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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사전 59

국사대계(国史大系, 國史大系) 국사대계(国史大系, 國史大系)코쿠시타이케이こくしたいけい라 읽으며, 현행 외래어 표기는 고쿠시타이케이다. 일본역사 기본 문헌이라 해서 그것을 집성하고 교정해 간행한 총서다. 3차에 걸친 작업이 있었다. 제1차:국사대계国史大系・속국사대계続国史大系 명치明治 30년(1897) 이래 동 34년(1901)에 걸쳐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비롯한 17책이 경제잡지사経済雑誌社라는 데서 간행되고, 그 속편이 명치 35년(1902) 이후 동 37년(1904)에 속국사대계続国史大系로 15책이 간행되었다. 田口卯吉이 편집하고 흑판승미(黒板勝美, 쿠로이타 가쓰미)가 주로 교정에 참여했다. 국사대계国史大系1. 《일본서기日本書紀》2. 《속일본기続日本紀》3. 《일본후기日本後紀 속일본후기続日本後紀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徳天皇実録》4. 《.. 2020. 2. 16.
용경容庚 《진한금문록秦漢金文錄》 《진한금문록秦漢金文錄》 2011년 7월에 중화서국中華書局이 출판한 도서圖書로, 저자는 용경容庚이다. 진·한秦漢시대 금문金文을 대량으로 수록하고 주해注解했다. 용경容庚(1894~1983)은 원래 이름이 조경肇庚이라 하며 字를 희백希白이라 하며, 호를 송재頌齋라 했다. 광동廣東 동완東莞 사람으로 중국의 저명한 고문자 전문가이자 고고학자이며 서법전각가書法篆刻家이고 서화감정가로서 수장가收藏家다. 1925년에 북경대학연구소北京大學研究所 국학문國學門 연구생으로 졸업하고, 그 즈음에 북경대학과 연경대학燕京大學에서 가르치는 한편 《연경학보燕京學報》를 주편主編하고, 고고학사考古學社를 창립하고, 《고고학사사간考古學社社刊》을 편집주편했다. 1946년 남쪽으로 가서 광서대취廣西大翠와 영남대취교수嶺南大翠教授에 임명됐다. 195.. 2020. 1. 4.
닻돌 사용 모식도와 닻돌 부위별 명칭 당암 18-4닻돌碇石Anchor stone출수위치 N2W1(13구역) 3라인 2, 3칸길이 94.0cm 너비 14.6cm 두께 4.00~11.40cm 무게 21.12kg 소형 닻돌이다. 장단비는 6.43:1이며,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다. 석재石材는 자연석을 이용하였으며, 양측단의 정형성이 떨어진다. 종단면은 상하단을 비스듬하게 가공하여 사다리꼴에 가깝다. 상단에는 길이 5.2cm× 너비 1.0cm, 하단에는 길이 6.2cm× 너비 1.4cm 크기로 가공한 반원형 홈이 각각 1개씩 있다. 좌우측의 두께가 달라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홈의 위치는 중앙부에서 다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전체적으로 면이 거칠지만 편평하게 가공한 흔적이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 당암포해역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2.. 2019. 12. 24.
오다 쇼고(小田省吾·소전성오·おだ しょうご) 오다 쇼고(小田省吾·소전성오·おだ しょうご)1871. 5. 2~1953. 12. 12 일본의 역사학자. 주된 관심분야는 조선사다. 三重県 鳥羽市 출샌이다. 1887년, 신궁황학관神宮皇學館에 입학했다가 바로 퇴학하고 도쿄로 가서 국민영학회国民英学会와 동경엉어학교東京英語学校에서 배웠다. 1899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国大学 문과대학文科大学 사학과史学科를 졸업하고 長野県師範学校教師, 徳島県師範学校校長, 奈良県立畝傍中学校校長、第一高等学校教授를 역임했다. 1908년, 대한제국 정부에 초빙되어 교육제도개혁에 관여한다. 1916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고적조사과가 생기자 그 과장으로 부임한다. 1918년,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중추원中枢院 편찬과장編纂課長으로 조선사 편수編纂에 종사했다. 1923년, 조선사학회 朝鮮史学会.. 2019. 11. 22.
