?..
불과 같았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 September 19, 2017 작성한 글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뇐네 설득한다 좀 애를 먹었다. 문화재청에 섭섭함이 많은 듯 격정을 토로한다. 1937년생이니 올해 여든하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1964년 4월 행정주사보로 문화재관리국에 발을 디뎠다. 1999년 6월 국립도서관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력이 독특해 행정직으로 입사했다 학예직으로 전직하고 다시 이내 행정직으로 돌아왔다. 정재훈 국장과 더불어 한국문화재 행정의 초석을 다진 일등공신이다. 한사코 옛날 이야기 들어 뭐하냐 거부한 그였지만 강남역 주류성에서 만나자마자 필설을 토한다. 1966년 구자춘 제주도지사에 맞서 온 산이 표고버섯 농장을 변하기 직전 한라산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켜낸 일, 춘천 중도로 떠나려던 문화재연..
국보 4점, 보물 22점을 국가에 기증한 성문종합영어 송성문 내 세대 대학 입시는 수학의 정석 시리즈, 영어의 성문영어 시리즈, 국어의 한샘 시리즈가 대표한다. 이 중에서 유독 정석 시리즈만이 아직도 제국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거니와, 영어만 해도, 벌써 내가 세대애는 맨투맨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 성문 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정석 시리즈는 내 세대 또 하나 기념물을 새겼으니, 내가 고교 재직시절인가 그 무렵, 그 저자 홍성대씨가 전주인가에 세웠다는 상산고등학교라는 학교가 신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기 시작하던 초창기라, 이 고등학교를 두고, 소백산맥 너머 김천이라는 데까지, 이곳 재학생들은 전액 장학금을 받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더랬다. 저들 입시계의 절대군주 3인방 중 성문종합영어 주인공을 내가 다름 아닌 문화재 업계에서 조우하게 될 줄은 ..
언론 노출을 극도로 삼간 윤장섭 호림박물관 설립자 문화계, 특히 문화재계에서 거물로 치부할 만하지만, 극도로 대외 노출을 삼간 인물로 내가 두 사람을 꼽는데, 한 분이 그 유명한 영어학습교재 성문종합영어 저자 송성문 선생이며, 다른 한 분이 오늘 말하고자 하는 윤장섭 선생이다. 그 유명한 짠돌이 개성상인 출신인 윤장섭 선생이 왜 그렇게 대외 노출을 꺼렸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금융 혹은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아는 그는 아마 그런 직업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 막연히 짐작하기는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이룩한 성보문화재단은 문화재 보물창고다. 흔히 그 재단 호림박물관은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그리고 간송 전형필이 건립한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거니와, 윤장섭과 전형필은 같은 개성을 출신 기반으로 ..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 2006년 연합뉴스 주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도록이다. 이거 말고 축쇄판이 별도로 있다. 당시 북한지역 벽화고분 세계유산 등재 직후, 교도통신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나는 이 전시 반대했다. 첫째 사진이요 둘째 유사 전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함에도 전시는 그대로 나아갔고 나는 이에 포함되어 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담했다. 전호태 김일권 선생을 영입하고 당시 기억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천만원을 더 끌어와서 학술대회도 했다. 전시장으로 서울역사박물관을 급섭외했으니 당시 김우림 관장과 김영관 과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내가 도록 비싸다는 말 자주하는데 이거 실은 고백이다. 이 도록 12만원을 붙였다. 더 싸게 하자 했지만 이런저런 통계수치 내미는데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