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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미라와 북극 (3)

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그런데 문제는 이 북서 (북동)항로 개척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왜 그런가. 




첫번째는 비어있는 듯 보이는 북극해는 실상이 달랐다. 단순히 극한의 추위와 싸우는 것이라면 좋겠는데 북극해에는 녹지 않는 만년빙이 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이 만년빙은 거대해 그린란드 북쪽까지 걸쳐 있고 캐나다 북쪽 여러 섬도 이 속에 같혔음을 본다.  


더 큰 문제는 이 만년빙이 고정되지 않고 겨울에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만년빙은 배가 다닐 길을 점점 좁게 만들어 버린다. 


겨울의 북극해 얼음. 여름과는 달리 엄청나게 그 면적이 넓어진다. 


다음 문제는-. 


북서항로 (혹은 북동항로) 지역에 대한 지리적 지식의 부재였다. 

가 본 적이 없으니 지리적 정보가 있을 리 없다. 


아래 지도는 1772년 당시 캐나다 북부 지역 지리적 정보를 담았다. 





이 지도에서 보듯 캐나다 북쪽 해안선은 당시까지도 지리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서쪽에 뭐가 있는지 영국 항해가들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항로 개척의 어려움을 하나 더 들자면,


캐나다 북쪽의 지리가 극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섬이  흩어져 있고 때로는 막다른 골목-. 막장이 많다. 



이처럼 영국에서 북서항로로 연결되는 지역은 해안선이 극히 복잡하므로 겨울에 얼음이 얼어 점점 배가 남쪽으로 밀려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되면 남쪽으로 나 있는 좁은 막장 지역으로 몰려 얼음에 갇히고 결국 그 배는 난파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고는 전무한 극한의 지역에서 배가 얼음에 갇혀 난파하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이런 우울한 소식은 아래와 같은 그림까지 화가가 남길 정도로 유럽 전역을 전율에 떨게 했다. 



1823년 북극 탐험을 갔다가 난파한 탐험선의 종말을 그린 그림이다. 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The Sea of Ice" 그림 오른쪽에 난파한 배가 보인다. 


물론 영국은 북서-북동항로 개척을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북서항로만 선택지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쪽 해안선을 따라가는 북동항로도 선택지에 있었다. 


캐나다 쪽을 거쳐가는 북서항로와 러시아쪽을 거쳐가는 북동항로. 


그런데 북동항로는 곧 영국의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1600년대 이후 러시아가 빠른 속도로 시베리아를 점유하며 동진하여 영국이 이 항로를 따라 가기 극히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러시아의 팽창.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빠른 동진은 영국으로 하여금 북동항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만들었다. 


영국에는 선택지라고는 북서항로 하나만 남게 되었다. 영국의 탐험가들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 항로 개척을 위해 불나방 처럼 뛰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