3·1운동 관련 이하는 서울역사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특별전 《서울과 평양의 3·1운동》(2019)에 의한다. 3.1운동 :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서울역사박물관 : the Seoul Museum of History 한국병합 : the Annexation of Korea 기념화보 : illustration commemorating ~ 황실화보皇室畵寶 : Pictorial of the Imperial Family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 the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동척10년사 : Ten Year History of the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교직원 : the Teaching Staff 심상소학교 : publ.. 2019. 3. 21.
中國新石器時代考古文化簡表(The Geneology of Chinese Neolithic Cultures) 中國 절강성浙江省 여항현余杭縣 양저유지박물관良渚遺址博物館에 붙은 중국 신석기시대 문화를 중국신석시대고고문화간표(中國新石器時代考古文化簡表 The Geneology of Chinese Neolithic Cultures)를 일목요연히 정리한 것이다. 한데 이 표는 나날이 달라지는 중이다. 혹자는 중국이 덮어놓고 연대만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리 보지는 않는다. 어느 유적, 어느 유물도 최초 최고라고 해서 딱지를 붙여 출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고학만큼 최초 최고가 자주 갱신되는 곳이 없다.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2012. 4. 14 내가 그 옛날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앙소문화랑 대문구문화, 용산문화만 있는 줄 알았다. 2018. 12. 20.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란? 중국 남조南朝 양대梁代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집한 중국 고대 시문 앤솔로지인 《문선(文選)》 권29에 수록한 작가 미상 19종 오언시五言詩를 지칭한다. 위진 이래 극성을 구가하는 오언시 기원이 된다 해서 그 문학적 의미가 대서특필된다. '古詩十九首'라 하지만 각 시에는 고유 제목이 없다. 《문선》과 거의 동시대에 편찬된 고대 연애시가집인 《옥대신영玉臺新詠》에는 19수 중 8수를 수록하면서 전한 무제 때 인물인 매승(枚乗) 작품이라 했지만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일반적으로는 후한 중기 이래 지식인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당시 민간 가요인 이른바 악부樂府를 기초로 해서 창작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노래를 염두에 둔 가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제목이 없으니 편의상 그 첫 구절을 따서 제목을 삼아 구별하는 일이.. 2018. 11. 18.
나카 미치요(나가통세. 那珂通世. なかみちよ) 嘉永 4년 1월 6일(1851년 2월 6일)~明治 41년(1908) 3월 2일. 明治時代 일본 역사학자이자 동양사(東洋史)라는 개념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창안한 인물이다.盛岡藩 번사(藩士)인 藤村盛德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이름이 荘次郎(莊次郞)이다. 번교(藩校)에서 성적이 뛰어나 14세에 藩校 교수이기도 한 漢學者 那珂悟楼의 청원으로 나카 가문[那珂家] 養子가 된다. 명치유신明治維新 뒤에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들어가 영학(英學)을 배웠다. 그후 사범학교 중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는가 하면, 뒤에는 치바사범학교(千葉師範學校)와 동경여자사범학교(東京女子師範學校) 교장으로도 일하면서 여성 교육에 진력했다. 그뒤 제일고등학교(第一高等學校)와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교수가 되고, 동경제국.. 2018. 3. 12.
월터 스핑크(Walter M. Spink) < 2005. 5. 23 서울대 강연에 나선 Walter M. Spink > 미국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미술사학과 명예교수로 1928년 생이다. 한국 미술사학계, 특히 불교미술사학계에 끼친 영향도 다대해 곳곳에 그를 직간접으로 사숙한 학도가 있다. 2008년 5월에는 그의 팔순에 즈음해 국내 미술사학도들이 그 헌정식을 겸해 그를 직접 초청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니, 취재를 위해 나는 현장에 있었다. 다음 내 기사가 바로 그 내용을 다루었다. 팔순 헌정 월터 스핑크 교수 "아잔타석굴 보존 위해 관람객 제한해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특정 연구자의 회갑이나 정년퇴직, 혹은 칠순이나 팔순 등을 기념하는 논문집 발간이나 학술행사는 서구 문화권.. 2018. 3. 12.
