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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여가爾汝歌, 황제와의 야자타임

by 한량 taeshik.kim 2020. 10. 2.

오吳나라 군주 손호孫皓는 자가 손빈孫賓이며, 손종孫鍾의 현손이다. 진晉나라가 손호를 토벌하여 손호가 진나라에 귀항歸降하자, 진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가 손호를 귀명후歸命侯에 봉했다. 나중에 무제가 군신群臣과 크게 연회를 벌였는데, 그때 손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무제가 손호에게 물었다.


부질없는 인생이다.



"듣자하니 오 땅 사람들은 <이여가爾汝歌>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경이 한 번 지어보시오.”

손호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좋습니다” 하고서, 무제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옛날에는 자네의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자네의 신하되었네. (자네에게 술 한 잔 올려) 자네의 만수무강을 비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했으며, 무제도 후회막급이었다.


파닥파닥한 인생



吳主孫皓, 字孫賓, 卽鍾之玄孫也, 晉伐孫皓, 皓降晉, 晉武帝封皓爲歸命侯, 後武帝大會群臣, 時皓在座, 武帝問皓曰: “朕聞吳人好作爾汝語, 卿試爲之, 皓應聲曰: “□.” 因勸帝酒日: “昔與汝爲鄰, 今與汝作臣, (闕)汝(闕)春.” 座衆皆失色, 帝悔不及. [《類林雜說》五]

손호는 손권孫權 손자로 나라를 말아먹으니, 결국 사마씨 진晉 왕조에 망하고 말며 이를 통해 위魏 촉蜀 오吳 삼국 분열은 종식하고 만다.


벼락치는 한가위 보름



군웅이 할거한 후한시대는 결국 삼국이 솥발처럼 정립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이들도 오래가지 못해 사천 일대에 웅거한 촉이 유비를 이은 유선시대에 조위曺魏에 먹힌 데 이어, 그걸 먹고 커져라 세져라 해야 할 조위는 그 창업주 조조가 후한 왕실에 그러했듯이 결국 정권을 농단한 사마씨司馬氏를 제어하지 못하고 망하더니, 그것을 대체한 진晉 왕실은 마침내 장강 일대에 웅거하던 동오東吳까지 병탄함으로써 분열시대를 종식한다.

하지만 그런 진 왕조의 기쁨도 잠시, 불과 30년만에 팔왕의 난과 이민족 침입에 후달리다 결국 망조가 들어 망하고 마니 이때가 313년이다. 계우 왕도王導를 필두로 하는 원훈대신들이 잔당을 수습하고는 건강으로 내려가 황실을 부활하니 이를 고리로 그 전시대 진을 서진西晉, 나중의 진 왕실을 동진東晉이라 한다.


회한



실제 꼬락서니는 북진北晉 남진南晉이 맞지만 존심으로 억지 동서 분조分朝를 주물한 것이다.

지금은 원전이 망실하고 이곳저곳 산발로 다른 서적에 인용된 형태로 전하는 동진東晉시대 처사處士 배계裵啓 찬撰 《어림語林》이 애초 수록한 이야기 중에 저 일화가 있었으니, 《유림잡설類林雜說》권5에 이 이야기가 전재되었으니 이는 그 멸망과 관련한 아픈 일화다.

본문에서는 손호를 일러 손권 손자라 하면 될 것을 굳이 그보다 더 족보를 끌어올려 손종의 현손이라 한 까닭이 몹시도 의아하다.


정구지에 내린 이슬 같은 신세



손종은 동오 왕조 실질 창건주인 손권의 조부이면서 손권이 제업을 이룩하는 터전을 닦은 손견孫堅의 아버지다.

본문에선 손호의 字를 손빈孫賓이라 했지만 뭔가 텍스트 착란임에 틀림없다. 성이 孫, 이름이 皓인 그가 성씨를 그대로 살린 말을 字로 사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본딘.

여타 증언을 보면 손호는 원종元宗 혹은 팽조彭祖라는 자를 사용했다. 팽조는 팔백살 넘게 살았다는 상고시대 선인仙人 이름이기도 하다.


아둥바둥



이여가爾汝歌란 간단히 말해 야자타임 놀이다. 爾나 汝는 동년배끼리,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일컫는 2인칭 대명사 you에 해당하거니와 자네 혹은 너에 해당한다.

전통시대에도 야자타임이 있었으니 이 역시 그러하다.

서진에 항복한 동오 마지막 황제 손호를 진 왕조가 귀명후歸命侯로 책봉해 예우했다지만 실은 치욕이지 않겠는가?


팔뚝 같은 인생



귀명歸命은 천명에 귀속 복속했다는 뜻이어니와 실은 항복한 군주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모르긴 해도 멸망 뒤 손호는 속이 쓰렸으리라. 한때는 동등 혹은 대등한 자격으로 행세한 그가 하루 아침에 신하로 굴복하고는 엎드려야 했으니

마침 황제가 허여한 야자타임을 빌려 저와 같이 읊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언중유골言中有骨 아니겠는가?


흐르는 강물처럼



저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는 나는 보지 않는다. 저런 행위는 아무리 황제가 허여했다 해서 모가지가 달아날 일이다.

후대가 만들어낸 말인 듯하다.

망국은 언제나 아픈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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