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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85

기자 우병익, 70년대 경주 발굴의 전설 전설의 경주 주재 우병익 기자가 생존한 줄 몰랐다. 한국일보 근무하다 1980년 해직되어 연합통신에 입사했으니 나한테는 대선배다. 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이 근황을 알려주어 급히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연합에서 짤린 김모라고 소개했더니 대뜸 "왜 연락이 안오나 기다렸다"고 했다. 그를 통해 70년대 종군기자를 방불한 경주 문화재 발굴현장 취재담을 생생히 들었다. 이제 시사인 연재도 세 번 남았다. 천마총에서 진을 빼는 바람에 황남대총은 이번건과 다음호에 하나, 그리고 안압지와 황룡사지 발굴 하나로 대단원을 고하고자 한다. 천마총도 할 얘기 천지요 나머지 역시 그러하며 기타 다룰 것도 천지뻬까린데 우선 이걸로 일막을 닫고자 한다. 인사는 미리 하는 법이 아니지만, 혹여라도 이 연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해.. 2020. 11. 24.
초장草葬과 초분草墳,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 2004.03.29 17:25:18 국립민속박물관 '초분'(草墳) 조사보고서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후기 때 학자 정약전(정약용의 형)은 최근 발굴된 당시 소나무 정책에 대한 통렬한 논문 「송정사의」(松政私議)에서 남벌에 따른 산림파괴가 불러온 사회현상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400~500냥에 달하는 관재(棺材)는 도회지 양반 권세가만이 쓸 수 있지, 궁벽한 시골 평민은 태반이 초장(草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를 통해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고 야외 풀섶에다가 시신이 썩을 때까지 내어 두는 소위 초장(草葬)이 왜 유행했는지, 그 원인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런 매장 풍습을 '초분'(草墳)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는 '분'(墳)이란 흙.. 2020. 11. 23.
비단벌레를 찾아서 신라가 토해낸 유물 중에 독특함을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비단벌레 장식품이다. 오색영롱한 날개 죽지를 마구와 같은 데다가 장식으로 쓴 것들이 더러 출토한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옥충玉蟲이라 표기하면서 ‘타마무시タマムシ’라 읽는다. 일본에서는 법륭사 소장품이던 옥충주자玉蟲廚子가 너무나 저명하다. 그렇다면 왜 비단벌레인가? 이를 아무도 묻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물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지를.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깐 비단벌레를 장식한 유물만 알았지, 왜 하필 비단벌레인 줄을 물을 생각조차 없었다. 묻지를 않으니 답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모든 의문은 why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은 비단벌레라고 하면 하나의 상식이 통용한다. 비단벌레에 다름 아닌 미약媚藥 성분이 .. 2020. 11. 20.
[五九自述] 내가 말하는 내 금석문 연구성과 1. 북한산 순수비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진흥왕 순수비를 나는 봉선비封禪碑로 되돌림으로써 추사 김정희를 기준으로 200년간 지속한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이해 전반을 흔들었다. 2.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 제6호분에서 출토한 명문전銘文塼을 기존 압도적인 판독인 ‘梁官瓦爲師矣’에서 ‘瓦’를 삭제함으로써 이 6호분 외에도 무령왕릉 전축분塼築墳의 태동 비밀을 풀었다. 3. 武寧零王陵 출토 묘권墓券 두 군데서 보이는 ‘大墓’는 지금의 무령왕릉이라는 특별한 무덤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리 고분군이라는 웅진도읍기 백제시대 그들 王家의 집단묘역이며, 더구나 같은 문맥에서 한 차례 보이는 ‘등관대묘登冠大墓’의 ‘등관登冠’은 지금의 송산리 고분군을 지칭하는 웅진도읍기 백제시대 지명임을 구명했다. 4. 廣開土王碑.. 2020. 11. 20.
김수근 <공간> 가옥, 하필 문화재리꼬? 김수근 작품을 내가 많이 본 것은 아니나, 유독 저 공간만큼은 내가 볼 적마다 그런대로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보존했으면 했다. 아마도 이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 방법이 문화재리꼬? 그에 대해서는 일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이 문제가 대두하기는 저 건물이 매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매물로 나오니깐 위험하다. 원형 훼손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재건축 가능성도 있다 이런 논리가 아니었는가 싶은데, 그래서 그것이 기댈 바가 문화재여야 한다는 데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묻는다. 하필 문화재리꼬? 이런 물음에는 그것의 부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이면에는 문화재를 방탄막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2020. 11. 19.
