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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미라와 북극 (11)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이제 북극에 대한 이야기를 끝낼 때가 왔다. 아문젠에 서북항로를 인류 최초로 개척한 이야기를 썼지만 사실 아문젠의 모험이 증명한 것은 서북항로는 상업항로로 이용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시 사철 중 여름에만 간신히 이 항로에서 얼음이 녹아 길이 열리는데 그나마 아문젠이 사용한 것처럼 작은 크기의 배나 다닐 수 있을 뿐 대형 무역선이 다니기에는 택도 없는 항로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게 된 것이다. 거기다 수에즈운하가 열려 (1869년) 동아시아로 가는 길을 굳이 북극항로를 통해 열 필요가 사라졌다. 수에즈운하가 아시아로 가는 길을 크게 단축하면서 서북항로의 매력은 사라지고 아문젠이 이 항로를 개척할 즈음에는 이미 탐험자의 관심을 끌고 있..
미라와 북극 (10)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비극은 대장인 프랭클린의 죽음에 대한 디테일, 탐험선인 Terror와 Erebus에서 탈주한 선원의 운명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이들이 어떤 이유로 조난했고 마지막 행적은 어떠했는지 1세기에 걸친 집요한 추적으로 이제는 거의 밝혀진 상태이다. 그리고 프랭클린 원정대는 남극 대륙원정 중 쓰러진 스콧 원정대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탐험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다. 프랭클린 동상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집요하게 찾던 북서항로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북서항로를 마침내 돌파한 사람은 저 유명한 노르웨이의 아문젠이었다. 그는 남극 정복 이전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 반열에 올라 있었는데 그의 북서항로 최초 돌파가 ..
미라와 북극 (9)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80년대와 90년대는 백여년 만에 불씨를 살린 프랭클린 원정대 탐사가 붐을 이루었던 시기이다. 거의 매년 원정대가 캐나다 북부 해안지역으로 파견되어, 작지만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프랭클린 원정대의 최후는 아직도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다. 이 원정대에 탑승한 대원의 명단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정작 프랭클린을 비롯한 선장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그리고 배에서 탈출한 최후의 대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1992년부터는 얼음에 파괴되어 침몰한 것이 분명한 프랭클린 탐사선-. Erebus와 Terror를 찾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누이트들 전승에 따르면 프랭클린 원정대 탐사선이 침몰한 지역일 것으로 보..
미라와 북극 (8)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오늘로 제 블로그 연재가 100회를 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University of Alberta 팀의 연구 결과-특히 납중독에 관한 이론에 대한 반박은 중독이 정말 항해기간 동안 섭취한 깡통음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뼈로 검출한 납의 축적량은 단기간-항해기간에 해당하는 2년-보다는 보다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좀 더 믿을 만한 결론을 위해서는 뼈보다는 선원의 연부조직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회는 1984년에 찾아왔다. King Island 주변 Beechey 섬이라는 곳에는 프랭클린 원정대가 난파하기 전에 사망한 선원의 무덤이 있었는데 원정대의 정확한 사망원인 분석을 위해 이 무덤의 ..
미라와 북극 (7)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프랭클린 원정대 수색을 실종 후 130여년 만에 재개했던 (1981-1982) University of Alberta 팀이 King William Island에서 발견한 사람뼈를 재 조사하면서 얻은 정보는 아래와 같았다. - 선원들은 심각한 Vitamin C 결핍의 흔적이 있었다. 비타민 C 결핍이 심하게 되면 잘 아시는 것 처럼 괴혈병 (scurvy)을 앓게 된다. 지금은 신선한 채소를 아무때나 먹을 수 있게 된 냉장고 덕에 괴혈병은 주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20세기 이전만 해도 이 병은 희귀한 병은 아니었다. 특히 이 병이 문제가 되는 때는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장기간 항해를 하게 되면서였다. 오랫동안 배를 타고 신선한 채소나 과일 ..
미라와 북극 (6)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앞에서 밝혔듯이 프랭클린 원정대의 실종 후 영국은 이 원정대의 종적을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프랭클린 원정대를 찾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는 당시 돈으로 20,000 파운드 (2019년 환산 15억 정도) 현상금을 걸기까지 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프랭클린원정대 수색을 성공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현상금 포스터 프랭클린 원정대의 운명은 20세기 후반부터 밝혀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인류학자-고고학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해군의 구조 사업이었던 것이 100년을 훨씬 넘어가면서 고고학적 탐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탐사는 한번에 그친 것이 아니고 8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여러 그룹에 의해 반복적으로 시도되었는데 주요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
미라와 북극 (5)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프랭클린 원정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원정대는 두 척이나 되는 배에 133명이나 되는 사람을 싣고 북극해로 들어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충격의 여파는 무척 컸다. 게다가 이 원정대의 지휘자는 항해에 풍부한 경험이 있는 현역 해군 제독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문제가 되었다. 프랭클린 원정대를 구성한 두척의 배-. Erebus와 Terror. 프랭클린 원정대가 그린랜드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영국은 끊임없이 탐사대를 보냈다. 이들은 프랭클린 원정대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원정대가 파견될 때 마다 점점 서북항로의 지리적 정확도는 올라가게 되었다. 캐나다 북부의 북극권 지역의 지형이 항해..
미라와 북극 (4)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북서항로의 개척은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영국인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앞에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우선 지리적 정보가 너무 없다는것이 가장 문제였는데 이러한 정보의 부족이 바로 치명적 결과와 직결될 가능성이 북극에서는 극히 높았다는 점에서 이 항로의 개척은 시작부터 선박의 난파가 이어졌다. 이런 실패 속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북서항로-특히 캐나다 북부 해안 지역 일대의 지리적 정보가 추가되었던 것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1850년대 캐나다 북안 북서항로 지도. 상당히 정밀해 진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존 프랭클린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존 프랭클린 1786년 생. 잉글랜드에서 태어났고, 원래 귀족집안은 아닌 포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