월광보살(月光菩薩) 梵名은 Candra-prabha. 월광보살에 관한 出處를 보면 그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이에 대해서는 3종류의 解釋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월광보살은 印度 古帝王으로 釋尊이 過去世에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의 前身이라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卷6, 《월광보살경(月光菩薩經)》, 《대보적경(大寶積經)》 卷80에 기재된 구절에 의하면 “此王具有大威德, 後施頭予勞度差婆羅門, 滿足檀波羅蜜行, 又稱月光菩薩”이라 한 것이 그 증거이다. 두 번째는 佛世 時에 中印度 舍衛國 波斯匿王의 異名이라는 것이다.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 卷上(大八·八二五中)에 이르기를 “舍衛國主波斯匿王, 名曰月光”이라 한 것이 그 증거다. 波斯匿은 梵名이 Prasenajit이며 팔리어 이름巴利名은 Pas.. 2018. 3. 11.
심덕잠(沈德潛. 沈德潜. 1673~1769) 淸代 文學家이자 시인. 字는 확사(確士), 號는 귀우(歸愚)이며 강소성(江蘇省) 장주현(長州縣)人이다. 일찍부터 詩로써 이름이 높았다. 과거에 거듭 실패하다 1739년 67세에 겨우 進士가 되었다가 뒤에 건륭제의 총애를 받고 예부시랑(禮部侍郞)까지 올랐으며 1747년 고령 때문에 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시작과 저술로 보냈다. 청대 초기에 왕사정(王士禎)이 시에 신운설(神韻說)을 제창한 데 맞서 소위 격조설(格調說)을 주창하니 이는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함이 詩敎”라는 도덕적인 문학관에 기반해 바른 골격 위에 음률의 조화를 중시하는 시 정신을 찾는다. 이를 위해 격조파는 성당(盛唐)으로 복고하자고 외쳤으며 明代 전칠자(前七子)라든가 후칠자(後七子), 淸代 심덕잠 일파가.. 2018. 3. 11.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平田篤胤>), 신도(神道), 적현태고전(赤縣太古傳) 2005.05.28 23:58:35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 1776.9.25~1843.10.4 : 안영(安永) 5~천보(天保) 14년 복고신도(復古神道)를 주창한 에도시대 말기 일본 사상가로, 천황의 신성(神性)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왕정복고를 주창하는 존왕파(尊王派)에게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그는 號를 이부키노야(氣吹舍) 혹은 마스게노야(眞菅乃屋)라 했다. 아버지는 出羽國 아키타(秋田) 번사(藩士)인 大和田淸兵衛 平田祚胤이다. 祿高 100석인 平田祚胤에게 그는 넷째 아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하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려서는 아사미 게이사이(?見絅?.1652~1712)의 학풍을 잇는 中山靑我에서 한적(漢籍)을 배우고 여기에서 國學을 닦음으로써 나중의 古道 硏究의 실마리를 열.. 2018. 3. 11.
