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1671

양원정閬苑亭, 고려시대 동물원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현종 즉위년인 1009년 2월에 교방敎坊을 파하고, 궁녀 1백 여 인을 풀어주는 한편. 양원정閬苑亭을 허물고 진기한 길짐승·날짐승·어류[珍禽奇獸龜魚之類]를 산과 못에 놓아주었다고 했거니와, 이 양원정이라는 데가 동식물원과 수족관을 겸한 시설임을 안다. 저 양원정은 구체 양상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어, 그 명칭 풀이로 그 성격을 가늠할 수밖에 없으니, 위선 음을 【당운唐韻】에선 來와 宕의 반절, 【집운集韻】과 【운회韻會】, 【정운正韻】에서는 郞와 宕의 반절로 음은 량浪이라 했으니, 소리는 량임을 본다. 그 의미에 대해 【설문說文】은 門高也라 했으니 솟을대문임을 알겠지만, 그 솟은 데는 광활한 빈 공간이라 그런 까닭에 다른 의미로 空虛也라 했다. 【관자管子·도지편度地篇】에 .. 2024. 2. 10.
강민첨, 활쏘기 말타기도 못한 서생 출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은 진주晉州 강씨라, 강감찬과 본관이 같고 무엇보다 활동연대도 겹친다. 또 같은 서생 출신으로 이른바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이끈 전쟁 영웅이다. 강민첨은 전쟁 영웅인 까닭에 고려사와 절요에는 죽은 시점이 명확히 보이니 1021년, 현종 11년 11월 12일 계미癸未가 그때라 이르기를 “지중추사知中樞事이면서 병부상서兵部尙書인 강민첨姜民瞻이 졸卒했다”고 해서 현직 상태에서 죽었음을 본다. 각종 사전에는 그가 광종 14년, 963년 진주에서 원윤 벼슬을 지낸 아버지 강보능姜甫能과 거창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근거가 아마 진주강씨 족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그가 목종(재위 997~1009) 시대에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을 .. 2024. 2. 9.
[제3차 고려 막부정권] (7) 달래야 하는 군인들 막부를 타도한 현종은 1015년 4월 서경에서 개경으로 귀환한다. 시급한 과제는 막부 이전으로 사회를 돌리는 일이었다. 같은해 7월, 막부 최고기구인 금오대金吾臺를 혁파하고는 사헌대司憲臺를 두었다. 이 사헌대는 조선시대 사헌부랑 거의 역할이 같을 것으로 본다면, 간쟁을 담당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사찰에 가까운 기구였다. 그렇지만 드러난 불만을 막부를 타도했다 해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달 도병마사都兵馬使 제안에 대한 응답 형식을 빌려 장군 정신용鄭神勇과 임영함林英含, 그리고 그 수하 병사 1만2천500여 명이 모두 변경에서 공적이 있다 해서 그 자급資級을 하나씩 올려 포상했으니,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간 일이었겠는가?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하며 이런 식으로 막부를 타도한 보.. 2024. 2. 9.
거란지패, 미유여차지심[契丹之敗, 未有如此之甚] 거란∨지패 / 미유 ∨ 여차 ∨ 지심 정도로 읽어주면 되겠다. 이건 하도 인구에 회자하는 명문이라, 이 정도는 기냥 저 한문으로 외워두면 와! 똑똑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니, 독자들은 참고해주셨으면 싶다. 뜻 풀이도 쉬워서, 거란의 패배가 이토록 심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뜻이다. 고려사 권94 열전 권 제7 제신諸臣 강감찬 전에 보이는 한 구절이라, 이른바 귀주대첩 승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 장면을 작금 방영 중인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어떤 식으로 묘사할지는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내가 몰아보기는 하는 방식으로 시청 중인데, 그 첫 회분 첫 장면을 보고서는 와 우리 공중파 역사드라마도 이젠 이렇게 전투장면을 연출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고 찬탄했으니, 그런 식으로 묘사되지 않을까 한다. 제3차.. 2024. 2. 9.
[제3차 고려 막부정권] (6) 서경 행차 빙자해 막부를 타도한 현종 1014년 11월 1일 출범한 김훈 막부정권은 존속기간이 아주 짧아 불과 4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그 사이 민심은 흉흉해져 쿠데타가 발발한 11월에는 난데없이 수도 개경에서 승려들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헛소문이 돌아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는가 하면, 이듬해 1월에는 압록강을 끼고 다리를 건설하고는 그 동·서쪽에 성을 쌓을 거란을 징벌하고자 군대를 보내 시설을 파괴하고 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런 거란이 1월 22일 계묘에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자 고려에서는 장군將軍 고적여高積餘와 조익趙弋이 맞서 물리치기도 했지만 거란의 공세는 계속되어 통주通州를 공격한 일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3월이 되자 현종은 서경 행차를 단행한다. 이것이 거란과 계속 부닥치는 서북면 일대 민심 안정화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이는 명분.. 2024. 2. 9.
[제3차 고려 막부정권] (5) 금오대와 도정서, 김훈 막부의 양대 기구 그랬다. 이번 쿠데타 주역들은 순진했고, 쿠데타 성공 이틀 만에 막부를 만든 것으로 보아 나름 성공 이후 그림까지는 어느 정도 그린 듯하지만, 여러 모로 미숙했다. 왕도 그대로 두었고, 문관들도 평소 밉보인 두 놈만 골라서 흠씬 패고는 유배보내는 것으로 땡쳤다. 그네들이 이렇게 난을 일으키게 된 빌미를 고려사 찬자들은 영업전永業田이라 해서 군인들한테 배분된 권리를 뺏어다가 문관들한테 나눠준 데 있다 했지만, 그것이 직접 도화선이 되기는 했겠지만, 불만은 훨씬 더 원초적이었다. 고려는 건국 이래 문관이 특히 비상시에는 무관, 개중에서도 총사령관을 겸했으니, 이런 일이 어찌 군인들이 불만이 없겠는가? 그래서 김훈金訓과 최질崔質은 정권을 잡자마자 이를 거꾸로 쳐서 상참常參 이상 무관武官은 모두 문관文官을 겸하.. 2024. 2. 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