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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60

불과 같았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 September 19, 2017 작성한 글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뇐네 설득한다 좀 애를 먹었다. 문화재청에 섭섭함이 많은 듯 격정을 토로한다. 1937년생이니 올해 여든하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1964년 4월 행정주사보로 문화재관리국에 발을 디뎠다. 1999년 6월 국립도서관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력이 독특해 행정직으로 입사했다 학예직으로 전직하고 다시 이내 행정직으로 돌아왔다. 정재훈 국장과 더불어 한국문화재 행정의 초석을 다진 일등공신이다. 한사코 옛날 이야기 들어 뭐하냐 거부한 그였지만 강남역 주류성에서 만나자마자 필설을 토한다. 1966년 구자춘 제주도지사에 맞서 온 산이 표고버섯 농장을 변하기 직전 한라산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켜낸 일, 춘천 중도로 떠나려던 문화재연.. 2019. 9. 20.
국보 4점, 보물 22점을 국가에 기증한 성문종합영어 송성문 내 세대 대학 입시는 수학의 정석 시리즈, 영어의 성문영어 시리즈, 국어의 한샘 시리즈가 대표한다. 이 중에서 유독 정석 시리즈만이 아직도 제국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거니와, 영어만 해도, 벌써 내가 세대애는 맨투맨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 성문 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정석 시리즈는 내 세대 또 하나 기념물을 새겼으니, 내가 고교 재직시절인가 그 무렵, 그 저자 홍성대씨가 전주인가에 세웠다는 상산고등학교라는 학교가 신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기 시작하던 초창기라, 이 고등학교를 두고, 소백산맥 너머 김천이라는 데까지, 이곳 재학생들은 전액 장학금을 받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더랬다. 저들 입시계의 절대군주 3인방 중 성문종합영어 주인공을 내가 다름 아닌 문화재 업계에서 조우하게 될 줄은 .. 2019. 9. 18.
언론 노출을 극도로 삼간 윤장섭 호림박물관 설립자 문화계, 특히 문화재계에서 거물로 치부할 만하지만, 극도로 대외 노출을 삼간 인물로 내가 두 사람을 꼽는데, 한 분이 그 유명한 영어학습교재 성문종합영어 저자 송성문 선생이며, 다른 한 분이 오늘 말하고자 하는 윤장섭 선생이다. 그 유명한 짠돌이 개성상인 출신인 윤장섭 선생이 왜 그렇게 대외 노출을 꺼렸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금융 혹은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아는 그는 아마 그런 직업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 막연히 짐작하기는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이룩한 성보문화재단은 문화재 보물창고다. 흔히 그 재단 호림박물관은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그리고 간송 전형필이 건립한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거니와, 윤장섭과 전형필은 같은 개성을 출신 기반으로 .. 2019. 9. 16.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 2006년 연합뉴스 주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도록이다. 이거 말고 축쇄판이 별도로 있다. 당시 북한지역 벽화고분 세계유산 등재 직후, 교도통신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나는 이 전시 반대했다. 첫째 사진이요 둘째 유사 전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함에도 전시는 그대로 나아갔고 나는 이에 포함되어 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담했다. 전호태 김일권 선생을 영입하고 당시 기억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천만원을 더 끌어와서 학술대회도 했다. 전시장으로 서울역사박물관을 급섭외했으니 당시 김우림 관장과 김영관 과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내가 도록 비싸다는 말 자주하는데 이거 실은 고백이다. 이 도록 12만원을 붙였다. 더 싸게 하자 했지만 이런저런 통계수치 내미는데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저 .. 2019. 9. 13.
“너 문화재 많겠다” *** 2016년 글이라, 그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오랜 기간 문화재 기자 생활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 더러 하는 말 중 하나가 “너 문화재 많겠다”거나 “너 문화재 많이 챙겼겠다”라는 게 있다. 하긴 내가 이 업계에 몸담은지 17년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이는 기자 업계를 향한 고질적 시선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라고 특정하진 않겠지만 문화 여러 분야 중에 물건 혹은 작품을 받기도 하는 곳도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나는 직접 겪은 일은 아니므로 생략한다. 앞에 첨부한 토기 쪼가리 두 점이 내가 문화재 기자 생활하며 챙긴 거의 유일한 진짜 문화재다. 대략 십년전쯤 경주 월성을 거닐다가 국립경주박물관과 인접한 남천南川 쪽 가까운 지점.. 2019. 8. 23.
