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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서원지의 부정확성, 필암서원의 경우 송준길의 《동춘당집》 권16에는 〈장성(長城) 필암서원(筆巖書院)을 옮겨 세우는 고유문 -이 서원은 하서(河西) 김 선생(金先生)을 모셨다.-〉이 실려있다. 그 내용을 보면 "원우(院宇)의 지세(地勢)가 좋지 못하므로 오래전부터 옮겨 세우기를 논의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여름 장마에 크게 파손되었기에 상의한 결과 모두 동의하였으므로 추산(秋山) 아래에 있는 중등촌(重登村)으로 옮겨 세우고자 하여, 감히 그 사유를 고합니다" 라는 짤막한 내용이다. 이 기록과 기왕의 《필암서원지》 기록을 종합하면 기산리-증산-중등촌-현위치인 해타리(海村)로 옮긴 것을 알 수 있다. 첨부한 지도에서 보듯 중등촌은 지금의 중동 마을이다. 몇해 전 나는 심곡서원 역시 관련 기록을 통해 중창 연도 등이 잘못되.. 2023. 5. 23.
60년 동안 조수潮水만 연구했다는 조선시대 덕후 조구명趙龜命(1693~1737)이 쓴 〈병학대성서兵學大成序〉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 듣건대, 해서海西에 조학潮學(조수潮水에 대한 공부)을 일삼은 자가 있어서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며 해안에서 60년을 살다시피 하였는데, 그러고서 비로소 책 두 편을 저술하니 자기만의 견해가 확실하였다고 한다. 세상사람 모두가 괴상하다고 하고 쓸데없는 일에 정신만 사납다고 하였지만, 나는 홀로 탄식하고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다고 하였다. [余聞海西有為潮學者。朝而往暮而歸。盖六十年於海岸矣。然後始著書二編。明己見。世咸怪之。以爲弊精神於無用之地。而余獨歎息。謂非東國人也。] 이런 사람의 책은 어째서 안 남았을까? 兵學大成序 探原窮委之謂學。專心致志之謂工。超然自得之謂眞。用之不竭之謂成。甚矣。東國人之陋也。芒芒乎無所事而生。漂漂乎無所底.. 2023. 4. 18.
대사헌 송순도 겨우 비집고 들어간 향안鄕案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명종 조 고사본말 송순宋純(1493~1582)에 대한 다음의 기록은 음미할 것이 대단히 많다. 유향소, 향약 연구자에게도 난해한 야사의 이 기록은 정치사회사로 풀어야 답이 있다. ○ 지방 향안鄕案은 반드시 안팎이 사족士族인 자를 가려서 기록하는데, 외족이나 처족이 혹 딴 고을에서 와서 나타나지 않는 이는 비록 좋은 벼슬을 지낸 이라도 향안에 쓰지 못하니, 그 어려움이 홍문록弘文錄이나 이조천吏曹薦보다도 더 하였다. 공은 담양에 살고 그 외가는 남원인데, 현관顯官이 없으므로 향안엔 참여할 수 없었다. 공이 대사헌으로 휴가를 받아 성묘하러 시골에 갔다가 마침 고을 사람이 향청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곧 술과 안주를 많이 장만하여 향청으로 보내며 먼저 친한 사람을 시켜 향로鄕老들에게 말.. 2023. 4. 14.
고갑자표古甲子表 고갑자표古甲子表인데, 음을 달아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祝犁와 같은 것은 축리인지 축려인지 저도 아리송합니다. 확인하니 축려로 읽어야 옳을 듯합니다. 음가를 달고 축려 부분 보완하였습니다. [보완] ‘알봉閼逢’ ‘알봉閼蓬’은 《史記》의 ‘언봉焉逢’으로 보면 ‘연봉’으로 읽어야 옳을 듯하다는 김영문 선생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온당한 말씀으로 여깁니다. 다만, 현재 《표준대국어사전》 등에 ‘알봉’으로 올라있어서 대뜸 바꿀 수 없어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3. 4. 4.
중전마마께옵소? NO 전마마께옵서 권덕규權德奎,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 1923년에 재미난 내용이 많다. 그 가운데 궁중어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전마마께옵서가 아니라 전마마께옵서가 되는구만.... 2023. 4. 2.
구기동에 있었다는 통일신라 귀부 일제강점기 기록을 보면 이전 번역원이 있던 종로구 구기동에는 통일신라 때 귀부龜趺가 있다고 하였다. 1930년 2월 4일자 《조선일보》에 그 사진이 있다.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이번 종로구 신영동에서 발굴된 고려 건물터 바로 뒤 산등성이에 이 비가 있었다. 거리는 50미터쯤인 듯 *** 편집자주 *** 귀부 양식을 보면 통신보다는 고려 초 냄새가 난다.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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