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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지난 주말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県)에서 "일본고병리연구회(日本古病病理硏究會)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다. 우리나라도 옛 질병을 연구하는 고병리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고병리연구회"가 있는데 비슷한 조직이 일본에도 있다. 고병리라는 연구 분야는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상당한 숫자의 연구자가 활동하는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는 그 숫자가 아직 미미하기만 하다. 우리처럼 일본도 아직 소수 연구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상호간 드문 연구 주제를 다룬다는 동류의식이 흐르는 듯도 하다. 지난 주말 그들 학회는 사실 국제학회는 아니었지만, 학회가 열리는 장소가 마침 "도이가하마 유적 박물관(土井ヶ浜遺跡博物館)이라, 나..
[예고] 짧은 스핀오프: 도이가하마 유적과 도래계 야요이인 원래 "개간과 산림남벌 그리고 말라리아"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려 했습니다만, 짧은 스핀오프를 그 전에 하나 쓰고 넘어가려 합니다. 일본에는 야마구치현에 도이가하마 유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대륙계 야요이인"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곳으로 매우 유명한데,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음 주 2회 정도, 도이가하마 유적과 야요이인의 일본도래에 대한 짧은 스핀오프를 하나 남기고자 합니다. 기대하시길-.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8)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서울시내 발굴현장 기생충 연구는 내게 있어 각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50대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겪은 여러 연구 중에 이는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결과를 역사적 시각에서 해석한 경우도 많지 않다. 나로서 본다면 고기생충학 연구가 단순한 의학사적 관심사를 넘어 과거 우리 조상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을 처음으로 확신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번 연재를 쭉 읽은 분들은 우리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아시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내용이 조금이라도 재미있었다면 나로서는 대 만족이다. 연재 마지막에 재미삼아 사족을 달아보면..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7)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 서울 시내에 홍수가 잦았으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가 하면 장마피해로 종각의 종이 토사로 한길 정도 묻힐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승정원일기》 등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한양성의 홍수피해에 대한 기록이 자주 보인다. 기호철, 배재훈 선생이 찾아 낸 당시 기록의 편린을 가지고 지도에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 그림에서 A, B, C, D는 우리가 기생충 샘플링을 해서 조선시대 지층에서 기생충란을 확인한 지역이다. 빨간색 선은 청계천과 그 지류이다. 노란색 화살표는 청계천 본류를 가리킨다. 보라색 부분은 성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사서에서 확인 가능한 지역들이다. 경복궁과 경희궁이 포함되어 있다. 기타 노란색 동그라미 부분은 사서..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6)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육조거리. 서울역사박물관 디오라마.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양편에 중앙 정부 관청들이 배치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조선왕국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이다. 광화문쪽에서 육조거리를 바라본 장면. 서울역사박물관 디오라마. 광화문 궁장아래에서도 기생충란이 나왔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파괴된 후 대원군때 다시 중건되기전 까지 기간 동안 퇴적된 기생충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기생충란은 발굴 현장 아무곳에서나 발견되지는 않는다.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짐작되는 지역, 행정치소 등의 유적에서 기생충란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생충란이 많이 보이는 곳에서도 아무 구역이나 파면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올 만한 곳에서 나온다. 아래 예를 보자. 이 ..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5)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도 썼듯이 조선시대 한성부 발굴 현장 지층에서 회충 편충알이 발견되는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사의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위 유럽 중세 대도시 풍경 그림을 보자. 창문 위에 여인이 거리로 오물을 쏟아 붓는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이와 아주 비슷한 상황이 우리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당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신영문 선생 요청으로 종묘광장-제생동천 발굴현장으로 출동한것이 2010년. 나가 보니 발굴은 잘 진행되어 우리가 기생충 샘플링만 하면 될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당시 현장 메모-. 이 발굴현장을 이해하기 위해 2009년 6월 18일..
서울 사대문 안 지하의 비밀 (4)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시대 한성부의 인구 밀도를 생각하면 당시 토양이 기생충란에 오염이 많이 되어 있는 상태는 당연한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토양이 기생충란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은 한성부에 살던 사람들이 그 기생충에 많이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기생충에 계속 반복적으로 감염되었을까? 조선시대 한성부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기생충 감염률이 높게 유지되는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현대 임상의학에서는 어떤 감염성 질환이 발생했을때 감염경로 및 감염원를 판단하기 위해 해당 환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이것을 역학조사 (epidemiological study) 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시대 한성부 토양..
서울 사대문 안 지하 4미터의 비밀 (3)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20세기 이전 사람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면 어딜까. 역시 행정 수도인 백제 사비성, 신라 경주 (월성 해자) 등을 들 수 있겠고, 행정치소 역할을 한 삼국시대 산성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역에 대해 고기생충학 검사를 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발굴 현장 옛 지층에서 당시 기생충란이 많이 발견되었다. 사실 그 당시 인구가 고도로 밀집된 지역에 살면 회충, 편충 등 기생충란이 토양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그 만큼 기생충 감염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기생충 감염에 대한 의학적 지식 수준이 낮고 예방법이나 치료법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그 시대에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