어떤 언론사인지도 모르고 입사한 연합통신 이 회사와 거의 반평생을 함께했다. 연합통신이 연합뉴스로 이름을 바꾼 게 99년 무렵 아닌가 한다. 난 연합통신이 무슨 회사인지, 나아가 언론사 중에서도 통신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온 놈이다. 언론사 셤 준비하던 주변 사람들이 우수수 원서 낸다고 하기에 나도 냈을 뿐이다. 셤 전날 저녁에는 못마시는 술 마시고 떡이 되었다가 셤 당일 셤장에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같이 셤 본 친구는 중간에 술이 올라와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하고 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는 국어 영어 상식 세 과목 셤을 봤다. 국어는 작문이 있어 꽤나 점수 비중이 컸다고 기억한다. 제목은 '첫눈'이었는데 실로 이상하게도 내가 생각해도 술술 써내려갔다. 미려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필기셤은 너끈히 붙으리라고 봤는데 붙었더라... 2020. 11. 13.
이보다 좋은 직업없다, 기사만 쓰지 않으면 기사만 쓰지 않으면 기자만큼 좋은 직업 없다. 기사를 쓰건 말건 아직은 현장에 있는것만으로 흥분한다. (2017. 10. 23) *** 사진이 포착한 무대는 나주 정촌고분 발굴현장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현장을 대언론 공개했다. 2020. 11. 1.
국립나주연구소가 발표한 정촌고분 발굴성과(2013) 나주 정촌고분을 발굴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2013년 11월 27일, 문화재청을 통해 아래와 같은 조사성과를 배포했다. Press release on Excavation of Jeongchon Tomb in Naju (2013) by Na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羅州丁村古墳發掘成果(2013) by 國立羅州文化財硏究所 삼국시대 영산강 유역 최대급 방대형 고분 확인 - 11.28. 오후 1시 / 나주 정촌고분 발굴조사 현장 -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주헌)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 있는 정촌고분(丁村古墳,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에 대한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오는 28일 오후 1시 발굴현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발.. 2020. 10. 26.
나주 정촌고분의 돌베개 봉분 하나에 매장주체시설 여러 곳을 마련하는 이른바 '벌집형 고분'인 나주 정촌고분에서는 9기에 달하는 매장시설이 발견된다. 그중 이번에 석실 3곳을 국립나주연구소가 팠다. 사진은 3호 석실 내부다. 현장을 둘러보니 3호 석실은 周溝가 위치하는 곳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다른 매장주체시설에 견주어 후대에 조성됐다는 뜻이다. 입구가 남쪽이라고 기억하거니와, 그러니 장축은 남북이 아닌가 한다. 베개..돌로 만든 베개가 한쪽으로 치우쳤는데, 원래부터 저랬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도 후대에 한쪽으로 밀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2014. 10. 24) *** 이 대목이 이후에 나온 공식 발굴보고서에선 어찌 처리되었는지 내가 확인을 못했다. 2020. 10. 24.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용 타고 떠난 저승여행] (1) 발굴착수 페이스북 내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뒤지니 6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4년 10월 23일 나는 나주에 있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나주 정촌고분이라 하는 삼국시대 고분 발굴성과를 공개하는 날이었기에 그 취재를 위해 현장을 출동한 것이다.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이렇게 현장을 행차한다는 것은 발굴성과가 녹록치 않은 까닭이다. 그에서 이제는 꽤 유명해진 용코 머리 금동신발 한 켤레가 출토했다. 그 얘기는 잠시 뒤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이 정촌고분이 어떤 곳이며, 어째하여, 무슨 목적으로 발굴조사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피고자 하니, 아래 기사는 그 편린을 엿보게 한다. 2013.11.27 09:17:01 한변 40m 삼국시대 영산강유역 최대급 고분 확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나주 정촌고분 조사…벌집형 .. 2020. 10. 23.
2002년 한일월드컵 비표 기증건 2002년 한일월드컵 비표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각중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 우리 회사가 을지로입구에서 셋방살이 청산하고 재건축한 수송동 본가로 돌아가기 위한 이삿짐 싸기가 한창이라. 나 또한 이를 준비하면서 드러나는 몇 가지 자료를 보다가 이 비표를 페북에 올렸더니,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이 보시고는 잽싸게 찜을 하는 바람에 어리둥절, 그러마 하고 답변을 드렸다. 가질러 온단다... 아래는 기증에 즈음해 내가 작성해 민속박물관에 제출한 문건이다. ***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취재진 비표 기증자 : 김태식(金台植). 19XX.10.6 현주소 : (본적)경북 김천시 대덕면 XXXXX (집)서울 용산구 남영동 XXXX (직장)서울 중구 수하동 67번지 센터원빌딩 서관 5층 연합뉴스 문화부.. 2020. 10. 18.
