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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124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2)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그 때 발굴단 숙소 옥탑방 술자리에 누가 있었던지는 내 기억이 확실치 않다. 아마 신데교수와 나 외에 김용준 박사, 이렇게 셋이 술을 마시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후레쉬 불에 의지하여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래는 신데교수와 나누었던 이야기 중 기억 나는 대목만 대화 형식으로 정리 해 본 것이다. 이날 저녁때 있었던 대화일수도 있고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편의상 모두 묶어 대화로 정리하였다. 라키가리 유적 현장을 가보면 이렇게 쌓아 놓은 소똥이 가득하다. 소똥은 이렇게 잘 빚어져 연료로 사용된다. 나: 막상 여기 와보니 그냥 소 똥을 말리는 언덕 뿐이다. 여기 지하에 5천년 전 도시 유적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나? 신데교수: 여기는 이미.. 2019. 4. 16.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도 한번 썼듯이 필자는 인도조사 중 소위 말하는 "인더스문명의 대도시" 유적을 두군데를 봤다. 한군데는 구자라트 주의 돌라비라 유적. 다른 한군데는 하리아나 주의 라키가리 유적이다. 어느나라 어떤 문명이나 문명권 안에는 광범위한 농촌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여러 크기의 도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이 인더스 문명의 경우 그 문명의 특징 중 하나로 매우 두드러진다. 인더스 문명의 유적. 원으로 표시된 것이 인더스 문명의 도시 유적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도시 유적도 상당히 많지만 그 중에서 "대도시"급에 속하는 것은 모두 다섯군데로 Mohenjo-daro, Harappa, Dholavira, Kalibangan, 그리고 Rakhigarhi이다... 2019. 4. 12.
[새연재]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 천국인가 본 연구진이 다년간 조사하였던 인더스 문명-.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이 문명을 둘러싼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것의 하나는 다름 아닌 인더스 문명이 같은 시기 다른 주변 지역 고대문명과 달리 전쟁도, 계급도, 폭력도 없었던 평화로운 세계였다는것-. 알고보면 이러한 학자들의 믿음은 단순한 추리나 공상이 아니라 고고학적-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상당 부분 지지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믿음에 반기를 든 연구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인더스 문명이 좀 특이한 형태이긴 하지만 결국 다른 문명과 별 차이 없이 구조적 폭력과 계급, 국가가 지배한 사회였다고 본다. 다음 연재는 이 문제를 우리 연구진의 인도 인류학 연구를 중심으로 풀어가기로 한다. 4월 12일 부터. 2019. 4. 9.
[조선시대 미라-10]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5)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이제 이 글 마무리 할때가 되었다. 글의 대부분은 미라나 발굴현장에서 수집한 인골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웠다. 지금까지 연재를 통해 인골과 미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발굴현장에서 차근차근 수집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법률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비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고려해야 할 전부일까. 미라의 학술적 중요성만 고려하면 되는 것일까. 발굴현장 어딘가. 열심히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만 돌려보자.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한 것이지만 우리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보는데 익숙하다.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있고 그 중 악인은 뚜렷이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연구윤리를 위반한.. 2019. 4. 5.
[조선시대 미라-9]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4)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현충일 때마다 홍보가 되어 지금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지게 되었지만 국방부 유해감식단은 군 복무 중 불행히도 전사하거나 실종 된 유해를 찾아 과학적 감정을 통해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감식단은 사실 우리나라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고 그 모델은 미국의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약칭해서 JPAC) 이었던 것으로 안다. 내 기억으로 하와이에 본부가 있는 이 기관 수장은 미군 별 두 개였다고 기억하는데 최근에 다른 기관과 합병하여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뀐 모양이다. 이 기관에는 한국계 연구자도 근무했거나 하고 있다. 가끔 메스컴에서도 다루어져 .. 2019. 4. 2.
인도 사회의 열녀 전통 사띠(Sati)를 어찌 볼 것인가? 이미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 고병리학연구실 신동훈 교수가 몇 차례 연재를 했거니와, 그에 대해 다시 명실상부한 정통 인도학 연구자인 김용준 선생이 아래 훌륭한 보완을 해 주었으니, 이는 이 블로그에 이미 게재했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Sati 인도사회와 Sati(사티) 인용자注 : 인더스문명 부부합장묘 발굴과 관련한 인도사회 여성들의 남자 따라죽기(혹은 따라죽임)인 순장殉葬 혹은 순사殉死인 사티(sati) 관련 서울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의 연재에 대해 인도 현지에서 오.. historylibrary.net 이것으로써 조금은 부족하다 생각했음인지, 김용준 박사가 다음과 같이 수정 보완한 글을 보내줬다. ◇◇◇◇◇◇◇◇◇ 사띠(Sati)는 수행자 쉬바(Shiva)와의.. 2019. 4. 1.
[조선시대 미라-8]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3)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 연재에서 조선시대 미라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썼다. 필자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미라가 단순한 대중의 흥미거리에서 벗어나 다른 역사학 분야와 같은 수준의 정보를 (그것도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연구주제가 이미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학술분야에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적용된다. 학자들은 특히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 연구에 파뭍히게 되면 그 분야에 집중하여 시야가 현저히 좁아진다. 이것을 단점으로 이야기 한다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할수 있겠지만 좋게 평가하자면 전문성이 올라가고 집중력이 뛰어난 것이 될 것이다.. 2019. 3. 26.
