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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비곗덩어리, 위선에의 가차없는 폭로

Taeshik Kim

July 19, 2015 at 10:08 AM · 


보불전쟁 패배의 와중에 프로이센의 진주를 피해 일군의 프랑스인이 탈출을 감행한다. 마차 한 대를 빌린 일행은 모두 열명..백작 부부도 있고 수녀 두 명도 있고 보나파르트파도 있고 공화파도 있고 또 비곗덩어리라 일컫는 창녀도 있다. 


열시간이 넘는 도망길에 허기진 이들은 비곗덩어리가 준비한 치킨이며 하는 음식을 처음에는 창녀의 음식이라 해서 머뭇대다간 순식간에 쳐먹어버린다. 고마워서인지 창녀를 부인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 도시에서 탈출길이 막힌다. 프로이센 장교가 못 보낸다 막아선다. 곡절 끝에 알아낸 이유인즉슨, 비곗덩어리가 하룻밤 자기랑 자 주면 보내주겠단 것이다. 하지만 자칭 보나파르파인 비곗덩어리는 수청 요구를 거부한다. 




꼼짝없이 갇히게 된 일행은 그때까지의 증오의 대상을 프로이센에서 비곗덩이로 옮긴다. 이런 불행을 초래한 이는 프로이센이라는 저주가 비곗덩이로 옮겨간 것이다.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늙은 수녀가 말한다. 나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머니 아버지도 죽인다. 동기가 옳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압박에 시달린 비곗덩이, 이제는 아가씨로 격하된 그는 마침내 하룻밤을 독일장교와 보낸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모두가 먹을거릴 준비해 어거적어거적 씹어대는 그 좁은 마차에서 어느 누구도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암것도 준비못한 비곗덩이한테 음식을 나눠주는 이 없었다. 모두가 프로이센 놈이랑 잔 창녀라고, 불결하대서 옆자리에 앉는 일도 피했다. 


이런 사태 전개에 시종 침묵을 지키다 막판에야 이런 일은 옳지 않다고 열변을 토하는 혁명파는 느닷없이 마차 안에서 라 마르세즈를 불러댄다.


비곗덩이가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은 그의 가슴팍으로 소리없이 떨어졌다.


좇또.. 




**** 


이 〈비곗덩어리〉 작가는 널리 알려졌듯이 기 드 모파상이라는 19세기 후반 불란서 소설가다. 풀네임은 앙리 르네 알베르 기 드 모파상 Henri René Albert Guy de Maupassant.  〈비곗덩어리〉 프랑스어 원제는 "Boule de Suif", 불란서 말을 모르는 내가 들으니 '불 드 스위프' 정도로 발음하는 듯하거니와, 그 영어 번역에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Dumpling" "Butterball" "Ball of Fat", "Ball of Lard" 따위가 그것이다. 


Boule이 영어 ball과 어원을 같이하니, 둥그렇게 생긴 물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거니와, 예서 관건은 Suif 


이 단어를 Graisse des ruminants qu'on enlève des morceaux de boucherie라 푸는 불불佛佛 사전을 봤는데, 그 영어에 대응하는 말 tallow도 그렇고, 기름 중에서도 주로 동물성 기름을 말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Boule de Suif는 기름이 엉켜 생성한 둥근 덩어리를 말한다. 


영어 번역 Ball of Fat는 저에 대한 직역에 가까운 느낌을 주며, Butterball은 조금 윤색한 듯하다. Ball of Lard의 lard는 대체로 돼지기름으로 형성한 하얀 기름을 말한다. 이에서는 돼지라는 느낌이 준다. Dumpling은 새알심 혹은 경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어떤 번역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 이리 따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한테 익숙한 '비곗덩어리'는 일본어 중역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脂肪の塊」라 옮기고, 시보우노카타마리(しぼうのかたまり)라 읽거니와, 이런 제목으로 가장 이른 시기 역본은 일본어판 위피피디아에 의하면 「脂肪の塊」 広津和郎訳、新潮社 1938年 全国書誌番号 : 47034880이 가장 일찍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혹 이 역본이 가장 빠른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신은 없다. 지방脂肪이 말할 것도 없이 기름이니, 저 말은 기름 덩어리다. 


한데 저 지방이라는 말을 누가 처음 '비계'라는 대응어를 생각했는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 천재다. boule은 여러 대응어가 가능한데 굳이 덩어리라 옮긴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일본어 옮김 塊를 염두에 둔 말이다. 


중국에서는 이 작품을 조금은 생뚱 맞게도 양지구羊脂球라고 옮기거니와, 글자 그대로 풀면 양기름으로 만든 공이라는 뜻이다. 하필 동물성 기름 중에서도 양을 골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혹 羊脂가 돼지 기름인가?


참고로 기 드 모파상은 중국에서는 거이 덕 막백상 居伊 德 莫泊桑이라고 표기한다. 가장 이른 시기 중국어 역본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내 수중에 정보가 없다. 莫泊桑...이 역시 현대 한국어로 읽어도 외래어라는 느낌 팍팍 준다. 


내친 김에 번역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