해직이 준 축복 《직설 무령왕릉》 애초 2001년 완성한 무령왕릉 발굴기 출판사 교정본이다. 가제는 《송산리의 밤》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내가 차일피일 밍기적 대다가 해를 넘겨 이듬해 출간하고자 했지만, 사산死産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풍납토성》(김영사, 2000)을 내고, 곧이어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1)를 출간한 직후였다. 서른 중반, 참으로 혈기방장하던 시절이었다. 원고 자판기에 가까워 내가 생각한 주제는 쑥쑥 원고를 떡가래 뽑듯 폭포수처럼 쏟아낸 시절이다. 언제건 맘만 먹으면 내겠지 한 그 초고, 오랫동안 사장한 상태로 방치한 그 초고를 2015년 11월 무렵에 다시 꺼내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교정지가 그때까지 내 서재 한쪽 귀퉁이에 쳐박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찾아내서는 먼지를 털어.. 2019. 8. 21.
영원한 럭비맨 시인 조병화趙炳華 기자생활이 주는 묘미 중 하나가 돌발이다. 내가 한때 문학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기자생활 내내 그와 이렇다 할 인연도 없었으니, 그럼에도 가끔 이른바 문학인과도 접촉하게 되었으니, 시인 조병화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내 세대가 기억하는 조병화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인가에 실린 '의자'라는 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교과서에 실린다 함은 뭔가 대가급이고, 원로급이며, 그리해서 대체로 이미 이승을 등진 사람이다. 따라서 시인 조병화 역시 교과서에서 만나다가 그런 사람을 나중에, 것도 느닷없이 럭비경기장에서 만났으니, 좀 묘하지 않으리오? 내가 그렇게 조병화를 조우한 때가 1995년이니 물경 24년 전 일이라. 한데 그리 오래전 일임에도 그날 그 기억은 어제 본 듯 비교적 또렷하니, 당시 체육부 기자.. 2019. 8. 18.
내무부 주사에서 대통령으로 시대가 변했다. 아들이 내무부 주사 되어 온동네를 공포로 몰아넣을 그런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꿈을 꾸던 우리 엄마도 세상이 바꿔 놓았다. 그 꿈이 대통령으로 바뀐 것이다. 한마디로 엄마 간땡이가 부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소위 민주화 이후인지 자신이 없으나, 최대 표차로 패한 정동영이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소위 노인 비하발언 한 방으로 무너졌을 그 무렵이다. 그 무렵 마누라가 김천에 내려갔을 때, 테레비로 물끄러미 정동영 유세 화면을 보고는 엄마가 이랬단다. "시기도 대통령 할끼라" 멍한 마누라가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하니 엄마가 이랬단다. "저 바레이...저 놈도 기잔데 대통령한다 카네" 그 사이 당신 이름도 쓰지 못하던 엄마가 당신 이름도 쓰고, 비록 맞춤범은 개판.. 2019. 8. 12.
1박4일 키르기스스탄 출장 *** 2009.09.21 19:33:46 지금은 사라진 내 과거 블로그 글이다. 이 시점을 염두에 두어야 아래 문서를 해독한다. 1박4일. 나는 이런 표현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불행이라면 그 체험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는 고구려 고분벽화 해외 순회전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행사가 개막하기는 지난 15일. 장소는 이곳 수도 비슈케크이며, 더욱 정확히는 그곳 Fineart Museum이라는 곳이었다. 그 취재를 위해 한국에서는 나와 kbs 취재진 3명의 도합 4명이 현지로 갔다.(취재진만 말함) 비슈케크까지 직항로는 아직 개설되지 않은 까닭에 대체로 키르기스스탄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즈.. 2019. 7. 30.
내무부 주사 학력고사가 끝났다. 어느 대학 어느 과를 택할지 하는 문제가 남았거니와, 일전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난 스스럼없이 Y대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으니, 이는 중3때인가 작은 경험에서 비롯하거니와, 이 얘기를 새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아니하다. 까막눈이요, 대입 제도를 비롯한 교육제도에는 전연 더 까막눈일 수밖에 없는 부모님은 생평 그런 내색한 적 한 번 없으나, 내가 서울로 가겠다 했을 적에 적지 않이 당황했으리라 본다. 공부하라 그리 닥달하고, 특히 엄마는 때론 부지껭이로 아들을 두들겨 팼으니, 그런 아들이 서울로 유학한다 선언했을 적에,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쳤을 것이로대, 모르긴 해도 엄마 아버지 두 분은 이 난관을 어찌 돌파하느냐 하는 문제로 골을 싸맸을 것임이 불문해도 .. 2019. 7. 27.
서기 2000년, 부여는 거대한 공사판이었다 부여 궁남지 인근 야트막한 언덕인 화지산이 연차 발굴을 통해 백제시대 녹록치 않은 흔적을 연이어 쏟아낸다. 이 화지산, 여차하면 다 날릴 뻔했다. 자칫하면 전체가 계백결사대공원과 조각공원이 될 뻔 했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단을 소개한다. 2000.07.30 07:00:05 파괴일로의 백제 고도 부여 (부여=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폭염이 계속된 28일 공주를 떠나 차로 부여읍에 들어서자 읍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대로 중 오른쪽 편 주택가 숲 위로 무엇인가 거대한 철구조물 1개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지 주민에게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파트 공사장이라고 했다. 공사장 입구로는 건축자재와 공사장 폐기물을 실어나르는 육중한 트럭이.. 2019. 7. 13.
