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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7편 귀두 내밀고 지상에 강림한 김수로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4월06일 12시30분이다. 


 1. 동아시아의 카니발 계욕일 


 애초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지금껏 이 독사일기는 고려 시대 도굴 이야기로 채웠다.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더러 남았지만, 다른 곳에도 눈길을 돌려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한국 고대문화에 나타나는 섹스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김수로왕릉김수로왕릉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서는 ‘가락국기(駕洛國記)’라는 제하 기사를 통해 김수로에 의한 가야 건국 사정을 정리했으니, 이에 의하면 이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시대에 해당하는 대강(大康)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를 지낸 사람의 문인이 쓴 원본을 간추린 이야기라 한다. 이때 ‘가락국기’란 그 문인이 쓴 책 이름이면서, 그것을 빌린 말 그대로 가락국 이야기라는 뜻도 아울러 내포한다. 


 금관은 지금의 김해이니 이곳에서 바로 가야 제국(諸國)의 터줏대감이라 할 만한 금관가야가 태동했다. 이것이 정리한 가야 건국신화를 보면 김수로 탄강 이전 금관 땅에는 천지가 개벽한 이래 나라도 없고 임금도 없이 다만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 이하 아홉 간(干)이 1만 호, 주민 7만5천명을 이끌고 산이나 들판에서 흩어져 살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AD 42) 3월 계욕일(禊浴日)에 이들 구간이 살던 마을 북쪽 구지(龜旨)라는 산봉우리에 수로가 천상에서 ‘자주색 동아줄(紫繩)’을 타고는 지상으로 탄강하니, 가야는 이렇게 해서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계욕일이란 글자 그대로는 재앙을 물리치고 몸을 강물에 씻어 깨끗이 하는 날이라는 뜻이니 이것이 나중에는 3월 3일, 삼짇날로 고정되었다. 글자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범주화하는 부수자로 ‘示’가 들어가는 글자는 거의 예외 없이 제사, 혹은 재계(齋戒)와 관련 있으니, 하기야 이 글자 자체가 이미 갑골문 단계에서 하늘의 계시를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것을 부수로 넣은 ‘계(禊)’라는 글자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보면 《광운(廣韻)》이나 《집운(集韻)》, 그리고 《정음(正韻)》과 같은 발음을 중시하는 자서(字書)를 끌어다가 풀기를 “음은 호(胡)와 계(計)의 반절이며 계(係)와 같이 발음한다”고 하면서, 그 합성어로써 ‘불계(祓禊)’라는 단어를 끌어대어서는 “삿된 일을 제거하는 제사의 명칭이다(除惡祭名)”라고 푼다. ‘불(祓)’ 역시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까닭에 두 단어는 늘 붙어 다니곤 한다. 


 ‘욕(浴)’이라는 글자를 보면 요즘은 대뜸 대중목욕탕을 떠올리겠지만, 물로써 몸을 씻는 행위 역시 사악한 기운을 떨어내고 복을 불러오는 신성한 제사의 일종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통시대에는 목욕이 요즘처럼 흔한 일상 행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강가에 가서 액땜을 하는 의식을 봄이 극성의 기운을 뽐내면서 여름을 앞둔 음력 3월에 하는 까닭은 아무래도 날씨를 고려한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개중에서 계욕은 원래는 그 달 중에서도 상사(上巳)라 해서 첫 뱀날에 치렀다. 그런 까닭에 상사는 원사(元巳)라고도 했으니, 이 경우 ‘원(元)’은 시작 혹은 비롯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the first’에 해당한다. 