쓰다 소우키치(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つだ そうきち) 1873.10.3~1961.12.4(明治 6~昭和 36) 일본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면 '쯔다 소우키치',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쓰다 소키치다. 歷史學者. 본명은 津田親文이다. 기후현岐阜縣 米田東?井의 士族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7년(明治 20) 國民新聞 창간호의 田口卯吉 논설 「國を建つるの他は幾何ぞ」에 깊은 감명을 받고는 나중에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敎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입학해 1891년(明治24)에 졸업한다. 澤柳政太郞에게 寄寓했다. 그 뒤 富山縣 本願寺 別院 部屬學敎 교수로 일하다가 상경해 시라토리 구라키치(백조고길白鳥庫吉) 후원을 받는다. 또 中等敎師를 군마현립중학群馬縣立中學 치바현립중학千葉縣立中學 宇都宮中學 치바중학교千葉中學校 교사, 독일협회중학교獨逸協會中學學校 교사 등으로 일한다. 교.. 2018. 3. 11.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도홍경(陶弘景)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현존하는 중국 가장 오래된 전문 본초학서다. 그 성립 연대는 이론이 분분하나 기원전 1세기 무렵 전한 말기가 아닐까 한다. 본초(本草)란 글자 그대로는 근간이 되는 풀이란 뜻이니, 예서 본초는 말할 것도 없이 약초를 말한다. 신농(神農)이라는 말이 들어간 까닭은 그 저자가 神農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니, 신령스런 농사꾼이라는 액면 글자가 시사하듯이, 신화상 인물인 그는 농업을 일으킨 시조로, 특히 병 치료에 맞는 약초를 찾아 이것저것 맛보느라, 독물에 중독도 되고 했다고 한다. 이런 神農이라는 신화상 인물에 그 저자를 가탁한 것이 신농본초경이다. 약초로서의 '본초(本草)'라는 말은 《한서· 평제기(漢書平帝紀)》에 가장 빠른 용례가 검출된다. 하지만 本草라는 말에 끌려 반드시 초본.. 2018. 3. 11.
무상비요(無上秘要) 운급칠첨(雲笈七籤) 정통도장(正統道藏) 도교의 3대 경전 결집이다. 정확히는 3대 경전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통 경전이라 하면 개개 경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3대 경전은 경전들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교에 빗대어 말한다면 대장경(大藏經)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첫째, 무상비요(無上秘要)이니, 이는 북주(北周)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 재위 561~578)이 통도관通道觀 학사學士에게 명해 편찬케 했다. 《구당서 경적지(舊唐書經籍志)》와 《신당서 예문지(新唐書藝文志)》 및 《송사 예문지(宋史藝文志)》에 의하면 72卷이 현존한다고 했다. 현존 《정통도장正統道藏》 태평부太平部 目錄에는 100권이다. 하지만 결실권이 있으니 1~2권, 10~14권, 36권, 58~64권의 총 31권이 그것이므로 실.. 2018. 3. 11.
《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 약칭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비된 전국 지방지리 총서로서 전 40권이다. 체례가 완비됐으며, 전국을 커버하니 100도(道) 47진(鎭)을 강(綱)으로 삼고, 부(府)·주(州)·현(縣)을 목(目)으로 삼았다. 각 지방 행정구역별로 그 연혁을 기술하되, 위로는 삼대(三代)로 소급하며, 아래로는 이 책이 편찬된 당대(唐代) 원화(元和) 연간에 이른다. 편찬 책임자는 이길보(李吉甫, 758~814)이니, 字를 홍헌(弘憲)이라 하며 조주(趙州) 찬황(贊皇) 사람이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이서균(李棲筠)의 아들인데, 음보(廕補, 음서)로 좌사어솔부창조참군(左司御率府倉曹參軍)이 되었다. 정원(貞元) 연간 초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고 관직이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 2018. 3. 9.
《괄지지(括地志)》 애초 전 550권이며 서략(序略) 5권이 더 있었다. 당초(唐初)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넷째 아들로 위왕(魏王)에 책봉된 이태(李泰)가 주편한 거질 지리서(地理書)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와 고야왕(顧野王)의 《여지지(與地志)》의 양대 先代 지리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지리서 체례를 열었다고 평가되며 여기에서 이룩한 지리서 편찬 전통은 후대의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와 《태평환우기(太平圜宇記)》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미 남송(南宋)대에 이르러 그 원전은 망실되어 버리고 그 잔편(殘篇)들만이 후대 다른 서적들에 산발적으로 인용되어 전할 뿐이다. 편찬 책임자 이태는 “好士愛文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아버지 태종 또한 그를 총애해 그에게 문학관(文學館)을 세우도록 허락했다. 이에 .. 2018. 3. 9.