[조선시대 미라-7]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2)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 2회 분 연재에서 한 번은 미라 보존과 매장의 문제를, 또 다른 한번에서는 그간 우리 연구실에서 보고한 연구 실적을 간단히 언급했다. 이 중 두번째 분량은 본문에서도 썼던 바와 같이, 조선시대 미라가 단순히 흥미 영역을 넘어 명실상부 한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국 조선시대 미라 안에 아직도 잔존한 과학 정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윤리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조사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증명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과연 어떤 "의학적 정보"가 미라 연구를 통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이야기를 하나 예를 들어 써보겠다. 때는 지금부터 13년 전. 2006년 4월. 지금은 국립박물관.. 2019. 3. 22.
[조선시대 미라-6] 관련 논저 목록: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아래는 우리 연구실에서 2002년 이후 수행한 조선시대 미라에 대한 논저 목록이다. 필자는 2002년에 처음으로 조선시대 미라를 접한 이래 2006년부터 다른 일 다 접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그 후 13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논문과 단행본 합쳐 60편 조금 못되는 보고를 한것 같다. 우리 연구실 전체 연구업적의 1/3을 차지 할 정도의 양인데 조선시대 미라 단일 주제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분야 연구의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짐작할 수 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세상도 많이 바뀌고 조선시대 미라의 학계 위상도 많이 올라가서 필자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해외 관련 연구자들은 "조선왕국"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그 역사도 잘 모르는 수준이었지만 (이 때문에 논문 투고때 마다.. 2019. 3. 19.
[조선시대 미라-5]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매스컴 타는 일을 썩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조선시대 미라가 언론에 보도되면 거의 항상 반복 재연되는 논의가 있는데, 1) 미라는 이처럼 귀중한 연구 자산인데 제대로 연구도 없이 그냥 묻어버리고 화장하고 있다. 이것은 큰 문제다. 법률을 정비해서라도 제대로 연구할수 있게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 하나는, 2) 미라도 사람인데 본인 허락도 없이 이렇게 과학적 연구라는 명분을 앞세워 맘대로 조사해도 되는건가. 연구자들은 죽은 사람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1)번과 같은 입장은 미라가 가지고 있는 학술적 가치를 생각하면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신문과 방.. 2019. 3. 19.
인도사회와 Sati(사티) 인용자注 : 인더스문명 부부합장묘 발굴과 관련한 인도사회 여성들의 남자 따라죽기(혹은 따라죽임)인 순장殉葬 혹은 순사殉死인 사티(sati) 관련 서울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의 연재에 대해 인도 현지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인더스문명(하라파문명) 고고학 발굴조사에도 질기도록 종사한 김용준 박사가 아래와 같은 보완 설명을 붙였으니, 음미할 대목이 많아 전재한다. =========================== Sati가 보편화한 것은 라마야나와 관련이 깊습니다. 라마(Rama)의 아내 시타(Sita)가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고자 불에 뛰어들죠. 일단 Sati보다는 열녀촌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과부의 일반적인 삶이었습니다. 바라나시 등지에 유명한 과부촌이 있습니다. 인도 영화 《Water》는 사티와 .. 2019. 3. 15.
[예고] 왜 조선시대 미라인가 최근 발견된 고응척 선생 미라 소식에 즈음하여-. 이제 조선시대 미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연재에 다루어보겠습니다. 3월 19일 부터-. 2019. 3. 14.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21)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6)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Sati 이야기에서 길어졌다. 이제 본론인 인더스 문명시대 부부합장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앞에서 쓴 대로 수천년 된 옛 무덤에서 부부합장묘가 발견되면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발견을 언론이 다룰 때 기사 캡션은 "영원한 사랑" 등의 이야기로 포장 된다. 아래는 또 다른 부부합장묘의 예로 루마니아에서 발견 되어 언론 보도 된 것이다.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중세 남녀 인골. 아마도 부부라고 생각되지만 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묻혔다. 부부가 함께 묻혔을 때 이를 영원한 사랑의 결과로 보고자 하는 것은 대중의 바람이기도 하다. 미국의 고고학 대중지인 "Archaeology Magazine"에는 다음과 같이 이 부부합장묘를 설명했다. "T.. 2019. 3. 12.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20)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5) Sati에 관한 인도의 설명-. 참고바랍니다. 요약: 1. Sati는 분명히 악습이지만 인도에 있는 것은 아니며 2. Sati의 진행과정과 전통 인도사회에서의 의미를 보면 우리 열녀문과 매우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녀문이 공식적으로 "자발적"이었던 것처럼 Sati 역시 공식적으로는 "자발적"이지요. 2019. 3. 10.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9)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4)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가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발견일 수도 있는 전차와 말에 대한 집착-. 그 이면에는 인더스 문명을 바라보는 인도인의 복잡한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 회에 썼다. 