 3월의 첫 뱀날은 음력인 까닭에 해마다 날짜가 바뀌기 마련이라, 나중에는 3이라는 양수가 두 개 겹치는 삼짇날로 고정하게 된다. 후한시대 최고의 문학가라 할 만한 장형(張衡, 서기78~139)은 당시 한나라 서울 중 한 곳으로 낙양 남쪽에 있는 남양(南陽)의 풍물을 장쾌하게 노래한 남도부(南都賦)에서 “늦은 봄 액땜을 원사(元巳)에 하노니, 수레 줄지어 몰아서는 양지 바른 물가에서 액풀이 하네”라고 했으니, 이 무렵에 이미 이런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형보다 대략 반세기 뒤에 활약하는 경학가 정현(鄭玄, 127~200)은 《주례(周禮)》를 해설하는 와중에 그 춘관종백(春官宗伯)에 보이는 ‘여무(女巫)’, 곧 여성 무당은 “세시에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향수를 뿌려 목욕재계하는 일을 관장한다”는 구절을 해설하기를 “세시에 삿된 기운을 물리치니 오늘날 3월 상사일에 물가에서 행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라고 했다. 나아가 서진시대 역사가 사마표(司馬彪, ?~306)는 반고의 《한서(漢書)》를 계승했다 해서 그 이름을 《속한서(續漢書)》라고 한 역사책 중 예의지(禮儀志)에서 이르기를 “3월 상사에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액풀이 행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고 했다. 이 예의지는 나중에 범엽의 《후한서(後漢書)》와 합철(合綴)되어 살아남는다. 이로써 후한시대까지만 해도 삼짇날로 고정된 것은 아니요, 삼월 중에서 첫 뱀날에 이런 의식을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상사일 행사가 삼짇날로 등장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 문헌으로는 《남악기(南嶽記)》를 들 수 있거니와, 원전은 망실되어 버리고 후대 다른 문헌, 예컨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3월조에 인용된 구절을 보건대 물이 바위를 감돌아 흐르는 남악, 곧 형산(衡山) 서쪽에 있는 곡수단(曲水壇)이라는 곳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3월 3일 유유자적 노니는 곳으로 삼았다”고 했다. 문제의 《남악기》는 저자가 서령기(徐靈期. ?~474)라는 사람으로 간주되며, 이것이 완성된 때로는 진(晉)나라 태강(太康) 9년(287)이라는 말도 있지만, 따르기가 심히 곤란하다. 그것은 서령기가 남조 유송(劉宋)시대 때 도사로써 역대 저명한 도사 열전인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鑒)》(권33)에 의하면 남악에서 수도하고 《형산기(衡山記)》를 썼다고 하니, 이 《형산기》가 바로 《남악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들일 때 삼월 상사일 재계 행사는 아마도 남북조시대 무렵에는 삼짇날로 이동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 “번작이끽야” 


 하고 많은 날 중에 김수로가 유독 이날을 빌려 탄강했다고 하는 까닭은 그 효과의 적극성을 선전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로가 내려온 구지에 대해 《삼국유사》 찬자인지, 혹은 그 원본격인 《가락국기》 저자가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는 산봉우리 이름인데 마치 10마리 거북이 엎드린 모습과 같다 해서 이렇게 불렀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구지봉석 석각구지봉석 석각


 이 구지봉은 지금도 김해에 있고, 그 정상에 ‘龜旨峰石(구지봉석)’이라는 글자를 새긴 편평 넓적한 큰 돌이 있으며 그 기슭에는 수로왕비 허황옥의 무덤이 있다. 구지봉석은 생김으로 보아, 그리고 그 아래 굄돌 상태로 보아 고인돌인 듯한데, 혹시 발굴조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김수로는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의 탄강 순간을 《가락국기》는 다음과 같이 자못 장엄하게 묘사한다. 


200~3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이자 사람 소리가 들리니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 사람이 있는가?” 하는 소리만 났다. 구간이 말하기를 “우리가 있습니다”고 하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라고 대답해서 구간이 답하기를 “구지입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말하기를 “황천(皇天)께서 나에게 명하시어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려왔느니라. 너희는 모름지기 산봉우리 위에서 흙을 파면서 노래하기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라고 하면서 춤을 추거라. 그렇게 하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되어 기뻐 춤을 추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서 보이는 노래가 바로 ‘구지가(龜旨歌)’라는 이름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한다. 그 원문을 보면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이니, 이는 애초에 순전한 한시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현지 말로 노래한 가사를 한문으로 번역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구하구하(龜何龜何)”의 ‘何’가 우리말 호격 조사에 해당하거니와, 그 본래의 한자에는 그런 뜻이 전연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제목이 없는 이 노래에다가 ‘구지가’라는 명칭을 누가 부여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두 번째 구절 “수기현야(首其現也)”는 머리를 밀어 내라는 뜻이다. 엄격히는 “머리야 나오느라” 정도로 푸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서 머리를 내지 않으면 불에다가 바짝 구워서 먹겠다고 했으니, 이는 신에 대한 겁박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라 했으니, 이런 의식이 카니발임을 우리는 직감한다. 




