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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미라와 북극 (2)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루기로 한 내용과 같은 주제가 이번 달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집기사가 되어 버렸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magazine/


그것도 NGM은 대개 특집기사라고 해도 8~10페이지 정도 분량이 대부분인데 이번 호에는 무려 북극을 샅샅이 뒤집어 놓았다. 현재 상황에서부터 역사적 기원까지.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이번달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를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란다. 필자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명불허전이라고 NGM 역량을 잘 볼 수 있는 특집기사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영 김도 새고 다른 학술원고 투고할 마감일도 많이 임박해 있고, 게다가 눈치를 보니 쥔장님 아일랜드 발 기사가 쏟아지는지라 어차피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원고를 올리지 않았다. 


황당한 기분을 뒤로하고 지금부터 예정대로 주 1회씩 연재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북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서항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우리에게는 북서항로 (northwest passage)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대항해시대 말미를 장식하는 이 항로의 탐색은 인류역사에서 몇 안되는 처절한 탐험의 기록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 우선 좀 써볼까 한다. 


북서항로혹은 북동항로 (northeast passage; 요즘은 northern sea route라고도 한다)는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을 기준으로 설명한 것이다. 


대항해 시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나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는 모두 스페인이나 포루투갈 두 나라를 기점으로 하는데 반해 북서항로, 북동항로는 영국이 주도가 되어 개척한 (개척하고자 한) 항로다. 


이유는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동기와 같다. 


한마디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가고 싶은데 너무 먼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부르지 않지만 과거 동아시아를 호칭한 명칭 중 극동지역의 경우 그 이름 (far east)이 말해주듯이 유럽에서 볼 때 머나먼 동쪽 끝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한국이 대항해시대 내내 서구인에 의해 쉽게 파악 (!) 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미지로 남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극동지역이 유럽인 발길이 닿기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때문에 우리는 1910년까지 식민지화 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대항해 시대 당시의 정황은 이 사진 한장이 모두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각항로에 붙어 있는 번호가 빠를수록 그 항해 개설이 이른 시기에 된 것이다. 


이 사진은 대항해 시대 항로 개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지도이다. 대개 우리는 이런 류의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아래 지도와 같은 사진을 많이 보기 때문에 서양의 대항해시대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데 좀 둔감하다. 



하지만 위의 사진 처럼 북극을 위에 놓고 지구본 모양으로 대항해시대를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보인다. 


우선 대항해시대, 동양으로의 접근은 처음에는 아프리카 서안을 따라 내려가 인도양으로 접근하는 항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항로가 포루투갈에 독점되면서 스페인은 인도를 서쪽으로 돌아가겠다는 엄청난 발상을 지원한다. 그리고 찾아 낸 것이 잘 알려진 아메리카 대륙. 


그 이후 수백년 동안 수많은 항로가 개설되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 바로 극동지역이었다. 극동지역으로만 쉽게 접근 가능하다면 뭔가 떼돈을 벌 거 같은데 기존 항로로 가서는 너무나 멀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극동 far east라는 이름에는 만화영화 쉬렉에서 나오는 "far far away 왕국"만큼이나 멀고 먼 나라라는 어감이 숨어 있는 것이다. 


쉬렉의 "The Kingdom of Far Away"- 영어에서 말하는 극동(far east)와 같은 어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위 지도의 22번 부터 29번까지를 확대해서 한번 보자. 



이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22번에서 29번까지 항로 개척은 영국에서 볼 때 서쪽으로 나아가다가 물러서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서쪽으로 가는 항로이니 "서"라는 이름이 붙고 영국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북극해로 들어가니 "북"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다. 북서항로와 북동항로라는 이름이 그래서 생겨났다. 


이 항로 개념은 간단하다. 


극동으로 나가는 가장 빠른 방법, 가장 빠른 항로가 북극해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유효한 유럽에서 극동으로의 길. 이 경우는 북동항로에 해당한다. 북동항로를 타게 되면 동아시아지역까지 거리가 절반 가까이 단축된다. 수에즈 운하를 타고 돌았는데도 그럴 정도이니 희망봉을 돌아야 했던 시대라면 더더욱 그 차이는 엄청났을 것이다. 



지구본을 보면 그럴 것 같다. 만약 북극해를 통해서 극동으로 빠져 나갈수만 있다면-. 그 경제적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극동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값비싼 극동의 물품을 수입해 올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상에 빠진 영국은 대항해 시대 최후의 시기, 전설적인 북서항로의 개척에 돌입하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