엿장수가 신고한 대곡리 청동국보 유물 광주박물관 27일부터 특별전2007.11.26 15:29:0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71년 12월20일,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유전 학예연구사(65.현 토지박물관장)는 전라남도 문화공보실로 내려가라는 출장 지시를 받는다. 이 출장은 당시 국립박물관 윤무병 고고과장이 문화재연구소에 요청한 것이다. 청동기 유물이 무더기로 신고돼 전남도청 문화공보실에서 보관 중이니 그것을 직접 조사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현지에 내려간 조 학예사는 유물들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청동칼인 동검이 3점에다가 8개 방울을 단 청동 팔주령이 2점, 아령 모양 방울 두 개를 마주 단 청동 쌍두령이 2점이나 됐다. 뿐만 아니었다. 청동 새기개(새김질을 하는 데 쓰는 연장)와 청동도끼 각 1점과 함께 잔무늬거울(다뉴세.. 2020. 9. 30.
김천에서 찾은 목개목관묘木蓋木棺墓(2005) 아래는 내 고향 김천에서 저와 같은 형태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이 발견됐다는 2005년 보도다. 당연히 발굴보고서가 나왔을 테지만, 내가 그걸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니, 당시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적기摘記만 해 둔다. 아래 중요한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김구군 선생은 이후 저 기관을 나와 삼한문화재연구원인가를 차렸으며, 이한상 교수는 동양대에서 적을 파서 대전대로 이동해 현재 그곳에서 재직 중이다. 목개목관묘木蓋木棺墓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 나무로 짠 널에다가 나무 덮개를 씌웠다는 뜻이거니와, 보나마나 일본에서 수입했을 그 용어가 주는 생경함에서 유별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암것도 아니다. 나무널에 나무덮개를 쓰는 일은 당연하다. 다만, 저를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 포착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억해도 좋다... 2020. 9. 29.
엿이랑 바꿔먹은 전봇대 발걸이 내 기억에 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기는 국민학교 입학하고 나서다. 당시 전봇대는 재료로 볼 때 두 가지였으니 하나는 이런 시멘트 종류고 하나는 시커먼 기름 잔뜩 먹인 낙엽송 종류같은 나무 전봇대였다. 당시엔 엿장수가 동네에 심심찮게 드나들었는데 이 전봇대 발걸이를 빼다가 엿으로 바꿘 먹곤했다. 내 경험으로 가장 많은 엿을 얻은게 동종 하나를 들녘에서 주워서는 엿장수에게 건네받을 때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동종은 어느 절터에서 밭갈이하다 나온 것이니 지금 보면 매장문화재다. 아까비. 엿이 내 일생을 바꿔놓았다. (2015. .9. 28) 2020. 9. 28.
쪽팔린 기자의 나날들 해고와 복직.. 이놈이 나에게 준 선물 중 하나가 휴가다. 8.1 복직 전까진 나는 단 하루도 쉼 없이 일한 것으로 기록됐으니 나에게 허여된 14일 연차 강제휴가가 고스란하다. 고작 나흘 썼고 오늘낼 이털 냈으니 여전히 5일치밖에 쓰지 않았다. 오늘은 경영진 추방과 그 경영진 선임과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진 축출을 위한 노조의 투쟁이 있는 날이다. 이 새벽 아스널이 이겼다. 연승으로 가야겠다.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말이다. 기자로서 쪽팔린 나날들이었다. 이 쪽팔림 더는 없어야 한다. 내가 정의감이 유별난 기자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기자로 쪽팔림은 없어야 한다. 자랑스럽진 않다 해도 나는 내가 종사한 분야에선 그래도 행세께나 했으니, 첫째 열정이었고 둘째 전문성이었다. 이를 위해 .. 2020. 9. 26.
동대문운동장 쓰레기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동대문운동장 재떨이까지 뜯어왔습니다" 입력 2008.06.09. 06:51 수정 2008.06.09. 10:07 댓글 0개 news.v.daum.net/v/20080609065111950 "동대문운동장 재떨이까지 뜯어왔습니다" 서울체육시설관리소 '문화재' 모두 수거(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82년 역사의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졌다. 그 터에 디자인플라자를 세우고 서울성곽을 보관하기 위해 야구장과 축구장이 이�� news.v.daum.net 이 문화재업계도 내가 여러번 한 말이지만, 이걸로 한국사를 쓰고 세계사를 쓴다고 했거니와, 그만큼 이 짓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 법이라,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세사世事와 떨어질 수가 없어, 이런저런 인연을 고리로 그 바깥 세계와 충돌 혹은 조화라는 방식.. 2020. 9. 19.