《삼보황도(三輔黃圖)》 6권 원저자는 불상이며 성립 연대 또한 알 수 없으나 東漢 末 이전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三國시대 魏人인 여순(如淳)의 《한서주(漢書注)》에 이미 인용되기 때문이다.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니 이때는 一卷本 《三輔黃圖》이었다. 그 뒤 南宋 조공무(晁公武)의 《독서지(讀書志)》에서 이를 三卷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재(直齋書錄題解)》에서는 兩卷이라 했다. 《四庫全書總目》은 여수겸(勵守謙)이 收藏한 六卷本을 저록하면서 佳本으로 간주했다. 육권본은 漢代 三輔 지역의 古跡을 主로 삼으니 특히 長安을 가장 충실이 기술했다. 그 외에 秦漢 시대 三輔 지역의 風俗도 덧붙였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이에서 기록한 궁전과 원유의.. 2018. 3. 9.
《태평어람(太平御覽)》 太平御覽 一千卷 宋 李昉 等 編纂 http://www.guoxue.com/wenxian/leishu/0001.htm 北宋시대 전기에 국가에서 편찬한 ‘四大書’ 중의 하나이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이르기를 “宋李昉等奉敎撰. 以太平興國二年受詔, 至八年書成. 初名《太平類編》, 後改名爲《太平御覽》. 宋敏求《春明退朝錄》謂書成之後, 太宗日覽三卷, 一歲而讀周, 故賜是名也.”(송나라 이방 등이 교서를 받들어 편찬했다. 태평흥국 2년에 조칙을 받들어 8년에 책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태평류편이라 했다가 나중에 개명하여 태평어람이라 했다. 송민구는 춘명퇴조록에서 이르기를 책이 완성되 다음에 태종이 날마다 3권씩 보다가 1년만에 독파했으니, 이런 인연으로 이런 이름을 내렸다)라고 했다. 전체를 50개 門으로 나누었으며, .. 2018. 3. 9.
극락(極樂) 산스크리트 原語는 “樂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住하는 世界를 가리킨다.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국토(極樂國土)’라고도 한다. 漢譯 佛典에서는 ‘수마제’(須摩題) ‘수가마제’(須呵摩提) 등이라고 음사(音寫)하며, ‘안락(安樂)’‘안양(安養)’이라고 의역되기도 한다. 수도권 도시 안양은 그 이름이 바로 이에서 유래한다. 漢語인 ‘極樂’은 중국고전에서는 매승(枚乘)의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文選》39) 등지에 보이는데, 그 의미는 “더 이상 없는 즐거움”이다. 또 반고(班固)의 서경부(西都賦) 등지에도 보이는데 “즐거움을 다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至極의 樂”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전에서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아미타경(阿.. 2018. 3. 9.
왕흠약(王欽若) 왕흠약(王欽若. 962~1025)은 자(字)가 정국(定國)이며 북송(北宋) 신유(新喩) 출신이다. 신유는 지금의 新餘東門王家 자리다. 18세에 《평진부론(平晉賦論)》을 지어 문명을 떨쳤고, 북송 태종(太宗) 순화(淳化) 3년(992)에 실시된 순화 진사 갑과(淳化 進士 甲科)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다. 이후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거쳐 재상인 동평장사(同平章事)에까지 관직이 이르렀다. 경덕(景德) 원년(1004) 거란(契丹)이 내범(來犯)하자, 당시 북송 황제 진종(眞宗)은 적을 두려워하여 왕흠약과 진요수(陳堯수) 등의 大臣들이 내놓은 계책을 받아들여 남조(南逃)로 천도하려 했으나 당시 재상(宰相) 구준(寇準. 961~1023)이 힘써 중의(衆議. 여론)를 배척하여 진종에게 단주(.. 2018.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