단행본으로 정리한 <쉿! 우리동네> 시리즈 이야기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찾다…'쉿! 우리동네' 출간송고시간 | 2019-07-12 09:00 우리공장 출판부에서 우리 공장 기획시리즈 '쉿! 우리동네 이야기'를 엮어 단행본으로 냈다. 이 시리즈에 내가 직접 관여했음은 여러번 말한 적 있거니와, 그래서 그 출간이 나로서는 그 어떤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판에 박힌 듯하지만, 추천사를 받았는데, 출판부에서는 그 유명한 야부리꾼 유모씨 얘기를 해서 내가 단칼에 내리치고는 저 두 사람으로 갔다. 현직 문화재청장과 현직 국립박물관장이면 됐을 성 싶었다. 초창기 내가 기획하고, 내가 총감독을 했지만, 보다시피 내 이름은 없다!!!! 쫌 넣어주지 ㅋㅋㅋㅋ 출판부가 고생했고, 다른 무엇보다 일선 취재기자들 노고가 만만찮았다. 분량 문제 등등을 고려해 출판부에서 개.. 2019. 7. 12.
영종도 다이하드 프로펠러 사건 사진은 프랑크푸르트인가 출발한 벵기가 영종도 공항에 착륙하기 전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촬영시점은 2015년 7월 6일 아니면 그 이튿날이었다. 이 사진을 나는 7월 7일자 내 페이스북 계정에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나는 독일 본에서 막 끝난 그해 제39차인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현지 취재를 끝내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당초 예고한 대로 무난히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니 문제는 일본이 신청한 메지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이었다. 그 산업혁명 유산군 중 7곳인가가 조선인 강제징용 비극의 현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그런 사실은 일부러 누락한 채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는 바람에 그 등재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관계에 파란이 일었던 것이다. 그때문에 당초 예정한 출장기간도 하루 늘어나는 소동이 빚어졌으니,.. 2019. 7. 11.
매장문화재가 장의사였던 시절, 埋葬과 埋藏 사이 오늘 현재 전국에 걸쳐 100곳 이상을 헤아리는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을 그 등장 초창기에는 매장문화재연구원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으니, 1994년 8월 5일, 그 시초를 알리며 출범한 기관 역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었다. 이 연구원은 결국 1999년 9월 9일, 이름을 영남문화재연구원으로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매장'이라는 말을 뺀 것이다. 이 매장을 애초 '埋葬'이라 했는지, 혹은 '埋藏'이라 했는지 자신은 없지만, 그네들이 표방한 목적을 본다면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매장'이라는 말이 사회에 통용하는 가치다. 고고학계를 벗어난 데서는 모두가 전자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곳이라 인식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 2019. 7. 2.
넌 농촌 출신이라 데모꾼이라 해서... Taeshik Kim June 11, 2017 언젠가 이런 말을 쓴 적 있다. 진짜로 가난한 사람은 혁명을 못 한다고. 이는 실제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찢어지리만치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나는 천성이 그러했다. 한데 세상이 참말로 웃기게도, 세상은 나를 그리 보지 않더라. 나는 1993년 1월1일자로 지금의 연합뉴스 전신인 연합통신 기자로 공채 입사했다. 연합뉴스는 지금도 그러한데 그때도 기자직을 서울주재 기자와 지방주재 기자, 그리고 사진기자 세 부류로 나누어 선발했다. 내가 합격한 그해엔 지방기자직은 없었고, 서울주재와 사진기자만을 뽑았다. 결과 10명이 기자직으로 합격했으니, 개중 2명은 사진기자였다. 서울주재 펜대 기자직 8명 중 나를 포함한 2명은 느닷없이 지방주재로 발령나, 나는 부산지사로 가.. 2019. 6. 12.
