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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송은이 시집가던 날

여송은 온양민속박물관 연구원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한사코 결혼은 안 할 거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더니, 돌연 결혼 발표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 시집갑니다." 라고 말하기 민망스러웠지만, 좋은데 어떡합니까!

아직 제 신랑 될 분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큰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집안도 좋고, 아버지 어머니 성품도  좋고, 이제 곧 나랏일도 앞두고 있다 합니다. 

수줍게 "그래서 얼굴은 어떠하신가요." 라고 물으니, 남자답게 생겼다고만 하십니다. 

이 말이 퍽 못 미더워 눈썰미 좋은 남동생을 시켜 얼굴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남동생 말로는 얼굴은 희고, 입술은 붉으며, 눈빛은 또렷이 살아있고, 풍채도 좋아 누가봐도 멋진 남자라고 했습니다. 

내심 흐뭇한 마음에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혼례 전시 전경

  - 납폐함() : ‘자손번창()’이나가내평안()’을 뜻하는 ‘福(수복)’ 문자와 박쥐 문양으로 장식

 

 

청혼서(請婚書), 사주단자(子), 납폐(幣)서신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 사주단자(子) :  신랑의 사주()인 생년·월·일·시의 네 간지()를 적어서 보내는 간지()

  - 납폐(幣) :  정혼()의 성립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서신과 폐물을 보내는 의식

 

며칠 뒤 손 없는 날, 청혼서와 함께 신랑될 분 사주단자가 왔습니다.

제 위로 네 살 이 많습니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입니다! 제가 왜 급한지는 모르겠지만 급한 마음에 어머니를 졸라 얼른 연길(吉, 신랑 측으로부터 사성을 받은 뒤에 신부 측에서 혼인날을 택하여 신랑 측에 보내는 것)을 보내자 했습니다.

길한 날 중에 가장 빠른 날이 추석 며칠 뒤라 하여 그날로 했습니다.

 

혼례식 전날인 '함 들어 오는 날'이 가장 재밌었고, '내가 정말 결혼하는구나!' 하고 실감 났지요.

친구들 결혼할 때 뒤에서 늘 보던 모습이었는데, 오늘 함 주인공은 저라니! 세상 즐거웠습니다.

생각보다 함진애비가 체구도 작고, 실랑이도 잘못해서 마음 졸깃졸깃해지는 건 덜했지만,

신랑집에서 정성스럽게 보내온 폐물을 보고 마음이 한결 훈훈해졌습니다.

함을 열 때 재밌는 풍속이 있는데, 손을 함 안에 넣고 홍단을 집어내면 첫아들을 낳고, 청단을 먼저 집으면 첫딸을 낳는다는 풍속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단번에 홍단을 집으셨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혼례 전경

 

드디어 제 일생일대의 그날이 왔습니다!

오늘만을 위해 피부를 얼마나 가꿨는지 모릅니다. 화장이 잘 먹어야 한다며 어머니는 틈만 나면 제 얼굴에 잔털을 밀어주셨습니다.

늘 친구들이 입은 모습만 보던 옷을 오늘은 제가 입었습니다.

모름지기 신부 드레스 코드는 '원삼에 족두리', '녹의홍상(綠衣紅裳)'이 진리 입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 속적삼은 꼭 모시적삼을 입어야 한다며 제 손에 쥐어주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시원한 모시적삼을 입어야 시집살이가 시원 시원하다며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제가 제일 예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까부터 제 족에 있는 암탉이 매우 거슬립니다. 묶여있어 금방이라도 도망가지는 않을 듯 한데,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푸드덕 푸드덕거리는 기미를 보이는게 제 중요한 날을 망칠 것 같단 말입니다.

'푸드덕 날아올라 내 혼례식을 망치면 네놈은 바로 내 뱃속으로 직행이다.' 벼르며 닭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래도 얼핏 얼핏 보이는 저의 신랑님 외모가 준수하여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대례상  혼례를 치르기 위해 차리는 상으로 장수・건강・다산・부부금슬 등을 기원하는 음식과 물품을 올림

일반적으로 송죽()이나 사철나무를 꽂은 꽃병·밤·대추·쌀·보자기에 싼 닭 한쌍·청홍실·쪽바가지(표주박) 두 개를 올림

상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암탉・수탉 : 동고동락

   -  사철나무 ・대나무 :  굳은 지조와 절개

   - 대추 ・밤 : 장수와 다남(多男)

   - 청실 ・홍실 : 부부의 인연

혼례식날 신부가 너무 웃으면 보기 안좋다고해서 표정관리를 하긴 했는데,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찌 할수가 없나 봅니다.

 

어른들끼리 혼담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좋아한 일.

신랑집에서 보내온 청혼서와 사주단자를 받고 마음이 급해져 어머니를 졸라 연길을 보낸 일.

신랑집에서 보내온 함을 보고, '아 나 결혼 잘했구나!' 생각한 일.

당일 준수한 신랑 얼굴을 보고 '아 나 정말 결혼 잘했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한 일.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여러분 


저 송은이가 드디어 시집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