매머드보다 귀하신 몸, 장수하늘소 아무래도 장수하늘소가 자꾸만 언론지상에서 등장해서 나로서는 언제나 그 출발인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이야기하는 장수하늘소는 언제나 그 시점에서 출발하는 까닭이다. 내가 장수하늘소를 만나기는 2015년이었다. 그해 4월 9일 당시 쉰여섯살 홍승표 라는 곤충수집가가 길이 11.4㎝에 이르는 장수하늘소 표본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한 것이다. 이날 기증식은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있었다. 관련 보도자료는 이미 배포된 까닭에 나는 이미 관련 기사를 처리하고는 현장으로 나갔다. 장수하늘소가 무엇인 줄 누가 얼마나, 특히나 환경 전문도 아닌 문화재 기자들이 얼마나 알까마는 그 폭발력은 커서 취재진이 그야말로 개떼처럼 몰렸다. 이 자리에서 내가 기증자를 만났는데, 놀란 점이 그가 거둥이 매우 불.. 2020. 8. 26.
(가을=연합) 두고두고 회자하는 명문기사 기사번호 AKR19980819002600004 코멘트 작성 김태식[사회부] 1998.08.19 14:24:00 수정 [사회부] 송고 윤동석[사회부] 1998.08.19 14:34:00 배부일시 1998.08.19 14:34:00 내용 날씨 지역 2020. 8. 26.
Back to 2009 동대문 스타디움 자료를 찾아봐야겠으나 아마 2009년이 아닌가 한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을 뜯고서 지금의 DDP를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를 앞두고 있었거니와, 그 일환으로 중원문화재연구소인가가 동대문운동장을 발굴을 했더랬다. 그 자리서 이간수문二間水門이 나왔다. (2018. 8. 26) *** 이제는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은 그 자체 근대 문화재이기도 했지만 변신을 꾀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과정에서 발굴이 있었다. 그에 얽힌 무수한 일화가 있으니 개중 하나가 저 이간수문 발굴이다. 동대문운동장은 한양도성 구간을 파괴하고 건설됐으니 이간수문이 그 운동장 아래 저리도 잘 남았을 줄 몰랐다. 2020. 8. 26.
적폐 혹은 구악의 귀환, 돌아온 해직기자 근자 어떤 기관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 해서 두어군데 전화를 돌려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종합하니 팩트 자체는 틀림이 없는 대신,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은 양측이 전연 달랐다. 두어 시간 지나자 천지사방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너 그거 기사 쓸 거냐? 쓰마 안댄데이. 조금만 참아주레이. 좀 바주레이.. 난 궁금해서 알아봤을 뿐인데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암튼 내가 복귀했다는 사실이 이 사건으로 그 업계는 온통 알려진 모양이다. 난 지금 근무 부서가 전국부다. 기사를 직접 쓰는 일은 거의 없고 관련 취재 지원과 취재 지시, 그리고 일부 데스킹 기능이 있다. 예서 관건은 두 가지. 첫째 전국부..안 걸치는 데 없다. 문화재 관련 일도 맘만 먹으면 한다. 둘째 취재 지시..내가 기사 직접 안 써도 쓰게 할 .. 2020. 8. 25.
한국문화를 비하했다는 기자 페이스북 내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들추니 꼭 5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5년 8월 22일자에 이 포스팅이 뜬다. 이 포스팅이 사연이 좀 있다. 공식으로는 저해 11월 나는 연합뉴스에서 해고되었는데 사측이 내세운 해고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구획되었으니 개중 하나가 품위유지 위반이었다. 그 품위유지 위반 사례를 수집하고자 사측은 감사팀을 동원해 내 페북 계정을 쏵 뒤졌는데 이걸 주도한 놈은 아직 연합뉴스에 근무 중이다. 징계워가 열리고 그 자리에 내가 나갔는데 지껄이는 말을 들으니 품위유지 위반 사례로 저 포스팅을 들면서 하는 말이 "한국문화를 사무라이에 비유하며 비하했다" 는 것이었다. 어쭈? 요놈들 봐라? 같잖았다. 뭐 해고하려 작정한 마당에 뭔 구실인들 못대겠는가? 웃어주고 말았다. 2020.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