뉘였다가 세운 부여 군수리절터 목탑 중심기둥 아래 전문 인용하는 기사에서도 드러나고, 내 기억에도 분명 송의정 소장 시절이었다. 철두철미 박물관맨인 송의정이 윤형원 등과 더불어 인사교류 명목으로 2년인가 잠시 문화재청으로 파견나가 근무한 적이 있으니, 여담이나 이때 재미를 붙인 윤형원은 이후 한 번 더 문화재청 근무를 자청해 해양연구소에서 과장 2년인가 해 묵고 부여박물관장으로 튀었다. 애니웨이, 송의정 소장 시절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역점으로 벌인 발굴사업이 부여 군수리절터였다. 2005년 6월 14일자 내 기사가 이를 예고했으니,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부여 군수리 백제 절터 70년만에 재발굴1935-1936년 조선총독부 조사 이후 처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백제 마지막 도읍 부여에 위치한 그 시대 절터로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꼽.. 2019. 6. 7.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명문판독기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292번지 관룡산觀龍山, 혹은 구룡산九龍山이라 일컫는 산 기슭에 관룡사觀龍寺라 일컫는 불교사찰이 있으니,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 말사인 이 사찰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나, 경내에 지정문화재가 밀집해 그 녹록치 않은 역사성을 증언한다. 그런 성보문화재 중 용선대龍船臺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라는 불상 하나가 있다. 사찰 경내를 벗어난 용선대라는 바위 혹은 암반 위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자리에 위치한 이 불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성내력을 알 수 없었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그 양식으로 보아 9세기 신라 불상이라는 통설이 암암리에 통용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이르러 이 불상이 8세기 초반 통일신라시대 흥성기에 만들었다는 조성기가 다름 .. 2019. 6. 4.
4대천황에서 3대천황으로...세대교체가 된 문화재기자업계 호랑이 없는 골에 승냥이가 오야붕질 한다고. 문화재기자업계에 요런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라.... 한때 이 업계를 말아드시던 원로들이 이런저런 전차로 현장을 떠나야 했으니, 요새 이 업계를 호령하는 이들로 그네들 스스로가 3대천황이라 일컬으며 지들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고 다닌다 하거니와 듣건대 조선일보 허모, 세계일보 강모, 그리고 우리 공장 연합뉴스 박모가 툭하면 술자리 마련하고는 그네들 스스로를 일러 3대천황이라 한다더라. 그러면서 그네들이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그 전시대 이 업계를 주름잡은 네 명을 거론했으니, 입만 열면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단 말을 노래로 삼아 일고선생이라 일컬다가 어느날 훌쩍 기자 때려치고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 옮겨 적응하는가 싶더니, 이내 국립진주박물관장 공모가 나.. 2019. 6. 2.
"참으로 순조로운 발굴" "발굴은 그리하는 줄 알았지 뭐"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은 그 발굴 전과정이 요새 기준으로 하면 생중계된 한국 최초의 발굴현장이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던 일이다. 뭐 그만큼 발굴이 개판이었다는 말이다. 기자들이야 언제나 발굴현장의 정보통제를 비난하지만, 솔까 언론에 완전 개방한 상태에서 발굴이 제대로 진행될 리 있겠는가? 우왕좌왕 개판이었다. 그에 더해 기자들 역시 발굴현장을 제대로 취재해 본 적도 없었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는데, 난생 처음 접한 발굴현장은 그만큼 신기할 뿐이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무령왕릉 발굴이 끝난 뒤 이 사건 보도를 내내 특종보도한 한국일보 취재기자 방담기다. 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발굴 진행은 참으로 순조로왔습니다" 이 한마디가 무령왕릉 발굴 모든 것을 함축한다. 그날 무.. 2019. 4. 26.
내 분야에서는 나는 내가 세계 최고라 생각한다 April 26, 2014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 언론의 후진성 미개성을 질타하면서 외국의 여느 유수한 언론을 들이다 대면서 "보라, 우린 왜 이렇게 못하느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내가 cnn 여느 기자보다 뒤진다 생각한 적 없고, 가디언 어느 기자보다 못하다 생각한 적 없고, 인디펜던트 여느 기자 나부랭이보다 못하다 생각한 적 없다. 나는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이걸로 산다. 기자? 욕해라1998년 12월1일 이래 한국문화유산사는 김태식이 없으면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이 자세 잃지 않으려 했고, 지금도 그런 자세 유지한다. 2019. 4. 26.
마약과 간통, 부산 근무시절 기자생활 두 토막 93년 기자로서 첫 발령지인 부산지사 근무시절, 아무래도 항도 부산인 까닭에 뽕 먹고 유치장 신세 지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견주어서는 그리 많았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얼마전 상영한 송강호 주연 영화 '마약왕' 역시 주무대가 부산이라, 일본에서 가깝고, 배가 많이 드나드는 까닭에 부산은 마약 사범이 그리 많다. 듣자니 요즘 경찰 취재 패턴이 바뀌어서 이제는 기자가 형사계에 맘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는데, 그때는 마음대로 들락거릴 때라, 그뿐이랴? 그 형사계 한쪽에 마련된 철창으로 가서는 간밤에 어떤 사람들이 붙잡혀 들어왔냐 직접 심문 취재하던 시절이라, 거개 새벽마다 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약사범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개 헤롱헤롱 눈이 풀린 상태였으니, 그런 친구들한테 내가 못내 궁금한 게 있었으.. 2019.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