 3. 땅에 판 구덩이 


 탄강 신화에 의하면 수로가 출발한 곳은 황천(皇天)이라는 말로 미루어 천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데 나는 이에서 교접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  동물 중에서 거북이나 그 사촌에 해당하는 자라 종류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냈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거니와, 그 머리를 저 구지가에서는 ‘구수(龜首)’라 표현했다. ‘首’는 머리니, 다른 말로 ‘頭(두)’라고도 한다. 후한시대 허신(許愼) 필생의 역작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돌려막기 해설이 보이거니와, ‘首’와 ‘頭’ 역시 이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이 《설문》에서는 ‘首’라는 글자를 “頭也”라고 하면서, 막상 ‘頭’라는 표제어를 보면 이에서는 “首也”라고 했으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어째 놀림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를 통해 首는 곧 頭요, 頭는 곧 首임을 알 수 있으니, 구지가에 등장하는 주요한 소재인 ‘귀수(龜首)’는 곧 ‘귀두(龜頭)’임을 싱겁게 파악한다. 


 다 알 만한 이 이야기를 새삼 강조하는 까닭은 ‘귀두’는 곧 남성의 성기, 특히 그 머리 부분을 지칭하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저 노래를 성기(性器)로 치환할 때, 우리는 이 노래가 어떤 동작을 형상화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 저 노래는 거북이 대가리를 빌려 남자의 성기가 발기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북이나 그 사촌인 자라는 대가리를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니, 그것이 흡사 남자의 성기가 발기와 축소를 되풀이하는 과정과 닮았다. 


 나아가 그것은 곧 남자 성기의 삽입, 곧 피스톤 운동을 말한다. 삽입에는 그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 대상은 당연히 움푹 파인 구멍이어야 한다. 한데 신통방통하게도 저 건국 신화에는 그 대상 역시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이런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김수로는 구간들에게 “산꼭대기 흙을 파내기(掘峯頂撮土)”를 요구한다. 흙을 파내면 무엇이 생기는가? 구멍 혹은 구덩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구덩이를 나는 김수로가 지상에 강림하는 통로라고 본다. 움푹 팬 구덩이. 그렇다, 그 구덩이는 여성의 성기 혹은 자궁에 다름 아니다. 


 수로의 강림은 천상에서 지상으로의 강림이며, 그 강림은 새로운 왕국의 탄생을 알린다. 그것이 왕국이건 무엇이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음과 양의 결합, 곧 섹스에서 말미암기 마련이다. 가락국의 건국, 혹은 탄생 역시 그런 섹스의 상징을 빌려 저리 신화 형태로 정착된 것이라고 나는 본다. 어떻든 저런 김수로의 주문에 따라 구간들은 “모두가 흔연히 기분에 취해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咸忻而歌舞)”고 했으니, 이에서 보이는 ‘忻(흔)’이라는 말은 오르가즘에 해당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내가 말하는 바가 또 다시 적실(適實)하게 맞아떨어지게 된다. 



 다음에는 그 실물로써, 그리로 그 예화로써 내 이야기를 전개, 혹은 증명하려 한다. 



김태식

김태식(문화유산 전문언론인)


■ 약력 ■

-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 1993. 1. 1.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입사

- 1998. 12. 1. ~ 2015. 6. 30.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 2012. 4. 28. 학술문화운동단체 ‘문헌과문물’ 창립

-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등 문화재와 한국사 관련 논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