이제 다시 우리 연구진이 발견한 라키가리 유적의 남녀 합장 무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금까지 라키가리 유적은 무미건조할 정도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혼자 묻힌 무덤만 줄줄이 보고 되었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함께 발견되었다니 아마도 이 두 사람은 부부 (아니면 사실혼 관계의 연인) 였나보다. 아마 이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가장 크게 자극한 부분 아닐까. 라키가리 유적을 파고 있을때 인도에는 "모헨조다로"라는 볼리우드 영화가 개봉되었었다. 이 영화는 인더스 문명을 주제로 한 블록버.. 2019. 3. 8.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8)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3)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여기서 잠시 인더스 문명 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리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인더스 문명이 인류 4대 문명 (물론 구대륙이다)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문명은 정말 오래된 문명이고 전성기 당시 이 문명이 포괄하던 영역 역시 방대하다.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영역을 합친 지리적 범위보다 더 넓은 범위가 인더스 문명이 미치는 지역이었다. 아래 동영상을 보자. 세계사를 간추려 몇분간에 전부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화면 전체로 확대하면 더 잘 볼 수 있다. 이 동영상에서 주의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인더스 문명. 동영상이 시작되고 1분 정도까지 인더스 문명이 나온다. 오늘날의 파키스탄,.. 2019. 3. 5.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7)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2)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인더스 문명 시기의 부부합장묘란 인도인들에게는 단순히 남편과 아내를 사후 같이 매장한 무덤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따로 쓰기로 하고-. 사실 인더스 문명 시기 부부합장묘라고 보고 된 것은 우리가 찾은 라키가리 무덤이 처음은 아니었다. 인더스 문명 유적 중에 로타르 (Lothal) 유적이라는 곳이 있다. Lothal 유적은 인더스 문명권 유적들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인더스 문명 도시 유적의 전형적인 특징인 잘 구획된 도시 구조, 세련된 도시민의 생활유적, 발달된 금속문화의 흔적 등 흥미로운 발굴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발굴 내역은 이미 보고서로도 나와있다. Lothal 유적의 우물과 배수로. 전형적인.. 2019. 3. 1.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6)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이제 라키가리 공동묘지에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 했던 몇가지를 써 보겠다. 사실 무덤 발굴 현장에서 남편과 아내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함께 묻힌 것을 찾는 경우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 발굴현장을 조사해도 내가 아는 한 이런 무덤은 수두룩하게 나온다. 대개 넓게 묘광을 파고 그 안에 남편과 아내의 관을 함께 안치한 무덤이다. 모든 무덤이 이런 부부합장묘인 것은 아니지만 꽤 드물지 않게 발견 되므로 전공학자들에게는 별로 신기할 것이 없는 케이스 일 것이다. 우리나라 묘지 발굴 때 흔하게 보는 조선시대 부부합장묘. 하지만 이런 부부합장묘도 세계적으로 뜻밖의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Lovers of Valdaro" 이 한쌍의.. 2019. 2. 26.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5) : 발굴현장의 하루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인도 발굴현장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궁금해 하실분이 있으실 것 같아 내가 경험한 한도에서만 써보겠다. (1) 기상 (대락 7시 경이면 활동하는 사람들 출몰 시작)전반적으로 인도 사회 자체가 아침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우리보다 빠르지 않다. 하지만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시골 특성 상 해가 떠 있을 때 일을 시작하고 마쳐야 하니 아무래도 인도 도시에 있을 때보다는 기상 시간이 빨랐던 듯. 아침에 일어나면 세면을 마쳐야 하는데 우리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따듯한 물은... 당연히 없다. 발굴캠프의 아침. 요즘은 이런 텐트는 캠프에 쳐 두기는 하지만 식당으로만 쓰고 잠은 독립가옥에서 자는것 같다 숙소로 쓰는 집. 기상 직후 풍경. 가운데 보이는 사람이 .. 2019. 2. 22.
[예고] 다시 인도로-.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이미 예고한 바와 같이 잠시 다른 주제로 나들이 떠난 일을 접고 이제 다시 인도로 이야기를 돌립니다. 이전까지 썼던 연재 마지막 회는-. 인도학술 조사 이야기 [14] 새 연재부터는 연재일을 종전 월-목에서 화-금으로 바꿉니다. 아울러 쥔장님이 이집트 방문 중이라 제 연재도 한번 건너 뛰겠습니다. 따라서 2월 22일부터. 2019. 2. 15.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6)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에필로그 1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15세기부터 한반도는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개간을 시작했다. 개간은 처음에는 무너미 일대에 물을 대어 논으로 바꾸는 형태로 시작했지만 이것도 16세기에 들어 거의 개간이 완료되자 이번에는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꼭대기까지 불을 놓고 논밭을 일구어 19세기 초반이 되면 평지의 농경지와 산의 농경지가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농경지로 바뀌고 산에는 나무 하나 없는 터무니 없는 상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여기다 기왕에 존재하던 밭까지 새로 논으로 바꾸는 활동이 시작되면서 전체 경작지에서 논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졌다. 몇백년간에 걸친 이런 조선 농촌 변화의 충격파는 16~19.. 2019.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