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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화여대박물관 뿌리는 상허 이태준

저명한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이 이화여전 교수로 부임하기는 1932년 4월. 해방 직전까지 이 대학 교수로 있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부임한) 그 당시 이화여전은 문과, 가사과, 음악과 등 3개 학과뿐으로 학생 수는 200명도 채 못 되었다."

나아가 "정동 시절의 이화여전 교수진은 여자가 많았고 남자 교수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남자로는 "문과에 월파 김상용과 한치진(철학), 김인영(성경), 그리고 나, 이렇게 넷뿐이었고, 가사과에 장기원, 김호직, 음악과에 성악가 안기영이 있었다. 상허 이태준은 나보다 2, 3년 뒤에 들어왔다"

일석이 회고하는 상허 이태준은 이랬다.

"상허는 월파와는 달리 술은 그리 즐기지 않았으나 얼굴 모습이 유난히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문장은 섬세하고 깨끗해서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던 당대의 작가였다.

골동품 수집 취미에 탐닉했던 그는 진고개 골동품상에 자주 다녔는데, 그의 권유로 나와 월파도 한때 고미술에 취미를 붙였었다. 그는 좋은 물건을 발견할 때면 분수도 모르고 욕심을 냈고, 힘이 미치지 못하면 김활란 선생을 졸라 사들이곤 했다. 학교에 방 하나를 얻어 그렇게 사들인 물건들을 진열하곤 박물실이라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이화여대 박물관의 밑천이 된 것이다"(<<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도서출판 선영사, 2001, 106쪽)