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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세책, 그것도 연구대상이냐?"는 비야냥을 뚫은 선구자 나손 김동욱

유춘동 선문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나손 김동욱



나손(羅孫) 김동욱(金東旭, 1922∼1990). 현재 이 분은 국문학 고소설 연구자로서, 1세대 연구자로 학계에서는 분류한다. 현대인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이 분이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문학계, 특히 고소설 연구자들에게는 현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참고로 나손이라는 호, 스스로 붙이신 것이고, 당신 스스로 '경주김씨'의 당당한 후예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나손을 연재 시작점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세책본(貰冊本), 혹은 방각본(坊刻本) 연구가 그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기리기 위함이다.  


1970년대 나손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방각본 소설에 연구 초석을 놓았다. 방각본이란 나무로 만든 인쇄틀인 목판에다가 대량으로 찍어 만든 책이다.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대량으로 찍어냈다. 그는 1960-70년대 서울 지역을 답사하며 다음과 같은 방각본 소설의 생산지, 산지를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서울 방각본 판각지



이는 나손이 직접 손으로 그린 방각본 생산지 지도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이를 토대로 삼아 방각본 소설이 실증적 연구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나손은 전국 방각본 산지도 조사하고, 그 지도를 직접 그린다. 위 사진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학계에 그 존재를 알린 것이 이른바 세책(貰冊)이다. 세책이란 조선후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던 책이다. 따라서 세책은 조선후기 도서대여점으로, 현재의 도서대여점 혹은 만화대여점이라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위 사진은 1970년대 중반에 나손이 쓴 논문 한 대목이다. 이를 보면 세책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 자신이 지닌 자료 중에서 어떤 책이 세책인지를 자세히 밝힌다.  


하지만 이 연구는 당시 연구자들에게 한결같이 외면받았다. 선각자는 외로운 법이다. 그의 연구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선 까닭에 세책은 당시 국어국문학계에서는 연구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 그런 것도 연구대상이냐? 하는 비아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그리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당시는 물론이고 고전문학, 고소설 연구자는 대부분 이른바 고전작품 연구에만 매몰된 까닭이다.  



세책을 주목한 김동욱의 책 '한국고소설입문'



당시엔 이런 사정이 더 했으니, 그 따위도 연구할 거리가 되냐는 인식이 팽배했을 때라, 세책이 대표하는 도서의 유통, 상업출판물, 방각본 같은 데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사정이 이랬으니, 세책을 주목한 나손 글을 누가 쳐다보기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나손이 세상에 알린 세책은 1985년, 한국고소설 연구자인 일본인 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가 주목하면서 사정이 일변한다. 그러다가 다시 20여 년이 지난 2003년에 이르러 본격 닻을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