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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미라와 북극 (10)

by 초야잠필 2019.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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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비극은 대장인 프랭클린의 죽음에 대한 디테일, 탐험선인 Terror와 Erebus에서 탈주한 선원의 운명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이들이 어떤 이유로 조난했고 마지막 행적은 어떠했는지 1세기에 걸친 집요한 추적으로 이제는 거의 밝혀진 상태이다. 


그리고 프랭클린 원정대는 남극 대륙원정 중 쓰러진 스콧 원정대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탐험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다. 


프랭클린 동상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집요하게 찾던 북서항로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북서항로를 마침내 돌파한 사람은 저 유명한 노르웨이의 아문젠이었다. 그는 남극 정복 이전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 반열에 올라 있었는데 그의 북서항로 최초 돌파가 그 중요한 이유중 하나였다. 


탐험가로서 아문젠의 뛰어난 점은 상황에 맞게 원정대의 구성을 자유자재로 변형하여 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극 원정때도 그는 영국의 스콧과는 전혀 다른 구성의 원정대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탐사를 마무리 지었는데 이러한 발상의 자유로움이 그와 원정대원을 죽음으로부터 구했다. 


8월 여름의 북서항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얼음이 언 부분이다 지도도 없이 북서항로를 돌파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잘 알수 있다. 미로찾기나 다름없고 실패는 죽음이었다. 


아문젠의 북서항로 개척은 프랭클린 원정대 실패 이후 무려 반세기가 더 지난 1903년 시도되었다. 이전의 탐험과는 달리 아문젠은 전혀 다른 전략을 택했는데.... 그 전의 원정대들은 모두 대규모원정대, 거대한 배, 그리고 막대한 보급의 방법을 택했다. 반면에 아문젠 원정대는 몇 안되는 소수의 대원, 작은 배, 그리고 보급은.....?


아문젠 원정대가 북서항로 개척을 위해 무려 3년을 북극바다에 떠 있었는데 이들은 북극에서 살아 남기 위해 보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월동기에는 과감히 배를 정박시켜 두고 북극권의 원주민-이누이트들과 어울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들은 이누이트 마을에서 살고, 그들과 함께 사냥하면서 주변의 정보를 획득하고, 이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바다가 녹으면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출항한지 3년만인 1906년 북서항로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돌파하였다. 



그리고 이때 아문젠은 이누이트들과 어울리면서 극지 식량 (페미캉), 개를 교통수단으로 쓰는 방법 등등 극한 조건에서 살아 남는데 필요한 중요한 서바이벌 테크닉을 익혔는데 이 기법이 이후에 남극 원정때 그대로 사용되어 남극점을 인류 최초로 정복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아문젠은 아마도 인류역사상 가장 창의적이고 뛰어난 탐험가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문젠이 서북항로 개척당시 익숙해진 페미컨 (Pemmican). 고기와 지방을 함께 굳혀 고열량을 내며 영양소가 풍부하다. 영국식 식사를 고집했던 스콧과 달리 극지 음식을 과감히 채용한 아문젠 덕에 남극 원정에서 아문젠 원정대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 필자도 아직 시식해 보지는 못했는데 사람 먹을 물건은 못된다는 주장을 들어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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