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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마약과 간통, 부산 근무시절 기자생활 두 토막 93년 기자로서 첫 발령지인 부산지사 근무시절, 아무래도 항도 부산인 까닭에 뽕 먹고 유치장 신세 지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견주어서는 그리 많았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얼마전 상영한 송강호 주연 영화 '마약왕' 역시 주무대가 부산이라, 일본에서 가깝고, 배가 많이 드나드는 까닭에 부산은 마약 사범이 그리 많다. 듣자니 요즘 경찰 취재 패턴이 바뀌어서 이제는 기자가 형사계에 맘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는데, 그때는 마음대로 들락거릴 때라, 그뿐이랴? 그 형사계 한쪽에 마련된 철창으로 가서는 간밤에 어떤 사람들이 붙잡혀 들어왔냐 직접 심문 취재하던 시절이라, 거개 새벽마다 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약사범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개 헤롱헤롱 눈이 풀린 상태였으니, 그런 친구들한테 내가 못내 궁금한 게 있었으..
사대강사업 문화재조사 관련 이건무 문화재청장 기자회견 전문 이건무 문화재청장 기자회견문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청장 이건무입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된 문화재 보호와 조사에 대해 그동안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가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따른 그동안의 문화재조사 진척상황과 최근 보존문제가 대두된 사안들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매장문화재 분포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청은 국토해양부의 '4대강살리기 사업 기본계획’발표 이전에 4대강 유역 전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사업계획에 반영하여 효율적인 문화재 보존·관리를 도모하고자 하였습니다.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발굴조사가 필요한 유물산포지 225곳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결과를 기..
1993년 보고된 참굴큰입흡충이 400년전 조선시대 미라서 검출 서울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가 바로 앞서 조선시대 미라에서 참굴큰입흡충(Gymnophalloides seoi)이라는 기생충을 확인한 사실을 소개했거니와, 언론에서는 이 소식을 아마도 내가 가장 먼저 소개한 기억이 있어, 당시 기사를 찾아 전재한다. 그 내력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에서 어느 정도 충분히 설명되리라 본다. 2006.10.29 07:00:06 '93년 보고된 기생충이 400년전 미라서 검출서울의대 채종일 교수팀 참굴큰입흡충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3년에야 존재가 보고된 기생충이 400년 전 조선시대 여성 미라에서 검출됐다.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 채종일 교수는 단국대의대 서민 교수,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 등과 함께 올해 4월6일 경남 하동군 금성면 가덕..
금괴를 찾는 박정희 이발사, 효자동 이발소 이야기 지금은 연합뉴스로 이름을 바꾼 연합통신에 1993년 1월 1일 입사해, 6개월에 걸친 수습기간을 끝내고 발령받은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부산지사 신참기자는 언제나 남구 해운대에 배치되었으니, 이곳이 다름 아니라, 광안리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을 낀 유흥지인 까닭이었다. 당시 부산 남구 인구가 60만을 상회했으니, 내가 서울로 옮긴 직후 그 일부를 떼어냈으니 그것이 수영구다. 당시 남구청 홍보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대언론 업무로 이골이 난 분이 있었는데, 하루는 기자실에 들러서 전하기를 "희한한 사람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전용 이발사였다고 하는 분인데, 그 분이 일본사람이 왜정 때 묻어놓은 금괴를 찾는다고 6년째 땅굴을 파고 있다"면서 취재하면 좋을 것 같다..
대구 동화사 황금 소동 문화재판에서도 해프닝성 사건이 예외는 아니어니와, 내가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동화사 금괴 사건이다. 대구지역 일간지로 대구일보가 있다. 이 신문이 2012년 1월 5일 1면 톱 기사로 "동화사 뒤뜰에 금괴 묻었다는데"라는 기사를 게재하니, 이를 시발로 동화사는 느닷없은 금괴 매장 논란에 휘말린다. 보도인즉슨 이랬다. 40대 어느 탈북자가 "한국전쟁 당시 양아버지가 대구 동화사 뒤뜰에 다량의 금괴를 묻었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이것이 언론지상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2008년 12월 탈북한 김모(41) 씨라는 사람이 이 무렵 대구 지역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 출신 양아버지(83)가 '한국전쟁 당시 40㎏ 정도 금괴를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
<3.1절 80주년의 사건> (6) 현승종 사태를 두고 한판 붙은 염소수염과 핏대 그의 연합뉴스 인터뷰가 건국대 안팎에서 심각한 권력투쟁 양상으로 발전할 줄이야, 현승종도 몰랐도,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공개되자마자, 그를 이사장직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노골화했다. 이로 볼 때, 1993년 이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현승종이 건국대 내부에서 적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식민지시대 말기 그의 학도병 강제징집과 그에서 비롯되는 일본군 생활기간 소위 복무 사실은 건국대 교수협의회와 직원노조, 총학생회 등을 자극한 기폭제가 되었으니, 이들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는 현승종에 대해 이사장 사퇴 압박을 노골적으로 가하기 시작했다. 소위 복무 사실이 친일행위라는 것이었다. 이런 압박에 시달린 현승종은 결국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대략 2개월 만인 1999년 4월 2..
<3.1절 80주년의 사건> (5) "처음 밝힙니다. 나는 일본군 소위였어요" 말쑥한 밤색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 인터뷰를 의식해서라고도 하겠지만, 천상 할배요 천상 영감인 이 양반은 적어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생평을 이렇게 살았을 사람 같았다. 흐터러진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길이 없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아했다. 곱게 늙는다는 말, 이런 사람한테 쓰는 갑다 했다. 말투 역시 차림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천상 마음씨 좋은 문방구 할배의 그것이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시종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래 신선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했다. 목청은 높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했다. 만나 보니 현승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판에 박힌 인사를 나누고는 이력 조회에 들어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
<3.1절 80주년의 사건> (4) 다급한 전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지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관련 인터뷰가 나간 1999년 2월 24일이 지난 어느 시점이었다. 전화가 왔다. 현승종 이사장이었다. 여든하나 뇐네가 손수 전화를 했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기사 내줘서 고맙다둘째, 기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였다. 유선상으로 전해진 그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20년 전 일이니깐 말이다. 다만 그 요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그 기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졌다.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나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그걸 꼬뚜리로 삼아서 들고 일어났다. 내가 친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낭배란 말인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